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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시인 Aug 01. 2024

사람을 살리는 고양이 (3)

마음의 안식처

사무실에서 피곤한 눈을 비 때 옆자리 선생님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웃으면 복이 온답니다. 피곤할수록 웃읍시다!"

"하하... 네"

사람 참 해맑다.

서비스식 웃음이 일상이 되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는데 웃으면 웃을수록 더 피곤해진다. 사람마다 각기 가면을 쌓아 올리며 아닌 척, 괜찮은 척 솔직해지고 싶지만 모든 사람이 솔직한 모습으로 사는 세상은 그리 행복할 것 같지 않다. 금세 생각을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감정 노동이 반복되어 생기는 우울함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말뚝이 되어 단단히 박혀버린 듯했다. 


그 말뚝 위로 작은 생명체가 걸어다닌다. 한번 툭 건드려보고 깨물어도 보며 이내 그 위에서 자는 녀석의 이름은 '설이'이다. 애초에 녀석은 가식과는 거리가 멀다. 배고프면 울고, 심심하면 울고 깨물고, 날아다니고 뛰어다니고 엎지르고 본능에 충실한 이 생명은 내 옆에 있는 가족이다.


 요리를 하고 있으면 식탁 위로 올라와 식사 준비를 방해한다. 오늘은 점프하다가 발라당 넘어지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씨구?" 피식하고 웃는 집사와 비웃음을 바라보는 고양이다. 왜 웃는지 알기나 할까.

집에 있을 때 웃음을 짓는 빈도가 크게 많아졌다. 이름을 부르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재밌고 후다닥 뒤꽁무니 치며 숨을 곳을 찾아 비집고 들어가는 것도 우습고, 자리를 비웠다가 집에 돌아오면 꼬리를 비비며 아양을 부릴 때도 즐거워 웃음이 나온다. 밥을 먹을 때도, 주면 그냥 먹지 비싼 로O 캐O 아니면 바닥에 퉤 하고 뱉어버리는 인성(냥성?)도, 간식 달라 조를 때도, 책상에 놓인 물건 떨어뜨리는 걸 들켜 긴장 상태가 유지될 때도 너로 인해 웃음이 나왔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 게 이렇게 잦은 일이 될 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저 참 오랜만이다.



 오늘 몇번이나 웃었는가? 상념을 잊고 호탕하게 웃으며 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지니스식 웃음이 아닌 마음을 터놓고 웃을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하게 있지 않다는 말이다. 도전해야 하고 이겨내야 하고 일어서야 하는 우리에게 삶은 늘 웃어야 한다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킬 앤 하이드처럼 살고 있는 셈이다.


# 진짜 웃음과 새로운 의미의 가족

모든 가정이 다 평화로운 건 아니라 가정하고, 마음의 터울 없이 지낼 수 있는 공간과 인연을 새로운 의미에서의 가족이라 부르기도 한다. 선생님이, 형과 누나들이, 사회에서 만난 인연들이, 친구들이, 사랑하는 연인이, 나의 반려 동물이 누군가의 가족이고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것처럼.


술이나 담배 따위와 안정의 정도를 비교하지 말자. 이것들이 고통을 인내하게 만든다면, 가족의 의미는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는'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침묵은 고양이가 우리를 이해하는 일이다.

아직 어린 네가 내 고충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 . 남들에게 내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도 꽤나 마음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적절한 관심 안에서 과하지도, 소홀하지도 않을 정도로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 있다는 게 삶의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지 모르겠다. 너 역시 같은 마음이기에 그저 조용히 다가와 기대어 눈을 감는 게 아닐까. 기쁘고 소중한 일을 나눌 때 슬픔의 농도도 달라진다. 깜깜한 슬픔은 서서히 개이고 빈자리를 진짜 웃음으로 채운다.

때때로 녀석이 내 옆에 자리잡고 잔잔한 골골이를 들려줄 때가 있다. 내가 슬퍼 울든 행복에 겨워 웃고 있든 아무 말 없이 

편안(便安)하다는 건 편하고 걱정 없이 좋다는 이다. 서로 허울 없는 사이에서 아양을 부리는 네가 있어 이 시간 편안함이 가득하다. 


반려 동물을 기르고 싶어 하는 2~30대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삶을 위로해 주는 여러 일들이 있어서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거 잘 알지만, 때로는 내 마음을 둘 위로의 안식처도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의 집 안에서 그저 말없이 정서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며 사랑을 만들고 그 아이가 만들어 낸 작은 세상 안에서 다 큰 어른의 뼈아픈 고통을 위로받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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