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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시간 Jun 26. 2023

<마리나의 눈>

수행성의 미학

1. 시작


마리나가 태어난 유고슬라비아는 현재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지역에 위치했던 연방국가로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고, 가톨릭과 그리스정교, 이슬람교까지 3개의 종교와 5개 민족, 그리고 4개의 언어가 뒤섞여 민족과 종교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20세기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연방이 무너지고 보스니아 전쟁의 참혹함으로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고, 코소보 지역은 21세까지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졌다.


마리나의 부모는 공산군 간부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공로를 세워 유고 연방 인민 공화국에서 요직을 맡았다. 마리나는 이런 자신의 집안을 ‘빨갱이 부르주아’라고 불렀다. 마라나는 태어나자마자 조부모에게 보내졌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지역은 세르비아 정교회가 널리 퍼져 있었고 마리나의 조부모 또한 독실한 신자였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원은 종교 활동 자체가 불가능했으므로 그의 부모는 종교 활동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마리나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종교적 경험으로 채워졌다. 마리나는 6살 무렵 다시 부모와 살기 시작했는데 그의 가정은 엄격한 군대 같았고 부모는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척박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엘리트 교육에 열성적이었던 부모 덕분에 다양한 문화 예술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러한 경험은 그를 예술계로 이끌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체제에 순응하는 예술가가 되기를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반사회적이며, 자신의 신체와 정신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퍼포먼스를 공연했다.


2. 수행

마리나는 퍼포먼스가 연출이 아닌 실제상황이라는 점에서 연극과 구분된다고 말한다.


고통의 수행

작품이란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가의 사유는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는 마리나의 예술적 특징은 유년기시절의 모순적인 환경에서 오는 긴장에서 비롯되었다. 러시안 게임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1973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리듬 10>, 이후 1974년 공산당을 상징하는 별을 이용한 작품 <리듬 5>은 사회적 해방과 정화에 관한 의식인 동시에 예술가 개인의 용기와 한계에 대한 실험이었다.


자기 통제의 리듬

<리듬 5>에서 마지막에 의식을 잃었던 마리나는 퍼포먼스의 목적을 달성하고 수행성을 획득하기 위해 예술가가 상황 통제력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리듬 2>(1974)와 <리듬 4>(1974)에서는 의도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를 퍼포먼스에 도입했다. 이것은 사실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자유의지로 움직일 수 없도록 통제당하는 사회구성원의 모습을 상징하는 동시에 자유롭지 못했던 마리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인간은 정신과 신체가 합일을 이룰 때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존재다. 마리나의 ‘리듬’은 무자비한 통제와 고통의 리듬이었다.


실제상황

마리나가 예술계에 등장했을 당시에는 퍼포먼스가 예술의 장르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사회를 잠식한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반동으로 예술은 영속적이지 않은 허무함을 추구했기에 반사회적이고 전위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퍼포먼스의 핵심은 현장성인데 그는 부르주아의 생활을 상징하는 꿀과 와인을 모두 먹어 치우는 <토마스의 입술>을 통해 반사회적이고 전위적인 형태를 보여주었다. 퍼포먼스 이전의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되 개입하지 않았지만 퍼포먼스의 실제상황이 관객을 점차 고통 속으로 몰아넣자 관객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퍼포먼스는 작품을 실제상황으로 만들어 관객이 실제 상황을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삶의 틈새로 진입하기를 시도한다. 이러한 우연성에 기댈 때 관객과 예술가를 잇는 고리는 더 풍부해져서 관객은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적용할 것이고 이때, 퍼포먼스의 영향력은 확장되며 이것이 퍼포먼스의 잠재력이다.


