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프라하
여행 생각이 간절한 요즘. 승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을 자주 떠올린다. 하늘 위 비행기 안이 나의 일터라 외국으로 나가는 일이 말 그대로 마냥 '일'로만 느껴졌고, 마음먹고 조금만 부지런하면 전 세계 곳곳을 눈에 담을 수 있었음에도, 체력을 비축한다는 핑계로 호텔방이나 호텔 피트니스에서 그 귀한 기회를 날려버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 체력비축러를 움직인 도시가 있었으니. 그곳은 까를교의 도시, 프라하성이 밤새 환하게 도시를 내려 비추는, 체코 프라하였다.
승무원이라면 모두들 저마다 자신의 최애 여행지가 있을 터. 프랑스 파리의 화려한 불빛은 늘 마음을 싱숭생숭 들뜨게 만들었고, 호주 브리즈번의 해변은 젊은이들의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스위스 취리히 자연의 위대함에 견주어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단단한 다리로 그곳 땅을 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 막히는 감동이 밀려왔다. 역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난 유럽 도시들은 똑같아 보여도 매번 새롭다. 수많은 도시들이 감탄을 연발하게, 온몸을 전율 돋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단연 나의 사랑은 프라하였다.
첫 프라하 스케줄은 조인 비행(대한항공은 팀제로 운영되고 1년 단위로 소속 팀이 바뀐다. 주로 팀원들과 비행하지만 다른 팀에 Join 되어 비행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이었다. 대부분 팀원들끼리 움직이니 나는 나와 함께 조인된 승무원들과 자유롭게 프라하를 즐길 수 있었다. 프라하는 아주 작은 도시라 대개 유럽 여행객들은 스케줄 중 하루 또는 이틀 정도만 할애해 프라하에 머무른다. 반면 나는 주요 관광지만 둘러보는 여행보다 한 도시에 오랫동안 머물며 현지인처럼 도시의 이모저모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때문에 별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걸어서 도시 전부를 볼 수 있는 작은 도시 프라하가 너무나 좋았다. 프라하로의 몇 차례 비행 이후, 나에게 프라하는 눈 감아도 골목골목이 그려지는 도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승무원을 그만둔 후에도 나는 다시 프라하를 찾았다. 승무원 시절 이따금씩 방문했던 카페에 하루 종일 앉아 책을 읽었고, 아름답다고 이름난 미술관을 모조리 방문했다. 프라하에 올 때마다 꼭 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발길을 돌렸던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예약했고, 체류 규정 탓에 즐길 수 없었던 늦은 밤 재즈 공연도 맥주를 곁들이며 즐겼다. (체코는 맥주가 물보다 싼 도시라 매 끼니마다 맥주를 빼놓지 않고 마셨다.) 해외로 나갈 때면 아쿠아리움이나 동물원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마침 프라하에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동물원이 있어 하루는 온종일 그곳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가장 좋았던 건 이른 새벽 까를교를 걷는 일이었다. 까를교는 하루 종일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으니 그나마 한산한 이른 새벽이어야 새소리를 들으며 고요한 새벽 공기를 즐길 수 있다. 까를교는 야경이 유명하지만, 불빛 없이 오롯이 자리를 지키는 새벽의 까를교도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프라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에도, 오전 비행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지막으로 프라하와 인사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까를교를 찾았다. 다시 이 곳을 찾을 땐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이길, 소원을 들어준다는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에게 속삭이며 까를교를 떠났더랬다.
모두가 같은 생각 이리라. 이 긴긴 정체기가 끝나면 이국적 공기가 몸을 휘감는 어딘가로 떠날 수 있기를. 그때도 나의 목적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체코 프라하. 다시 갈 그 날을 기약했기 때문이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을 나서는 첫 발걸음에 밝은 목소리로. DOBRÝ DEN PRAHA!
그 날이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