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걸린 내 꿈을 조금만 방해해 주세요
61일 남았다. 비행기 티켓팅을 완료한 후로 밤마다 걷기 시작했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내 페이스대로 걸으려면 두 달 좀 넘는 기간도 사실 부족하다. 벌써 6일째,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예전에는 운동을 참 좋아했는데, 살이 찌고 나서 운동을 멀리했고, 그 기간도 벌써 꽤나 오래되었다. 다시금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목표가 생겨버리니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면서 걷는 게 마냥 지루하지는 않았다.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걷는다. 그런데, 오늘은 도저히 너무 피곤해서 35분 정도만 걷고 들어왔다. 안 할 수 없었기에 조금이라도 걷고 왔다. 그것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걷는 내내 불편했다. 새 신을 신어서였을까. 요 며칠 새 신을 신고 잘 걸었으니 그것도 아닐 것이다.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어두운 어느 마을길을 걸어서였을까. 그러한 공포라면 백 번이고 즐길 수 있는 나이기에 그것 역시 아닐 것이다.
10분쯤 걸었을까. 좁은 차도에서 벗어나 넓은 마을길이 나왔다. 산과 산 사이에 별들이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내렸다. 저 멀리 반대편에서부터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니, 곧 별들을 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짧은 기간 내게 쏟아지는 별빛들은 쓸데없이 의미부여를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별을 봤음에도 불편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환한 가로등 밑을 반환점 삼아 돌았다. 귀신같이 불편했던 이유를 찾았다. 나는 몹시 불안했던 것이다. 장기간 베트남 출장 후 돌아온 한국 본사는 이미 초토화되어 있었다. 그 사실은 베트남에서부터 알고 있었으며,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불안감에 잔뜩 절여 있을 때였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대처하는 회사의 냉혹하고 멍청한 일처리 앞에서 역겨워서 당장이라도 퇴사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결정적인 순간, 충동적이지만 감정적이지 않게 혼자 조용히 퇴사 결정을 내렸다. 충동적인 말이 들어간 이유는 갑작스럽게 결정한 것이지만, 감정적이지 않다는 말에는 충분히 이미 몇 백번도 더 생각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곧장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 인생은 현재 뒤가 없다. 누구 하나 받쳐줄 사람도 없고, 조금 삐끗하면 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내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따라오고 있는 무거운 빚으로 인해 나는 벌써 몇 년을 피가 마르며 보냈다. 말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그 애매모호함 앞에서 최대한 있는 척과 자연스러운 척을 오가며 살아갔다.
그런 내가 충분히 적응하고 나름 세력도 있는 이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불안했다. 내가 내린 결정이지만, 몹시 불안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건 정말 야수의 심장을 백 개쯤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 불편함이 오늘 걷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다녀와서 나의 삶은 혁신적으로 바뀌어 있지 않을 것이며, 내 빚은 누가 탕감이라도 해주지 않을 것이다. 나름 안정적인 직장은 더 이상 없고, 다시 취직도 힘든 더 밑, 밑바닥까지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정말 자신이 있는 것일까. 정말 꿈을 위해 가야 하는 것일까. 그런 마음이 계속해서 괴롭혔다. 스무 살에 꿈을 꾼, 이 순례길은 서른 살에 대차게 꺾인 뒤 다시 5년이 지난 지금에서 이룬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로, 나의 미쳐버릴 것 같은 이 참담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불편함은 내내 내 발걸음과 같은 폭으로 따라왔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어두운 기운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판박이처럼 정확하게 나의 보폭과 나의 들숨 날숨을 따라 들어오는 불편함은 회사 기숙사 방에 들어와서야 잠잠해졌다. 그리고 노트북을 켜 글을 끄적여 본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다시 순례길 위에 있는 나를 상상할 것이다. 15년 걸린 나의 인생 최대 버킷리스트이다. 잘 모르는 회사 사람들은 한 마디씩 한다. ‘그런 곳을 왜 가는 거냐’, ‘놀러 가는 거냐’ 등등.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어차피 날 응원해 주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가장 소수의 사람일 것이라는 사실쯤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한들, 나는 내가 직접 해봐야 안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나름 절제의 예를 갖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순례길은 내게 소중하며 또한 전부가 아니어야 한다.
멋진 나를 상상하며 남은 기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지만, 희망의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불편함은 완주 후에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과 딱 두 가지만 약속할 것이다. 모든 길을 최선을 다해 걷자. 그리고 나를 제대로 치료하자.
누구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걸어갈 앞으로 나에게 응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