우연성이 드러낸 얼굴

<리듬 0>에서 관객을 내부로 끌어들이며 퍼포먼스의 우연성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앞선 작품들이 타인이 고통을 모른척하지 못하는 인간의 윤리의식을 자극했다면 이 작품은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려는 실험이었다. 관객행동의 우연성에 기댄 이 퍼포먼스는 인간의 내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잔혹성을 드러냈다. 인간은 자신과 같은 인간의 범주에 들 때 인류애가 생성되지만 객체에게는 잔인하다.


그 너머의 에너지

사람의 특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극한 상황이나 어떤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릴 때 사회적 가면에 감춰진 내부가 드러나고 그것과 별개로 새로운 에너지가 탄생하기도 한다. ‘러너스 하이’는 그 예로, 달리기를 지속하다 체력이 고갈되고 마침내 사점(dead point)을 넘기면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고 희열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창작이나 명상과 같은 정신 활동에서도 일정 시간을 지속하면 비슷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정신적인 해방감, 진실을 만나는 희열이다. 마리나의 예술은 고통을 수행하며 신체적 한계에 직면함으로써 그 너머를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발산하고 비우기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진행된 퍼포먼스는 신체를 매개로 내부에 담긴 목소리, 기억과 언어, 신체의 움직임을 외부로 해방시켜 영혼을 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1975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공연한 퍼포먼스 <예술은 아름다워야 하고, 예술가는 아름다워야 하다>는 그 시작이었다. 이 작품에서 마리나는 거친 빗질과 고통의 목소리를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예술과 예술가를 해방하고자 했다. 다음은 ‘해방’ 시리즈로, <목소리 해방>(1976), <기억해방>, <신체해방>(1976)이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청소하고, 매체로서 자신의 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후, 파트너 울라이와의 관계 에너지 작업으로 이어진다.


3. 연인

마리나는 ‘리듬’ 시리즈와 ‘해방’ 시리즈를 거쳐 자기 안의 에너지를 밖으로 꺼내면서 외부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1976년 유고슬라비아를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마리나는 그곳에서 독일 출신의 예술가 프랭크 우베 라이지펜(1943)을 만났다. 그들은 유럽전역을 떠돌며 ‘디 아더스’라는 퍼포먼스 그룹으로 활동했다. 마리나는 신체 에너지의 움직임과 변화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울라이와 함께 ‘관계’ 시리즈를 시작했다. 당시 마리나와 울라이는 예술적 파트너로서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마리나의 예술은 홀로 시작했지만 울라이와 함께 한 12년은 사랑의 여정인 동시에 내부에 응축해 왔던 에너지를 외부와 교류하며 팽창시키는 시기였다.


확장하는 에너지

예술과 삶의 경계가 흐릴 정도로 가까이 연결된 울라이와 관계를 이용한 관계 시리즈-<공간 속의 관계>(1976), <움직임 속의 관계>(1977), <시간 속의 관계>(1977)-는 두 사람의 에너지를 교류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

<시간 속의 관계>에서 관객과의 에너지 교류를 경험한 마리나와 울라이는 관객의 참여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 1977년 현대미술관에서 공연한 <예측할 수 없는 것들>(1977)에서 본격적으로 관객 간의 신체접촉을 기획했으며 관객의 참여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마리나의 작품은 관객의 일상을 낯설게 만들고 그들이 기존에 가졌던 원칙이나 규범을 벗어나게 만드는 것인데 이를 ‘문지방 효과’라고 부른다.


두 사람

타인과 관계 맺는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특히 연인은 다른 관계보다 더 진한 화학 작용으로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 그들은 예술적 세계와 비전을 공유하는 파트너로서 서로 단단히 연결된 관계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호흡하기/내쉬기>(1977), <AAA-AAA>(1978), <정지 에너지>(1980)를 작업했다. 이러한 공동작업을 통해 그들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강력하고 폐쇄적인 관계의 그늘을 시사했다. 인간은 단 하나의 존재에만 의지해 살아갈 수 없다. 소중하고 특별한 관계에 몰입하기보다 그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개인의 성장이 필요하다.


