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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이블 Jul 07. 2021

달과 바람

 < 달과 바람 >  


 달에 가자

 바람을 만나러


 달에 가니

 바람이 없네


 바람을 쫓으러

 둥둥 떠가니


 바람은 보이지 않고

 내 몸도 바람을

 느끼지 못하네


 바람은 공기의 애인

 공기가 가는 곳에

 바람이 있을 터이니

 공기를 쫓아가 보자


 하,

 그런데

 달에 공기가 없다...


 나는 바람이 좋은데

 내가 바람의 애인이 되자


 그러자

 지구가 말한다

 

 그럼 달에서 나오렴

 나에게 오렴


 바람은 공기의 애인

 공기는 지구의 애인

 내가 바람의 애인


                     - H. Y. S




  초등학교 3학년 과학 교과서에 '지구와 달의 환경'에 대해 배우는 단원이 있는데 딸아이의 과학 참고서 한 귀퉁이에 낙서처럼 옆으로 써놓은 이 시를 놓칠세라 옮겨 적어 놓은 적이 있다. 과학 시험 성적과 상관없이 달의 환경에 대해 너무나 확실히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달과 지구, 바람과 공기의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인 '나'와 지구를 의인화시킨 '나'가 공기를 매개로 바람과 각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서로 애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관계. '지구를 아끼고 사랑하자'라는 캠페인 식의 학습 활동으로 마무리하는 단원 목표보다 훨씬 와닿았다.


  융합교육의 일환으로 미술시간에 '지구와 달 그리고 바람과의 관계를 그림으로 그리시오'라는 문제를 준다면 아이들은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사람 모양의 지구와 달 사이에서 공기와 바람의 느낌을 살린 어떤 사물이 왔다 갔다 하는 그림, 혹은 공기도 바람도 없는 달의 외로움을 표현한 그림, 어쩌면 '나'가 그 달을 쓰다듬거나 꼭 안아주는 그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갑자기 떠오른다. 이런 우주적 상상력과 인간적 이해, 그리고 따뜻한 감성이 섞여 탄생한 소설이지 않을까 하는. 장미꽃과 여우를 등장시켜 그들 '관계'의 의미를 묻는 것에서 결국 인간의 삶이란 나와 나 아닌 모든 것들과의 '관계'로 그려지는 것이며 그 관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살맛 나기도 하고 살맛 안나기도 하는 것! 누군가와 혹은 그 무엇과 '애인'이 된다면야 그 얼마나 살맛 나겠는가.



*** 엄마의 시


<달과 바람>


여기 없는 것을

여기서 찾는 이


여기 없다고

여기에서 보내는 이


저기 있을 거라

저기로 가는 이


저기 있다고

저기서 기다리는 이


우리는

이리저리

무엇을 찾는가


공기만이 바람을

증명해 주듯


나를 증명해 줄

또 다른 나


어디선가

간지러이 속삭이는

바람의 소리


애인은 찾는 게 아니란다

너가 되는 거란다



  가끔 아이의 시를 보고 화답시 아닌 화답시를 쓰면서 깨닫는 것들이 생긴다. 엄마로서 경이로운 순간은 새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순간만이 아니고 어쩌면 아이로부터 내가 키워지는 순간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즐거운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사진 출처>

https://m.blog.naver.com/zenith1828/220193931663

https://sosolife.tistory.com/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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