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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한테 들은 의외의 말

나의 구닥다리 가족 01화

by 엘슈가

조카는 운동을 전공했지만 한 의류 회사 매장 직원으로 취업했다. 붙임성 있는 조카의 성격에 맞는 직장이었을까? 잘 적응하며 다니는 듯 보였다. 조카는 집과 외가댁이 있는 곳에서 떨어진 곳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취업한 곳은 외가댁 그러니까 나의 친정집 근처였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작지만 깔끔한 원룸을 얻은 조카를 보고 그건 사회 초년생의 로망인가 보다 했다. 밤길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엄마(셋째 언니)가 잘 챙기니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건 언니를 통해서였다. 얘가 이러는데 너의 생각은 어때라고 언니는 말문을 열었다. 언니의 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랬다.


"나 할아버지랑 살아보고 싶어. 괜찮지?"


너무 뜻밖의 말이라 이게 어떤 걸 의미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한참 자유롭고 싶을 나이 아닌가? 나의 20대 초반은 어땠지? 지금 생각하면 나쁜 딸이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한 달에 한 번도 집에 전화를 하는 딸이 아니었다. 그저 자기가 제일 바빴고, 세상 고민은 다 짊어지고 살았고, 자기 계발과 운동이란 운동은 다했고, 연애도... 하여간 그랬는데, 조카는 왜 갑자기 외할아버지랑 살겠다는 건지?


물론 조카의 그 말이 대견했다. 방이 3개인 아파트니 개인 생활도 보장될 터였다. 게다 친정아버지는 일찍 주무시고, 잔소리가 심한 편도 아니다. 아버지는 늘 따듯한 밥을 두 개의 밥통마다 채워두시고 사시사철 김치 있고 찌개 있고 김도 있는 집이니 조카가 원룸에 살 때보다 끼니 챙기기에 괜찮을 것이었다.


또 아버지의 딸인 나로서는, 조카가 아버지와 함께 살면 든든하니까 그 점도 장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도 여든 중반을 향해간다. 혼자 계시는 게 불안했고 걱정 되었다. 그런데 조카가 작은 방에 들어와 산다면? 그건 너무 든든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조카에게도 좋아야 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결정의 끝이 좋기를 바라니까. 더 생각을 해봐야 했다. 달다고 냉큼 삼키면 그 후유증도 감내해야 하니까. 나는 현명해지고 싶었고, 궁극적으로 이 결정이 우리 가족에게 행복한 결정이기를 바랐다.


중재를 한건 친정 오빠였다. 친정 오빠는 근처에서 살았는데 살기만 따로 살지 2~3일에 한 번씩 친정집에 와서 아버지와 식사도 함께 하고 큰 쓰레기도 치우고, 욕실 청소도 한다. 오빠가 조카에게 말했다.


"너는 여기 들어와서 생활비 아끼고, 할아버지 걱정 끼쳐드릴 일 하지 말고~ 마음 부담 같은 건 삼촌이 질 테니까 너는 그냥 즐겁게 생활해, 그럼 돼"


그 지점이었다. 이 결정으로 행여 조카가 마음의 부담 같은 건 갖지 않길 바랐다. 아버지가 만일 아프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조카가 가까이 있다고 해서 부담을 지거나 힘들어하면 안된다가 내 마음이었다. 친정 오빠가 그걸 정리해 준 거다. 그래 그러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다.


조카는 그렇게 201호 외할아버지의 집, 정확하게는 외삼촌의 집 문간방 세입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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