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다 가제트
랭리, 가을, 비
젠장, 한참을 머무를 모양이다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달라고
달포 전에 공손하게 고개 숙이던 그녀는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마신다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술이 비가 될 줄, 넋두리가 빗줄기가 되어 머리를 적실 줄
이제야 알았다.
비가 뒤통수를 후려친다
랭리엔 고향을 버린 이들이, 고향이 버린 사람들이
포트만 다리 건너편에서 빗물과 고향을 섞는다.
이란에서 왔다는 모슬렘은 가끔
팥인지 콩인지 구별이 안 되는 적색 알과 감자와 당근과 닭을 오래도록 푹푹 삶는다
다 삶을 때까지, 다 먹을 때까지 비는 주룩주룩 쉴 새 없다.
수유리 빡빡산이 고향이라던 김 씨 아저씨
몇 년 전에 가보니 빡빡한 빌라산이 되어 있다고……
쇠주가 비싸, 무알콜 맥주와 섞어 홀짝이던 그의 얼굴에 축축한 뻘건 단풍이 스며든다
다 마실 때까지, 다 스며들 때까지 비는 차곡차곡 땅에 쌓인다
그녀는 다시 자리를 잡는다.
더 오래 머물기 위해, 편안히 잔을 기울이기 위해
이미 깊은 가을밤, 꼴딱 새기 위해…
포트 랭리를 가로지르는 야간열차가 뿌엑 뿌엑거린다.
제기랄, 한참을 울면서 달릴 모양이다
랭리의 비 오는 가을밤에
* 랭리: 광역 밴쿠버 외곽에 위치한 도시, 최근 한인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
*포트랭리 : 랭리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도시, 강을 끼고 있으며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