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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May 25. 2022

열 번 찍어 매출 안 나오는 방송 없다

온오프라인에서 원래 판매가 잘되던 상품을 제외하면 커머스 방송에서 론칭 방송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재야에 묻혀있던 상품이 한 시간 동안 최소 몇천 명에서 몇십만 명에게까지 선보여지며 냉정한 평가를 받는 첫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10여 년 방송 경험상 이 론칭 방송 매출이 만족할 만큼 나오는 경우는 10번 중 1번 정도에 불과합니다. 


실패의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먼저 판매사가 말하고 싶은 내용과 고객이 알고 싶은 내용의 괴리를 말하고 싶습니다. 판매사는 직접 상품은 연구하고 개발한 입장에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자랑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고객들은 그것들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없이 많은 탈락 끝에 얻은 특허증이나 수상 내역은 자부심이자 자랑거리이지만 고객들에게는 그저 원리를 알 수 없는 기술 이름이 쓰인 종이일 뿐입니다. ㅈ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대회에서 수상한 것이 구매 욕구를 높이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판매사 역시 고객이 원하는 내용을 말하고 싶지만 지금껏 노출이 적었기에 고객들에게 피드백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론칭 방송 때 어려움을 겪는 전형적인 모습은 쇼호스트가 준비한 내용을 목청껏 이야기하고 애원하다시피 설명을 하는데 구매는 일어나지 않고 고객들 질문만 많아지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렇게 처참한 매출을 남기고 방송이 끝나면 판매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아직 시기상조라며 혹은 우리 상품은 방송에 맞지 않는 상품이라며 방송을 포기하는 길과 론칭 방송에서 나온 고객들의 소중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보는 길입니다. 


사실 전자의 경우도 이해가 됩니다. 판매사 측에서도 기대를 많이 했을 것이고 준비도 많이 했을 텐데 초라한 매출을 보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커머스 방송을 진행하며 지켜보니 론칭 방송에 주눅 들지 않고 재정비 후 다시 한번 방송에 도전해서 대박을 터뜨리는 판매사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시베리아 구스다운 침구 세트를 론칭했을 때의 일입니다. 의욕 많던 판매사는 혹한의 대명사인 시베리아에 사는 거위들 털이면 얼마나 따뜻하겠냐며 구스다운 침구세트계의 혁명을 일으켜 보자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또 시베리아 현지에 끝내주게 멋있고 깨끗한 털 처리 공장을 지어서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론칭 방송이 시작되고 쇼호스트가 극한의 추위를 자랑하는 시베리아 영상과 함께 이곳에서 서식하는 거위들의 털로 제작한 침구세트임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티끌 하나 없는 공장 영상과 함께 믿을 만한 업체임을 몇 번이고 말했습니다. 10분 정도 지나자 고객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원산지가 어디냐, 촉감은 어떠냐, 배송은 어떻게 되냐 등등 고객들이 신경 안 쓸 것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마구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시베리아 구스지만 완제품은 중국에서 넘어오는 구조라 원산지도 매력적이지 않았고 촉감은 부드러운 걸 직접 체험하게 해 줄 수도 없었습니다. 배송 역시 다른 업체와 다를 바 없는 컨디션이었습니다. 또 공장 영상을 보고 털 처리 과정 등에 대한 질문이 들어와 그 어려운 과정을 설명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많이 빼앗겼습니다. 결국 매출은 바닥을 찍었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 진행된 방송 리뷰 회의 때 판매사 직원은 방송을 몇 번 더 해보자며 처진 분위기를 애써 띄웠습니다.


2주 뒤 다음 방송 회의를 들어갔더니 원산지를 중국에서 러시아로 바꾼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왔습니다. 비용이 들더라도 현지에서 전체 생산을 해서 중국산으로 비칠 때 생기는 불안감을 없애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배송 역시 공기를 주입한 특수 포장으로 받았을 때 구김이 덜하게끔 조치를 취했습니다.


2번째 방송이 끝나고 고객들 요청에 따라 이불 커버를 추가하고 

3번째 방송이 끝나고 고객들 질문에 따라 거위털 냄새에 대한 우려를 씻을만한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4번째 방송.

방송의 변화는 조금이었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크게 달랐습니다. 잠잠한 문의 수 대비 꾸준히 올라가는 주문 그래프를 보며 드디어 고객들 니즈에 맞는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겨울 시즌에 들어갔고 역대급 추위 덕에 이 판매사는 지금까지의 아쉬움을 한 번에 날릴만한 매출을 만들고 따뜻한 겨울을 보냈습니다.


커머스 방송의 장점은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모아 그들에게 상품에 대한 평가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평가들을 하나하나 상품에 다시 적용해보고 방송을 다듬다 보면 언젠가 매출은 보답을 합니다.


정말 열 번 찍어 매출이 안 나오는 상품은 담당 PD도 판매사도 진정 고객의 입장에서 방송을 했는지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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