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3년간 준비해서 뉴질랜드 한달살기를 실행한 적이 있다. 3년을 준비해야 겨우 한 달을 살 수 있었지만, 몇 박 몇 일이 아닌 한 달을 '살고' 왔다는 것이 아이들과 나에게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너무 잘 한 일이었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 늘 우리에게 떠나지 않았던 화제거리 중 하나가 '날씨' 였다. 한국의 여름 방학에 갔으니 그곳은 겨울이 아니겠는가? 그곳의 겨울은 우리가 생각한 겨울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추위란 것이 잠깐 느껴지긴 했지만 항상 청량하고 따뜻한 가을날씨처럼 가벼웠고 희한하게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4계절용이 혼재했다. 면반바지에 패딩잠바, 쫄바지 위에 면반팔, 아무리 추워도 패딩조끼면 충분했다. 심지어 바닷가에서 수영복차림만으로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능했던 그런 햇살과 기온이었던 것이다. 이런 날씨와 풍경을 보고 아이들은 엄마가 여름에 겨울을 선물한다고 했는데 가을이었네 했다. 여기 저기 시선을 돌려보는 곳마다 그대로 멋진 인생컷이 되는 곳. 이런 날씨를 보고 딸아이는 어김없이 시를 남겼다. 여기 태양은 빨간 게 아니라 노랗다는 둥, 그래서 겨울인데도 포근한거라는 둥, 가을이라고 해도 다 믿겠다는 둥... 그러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서프리카', '대프리카' 폭염 뉴스에 아이는 어리둥절해하며 한국의 여름이와 뉴질랜드의 겨울이는 서로 거짓말쟁이라고 하겠다며 이런 시를 썼다. 가끔 아이의 생각은 엉뚱하면서도 진실되다. 하지만 틀린 말이 없는데 낯설다. 이 시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만 왜 이렇게 썼구나를 알게 되는 그런 시들 중 하나였다. 나와 나눈 대화가 공유가 안된 이들에게 이 시는 어떻게 이해될까. 나는 처음에는 '정체성'에 관한 시라고 생각했다. 겨울인데 가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 혼란, 그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날씨'라는 대자연의 섭리로부터 이해하게 되고 정립해나가는 그런 이야기...얼마나 오바인가. '너'는 뉴질랜드 날씨의 본질이고 '나'는 한국의 날씨라고 단순하게 이해해보니 한마디로 지구 반대편의 날씨가 다른 것에 대한 9살 아이의 재미있는 해석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