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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그린 Jan 26. 2022

농사꾼의 길

살기 위해 돈을 벌지만, 돈을 위해 살지는 않는다

농사꾼의 길


세상에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나는 왜 농사꾼이 되고 싶었나?

농사꾼이라는 단어는 농부, 농민, 농업인, 귀농인, 파머 등 여러 단어들 중에서 가장 나에게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꾼” 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명사로써 “어떤 일,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이라고 나와 있다. 춤꾼, 노래꾼, 낚시꾼, 사기꾼, 노름꾼 등에 쓰이고 있다. 특히나 아직은 초보농사꾼 아닌가?


작년에 괴산으로 귀농하기 전부터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해답을 찾고 있다. 결단을 내리긴 했지만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한 논리적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오랜 기간 가슴 한가운데 불씨를 간직하고 있었기에 결단을 내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적당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여 결단을 내리게 되었고, 여러 주변 상황이 좋은 판단임을 뒷받침해주고 있기도 하다.


나는 어린시절 진주, 서부경남의 중심도시 한복판에서 자랐다. 서울로 비유하면 사대문 안에서 자란 아스팔트 세대인 셈이다. 농사일은 해본적도 없었지만, 주변에 농촌이 많았기에 과수원을 하는 친구집에 놀러 가거나, 할머니 따라 친척집을 가면 대부분 농촌에 논, 과수원, 축사, 비닐하우스 등 구경만 한 셈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가 시내에서 변두리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논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메뚜기, 개구리도 잡고, 산딸기도 따먹고, 비가 오면 토란잎을 꺽어서 쓰고 다녔다. 군대에서도 대민지원이라고 농촌 일손돕기를 종종 다녔지만 바깥 바람 쐰다는 기분만 냈을 뿐이다. 농촌에 대한 경험은 여기까지가 전부이다.


내가 귀농이라는 불씨를 품게 된 이유는 사실 다른 곳에 있었다. 농사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귀농을 결심하고서도 농사일에 대해 따로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작년에 닥쳐서 몸으로 배우며 체득하고 있는 셈이다. 몸이 느끼니 머리와 가슴도 같이 따라 움직여 준다. “대학교를 농대로 갔었어야 했어. 내 성적에 농대면 학벌은 괜찮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성에 맞는거 같다. 학창 시절 진로를 바꾸는 바람에 방황한 시간이 많았는데, 오십 넘어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거 같기도 하다. 직접 겪어본 농사일은 아주 매력적이다. 머리와 몸을 동시에 사용해야 하고 가슴도 뜨거워야 한다. 흙, 물, 바람과 함께 생명을 틔우고 키워서 사람과 동식물이 같이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순환이라는 논리가 아주 만족스럽다. 물론 현대 농업에서는 복잡한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다음에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자.


귀농한다고 했을 때 가족, 친척, 친구들 중에서 응원해 주신 분들도 많았고, 걱정해 주신 분들도 많았다. 특히 양가 부모님들께서 대놓고 반대는 못하셨지만, 마음속으로는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다. 당신들 세대에서 농촌은 지지리 궁상맞았고 돈을 벌기 위해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던 시절이었는데, 다 큰 자식들이 어린 애들까지 데리고 스스로 그런 곳으로 찾아간다고 하니 당연한 걱정을 하시는 것이다. 나는 농촌에서 자라지 않았기에 농촌의 현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오십년 인생을 살면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은 도시보다는 농촌에 더 많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에 대한 나의 가치철학은 확고하다. “살기 위해서 돈을 벌지만, 돈을 위해서 살지는 않는다.” 도시에서 회사를 다닐 때도 그랬고 지금도 농촌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일에 대한 열정과 재미가 없어지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부터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있다. 올바른 현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씁쓸한 구석이 느껴지는건 그들 대부분은 농사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괴산에서 만난 젊은 농사꾼들 중에서도 예외없이 그런 부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귀농의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한가지 사실은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을 위한 농사가 아닌, 나와 내 가족, 우리 모두를 위한 생명을 가꾸는 농사꾼의 길을 가고자 한다. 물론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라 두렵기도 하지만 그 끝에는 내가 늘 기도하는 영원한 삶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제 곁에 영원히 살아계시는 어머니, 저를 믿고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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