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감성 #21 공연장
공간을 처음 만날 때,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관계로 끌어오며 그 공간을 경험하곤 한다. 첫 만남이 주는 강렬한 흥분과 순간의 황홀경을 추구하듯, 그 공간에 대한 설렘을 기대하곤 한다.
얼마 전 SG워너비 콘서트를 보러 잠실 KSPO 돔 경기장을 다녀왔다. 처음 경기장에 들어설 때 좁은 입구를 지나 중앙 무대 공간을 마주할 때, 이 많은 관람객이 단 세 명을 위한 공간을 동일하게 바라보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고 있는 장면이 문득 새로웠다. 공연이 시작하여 무대 조명은 서서히 변했고, 공간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무대 위의 가수들은 그 빛의 움직임에 맞추어 동선을 잡았다. 그들의 동작은 음악과 조명의 리듬에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계획된 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몸 안에 퍼지는 전율은 음악의 진동과 조명의 변화, 그리고 가수들의 동작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듯했다.
공연장의 빛은 순간순간 변하였다. 은은한 조명 아래서 부드러운 선율이 흐르고, 때로는 강렬한 빛 속에서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 앤 리조트에 자리한 빛의 시어터는 1963년 개관 이후 오랜 기간 공연 문화계의 상징적 역할을 해온 '워커힐 시어터'를 빛으로 재탄생시킨 문화예술 재생 공간이다. 기존 워커힐 시어터는 총면적 1500평, 최대 높이 21m의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다. 민속 공연을 비롯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쇼', '할리우드 쇼', 프랑스 '리도 쇼', 영국 '런던스 피카딜리 쇼' 등 외국 쇼를 초청해 무대에 올리며 누적 관람객 962만 명을 기록하는 등 1960~70년대 한국 문화 관광을 대표하는 극장으로 자리매김했었다.
현재는 미디어 전시 공간으로 관객석과 무대공간을 전체 활용하여 전시와 공연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빛의 시어터는 과거의 기록을 보여주는 박물관을 지나 2층 공연장으로 진입하게 되어 있다. 과거 공연장을 떠올리며 2층 옛 관객석 위치에 서면, 무대공간은 사라지고 압도적인 스케일의 미디어 프로젝션과 객석을 잇는 램프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좌석이 사라진 공간은 바닥, 벽, 천정을 가득 채운 미디어 프로젝션으로 변신하며, 전시 주제에 맞춰 음악과 화면 내용이 바뀌고 자유롭게 착석하여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관객은 빛의 시어터의 1층과 2층으로 진입할 수 있으며, 좌석에 착석하는 순간 무대와 관람 공간이 분리된다. 배우들은 양 옆의 동선과 무대 중앙, 하부를 활용하여 스토리를 구성하고, 입체적인 동선으로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며 공연에 활기를 더한다. 1950년대 빛의 시어터와 유사한 시기의 공연장 동선을 분석한 그래프를 보면, 관객과의 시선 교차와 동선 구성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빛의 시어터는 기존 공연장 구성의 건축과 콘텐츠를 계승하면서도 동선을 새롭게 구성하여 관객의 참여도를 높인 공간이다. 빛을 이용해 동선을 유도하고 공간 산책을 경험하게 하며, 관객이 주인공이 되어 빛을 따라 움직이고 음악에 맞춰 멈추는 예술적 체험을 제공한다. 이렇게 공연장과의 첫 만남에서 새로운 시선이나 기억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