눈을 감는다.
머릿속에 무수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잡을세도 없이 나는 이렇게 흘러가는 상념에 젖어 결국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한 체 잠에 빠져든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바쁜 일상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쩌면 나의 의지가 아닌 세상의 의지가 아닌가 싶어질 때가 있었다.
또 눈을 감는다. 이번엔 내일-혹은 그 다음에 닥칠 속도감 넘치는 일상속의 불행들을 관조했다. 하지만 아직 일어난 일은 아니다. 이 일은 우려와 같이 벌어지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이런 상상의 반복은 달갑지 않은 현실이 반복 될거라는 불안에 잠식당한 결과였다. 기억은 쌓여가고 이 기억에 반추하여 더 나은 현재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 어쩌면 이게 가장 참기 힘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과거 생각이 들때가 있다. 어쩌면 행복했는지도 모를 순간들, 간신히 기억해야 떠오르는 사건들, 그리고 기억은 남아 있지만 현재 전혀 다르게 바뀌어 버린 많은 것들... 그것은 공간일 수도 있고, 나라는 사람일수도, 어쩌면 바쁜 일상속에서 멀어진 타인의 모습일 수도 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기억과 항상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에게서 많은 것이 소멸해 이제는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세어보면 살아가면서 나를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 중 실체가 부재한-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들이 상당히 된다. 그리고 이 글은 그렇게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소멸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이다. 어찌보면 속편이지만 <기억되지 못한 나날들>의 진정한 본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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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브런치에 글을 쓴지 2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이 2편의 희곡을 완성했고, <기억되지 못한 나날들> 창작의 직접적 동기가 되었던 전세계적 펜데믹은 결국 '공존'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나는 내게 몰려든 많은 일들에 파묻힌채, 마감에 쫒겨 짜내듯이 <기억되지 못한 나날들>의 한편한편을 완성했다. 그리고 당시 연재 분량상 마지막었던 6편은 도저히 오탈자와 비문을 정리 할 용기가 나질 않아 비공개로 처리했었다.
<기억되지 못한 나날들>은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진 못했고, 미완의 노트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물론 몇몇 기억할만한 순간들과 경험, 문명의 씁쓸한 사건들은 글에 연료를 제공했지만 진솔하게 나의 이야기를 담기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온전한 여유를 확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동안 방치되어 있던 브런치는 마음 한구석에 큰 부채감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브런치를 시작해야겠다고 느꼈고, 이 글은 작은 여유조차 없었던 일상속에서 무뎌진 나를 다시 벼르는 글이다. 물론 인생은 예측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또 언제 중단 될지 모르지만 이제는 스스로 옥죄던 많은 것들이 해소된 관계로 자유롭게 다시 에세이 시리즈를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