균형과 신뢰

<AAA-AAA>에서 마리나와 울라이는 관계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 간의 에너지 대결을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처럼 연인은 처음에는 평등한 위치에서 시작하더라도 자신이 살아온 방식과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관계를 바라보며 점차 서로 우위를 점하려 든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이 작품을 통해 내부의 에너지를 모두 비워내고 텅 빈 자신이 되어 평화와 균형을 이룬다. 이렇게 완전한 균형을 보여주는 작품이 <정지 에너지>(1980)이다. 각각 활과 화살의 반대쪽을 잡고 서있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균형 유지를 위해 서로를 바라보며 애쓰는 상태를 보여준다. <정지 에너지>는 그들의 완전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1960~70년대와 달리 들어서 전위적인 퍼포먼스에 대한 예술계의 열광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당시 마리나와 울라이는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창작 보조금을 받고 있었지만 경제난은 비껴갈 수 없었기 때문에 1980년 암스테르담을 떠나 호주의 야생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누리는 삶은, 그들에게 있어서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천국 같은 삶이었다.


밤바다 건너기

호주의 야생에서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그들은 이것을 작품에 적용해 <밤바다 건너기>(1983)를 기획했다. 이후 <밤바다 건너기-목격자>(1984)와 같이 변형된 버전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일련의 시리즈를 통해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사용하여 몸의 행위 없이 공간과 청중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이후 마리나의 대표작 <예술가가 여기 있다>(2010)로 이어지는 퍼포먼스는 <밤바다 건너기>와 형식은 같지만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울라이가 아닌 관객이었다.


아주 긴 이별

마리나와 울라이의 영원할 것만 같았던 관계가 끝을 향한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울라이의 체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두 사람은 중국 만리장성의 양쪽 끝에서부터 각각 90일을 걸어와 중간에서 만난 뒤 이별하는 퍼포먼스, <연인>(1988)을 계획했다. 영국 BBC에서 이 특별한 대장정을 촬영해 <만리장성: 벼랑 끝의 연인>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했다. 그들을 걷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인 1988년 6월 27일, 산시성 에랑 샨의 작은 불교 사원에서 만나 서로를 끌어안으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나의 한 조각

2010년 3월 14일부터 5월 31일까지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마리나의 주요 작품 회고전과 함께 대표작 <예술가가 여기 있다>가 열렸다. 이 작품은 마리나가 앉은 테이블 앞에 관객이 차례로 마주 않아 서로 눈을 마주치고 떠나는 형식이었다. 이 퍼포먼스에서 23년 만에 두 사람의 재회가 이루어지는데 해당 작품은 미국 HBO의 다큐멘터리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2012)의 비디오 클립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마리나에게 있어 울라이는 동료이자 연인인 동시에 가장 가까운 친구, 가족보다 더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었고 완전한 신뢰를 이룬 존재였지만 서로 조각을 나누어 가진 관계로 서로의 가슴에 남는다.  


4. 에너지

사람의 삶이 변하는 순간은 단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걸어온 걸음, 지식과 경험의 축적 혹은 감정의 움직임이 서서히 작용해 변화의 순간으로 향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맥락은 언제나 결말이 가까워져야 파악할 수 있다.


전환점

마리나가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대한 감각을 키우게 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호주 그레이트 빅토리아 사막에서의 시간이었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밤바다 건너기>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불교의 명상법을 도입해 티베트 승려와 핀투비 부족원의 만남을 성사시켜 <밤바다 건너기-결합>을 공연했다. 이후 만리장성을 걷는 험난한 여정을 통해 12년의 관계를 종료하고 마리나는 혼자서 작업과 탐구를 지속했다. 마리나는 의식의 변화와 확장을 작품에 적용하고 싶어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방문해서 몸과 정신을 다루는 방법을 익혔다. 브라질의 샤머니즘은 마리나의 각별한 관심사였다. 그는 여러 차례 브라질을 방문해서 마음의 균형을 찾고 인체를 치유하는 데에 브라질의 자수정을 사용했다. 자수정이 가진 에너지에 집중해 완성한 퍼포먼스 작품이 <아이디어를 기다리기>(1991)이다. 이후 브라질의 샤머니즘이 민중을 치유하는 방식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치유의식을 행하는 힐러들과 함께 연구작업을 했는데 이 과정은 다큐멘터리 <그 사이의 공간: 브라질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2016)에서 만날 수 있다. 호주에서부터 티베트와 인도, 브라질과 인도네시아등을 거친 마리나의 중심은 신체와 마음을 ‘집’으로 설정하고, ‘집’을 깨끗이 비우고 씻어냄으로써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고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집 청소’의 개념을 정립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비워야 한다.


청소하기

마리나의 <거울청소>(1995)는 티베트 장례의식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는 동시에 닦는 행위, 즉 청소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단순하게 끝으로 보지 않는다. <거울청소>는 이러한 사유를 담은 것으로 이 형태를 그의 대표작 <발칸 바로크>(1997)에서 다시 도입한다. 2010년대 들어서는 직접 퍼포먼스 공연을 하는데 관객이 마음을 비우도록 돕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고 치유하며, 그들의 에너지가 모여 세상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관객에게 조건 없는 위로의 에너지를 건넨 <예술가가 여기 있다>로부터 시작해 <512 시간>(2014), <청소부>(2017)로 이어지는 감각은, 2014년 설립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인스티튜트’의 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대중적으로 확산된다.


애도와 제의

1990년대는 발칸 반도가 피로 물든 시기였다. 1992년 보스니아 전쟁은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에서 가장 참혹했고 세르비아는 보스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이들을 짓밟기 위해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세르비아 출신인 마리나에게 이 상황은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그는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시작된 <발칸 바로크>는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고 속죄하는 동시에 대량 학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퍼포먼스였다. 그는 공연 기간 동안 무거운 애도의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전시장과 숙소만을 오갔다. 그는 작업을 시작한 이래 가장 직접적으로 수많은 사람과 연결된 감각과 그들이 전하는 에너지를 느꼈다.


5. 눈빛

사람은 개별적인 경험에서 파생된 생각과 감정들에 의해 가치관을 이루고, 선택과 결과로 한 인생의 맥락을 이룬다. 각자 다른 내면을 가졌음에도 우리는 소통하며 때로 타인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우리는 공통적인 의사표현의 도구로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로 모든 것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외롭다.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언어가 아닌 말없이 바라봐주는 눈빛, 가벼운 끄덕임, 따스한 손길이다.


우리 사이의 바다

마리나는 2002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당시 뉴욕은 9·11 테러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감정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그는 뉴욕 시민들과 에너지교류를 실험하기 위해 <바다가 보이는 집>(2002)을 기획한다. 이 퍼포먼스는 먹지도 말하지도 않는 일종의 종교적 수행으로 내부를 비움으로써 얼마나 에너지를 행성 할 수 있고 또 그것으로 개별 관객과 전체 공간의 에너지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 동시에 언어 없이도 서로 교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조건 없는 눈빛

이렇게 말없이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한 또 다른 공연은 <예술가가 여기 있다>였다. 초기에 마리나는 이런 작업을 상상하지 못했다. 순수한 에너지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마음이며, 그 외의 요소는 단순할수록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40여 년이 걸렸다.


지금 여기, 나

<예술가가 여기 있다>에서 마리나와 마주 앉은 관객이 서로 강하게 연결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시간의 흐름을 잊고 오로지 현재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3년 만에 열린 전시 <512 시간>은 관객이 현재를 느낄 수 있도록 모든 방해 요소를 제거한 작품이었다. 간결한 지시는 있지만 정해진 시나리오나 결말, 그리고 과도한 오브제나 시간의 흐름도 없이 관객은 빈 공간 속에서 몸의 감각과 정신에 집중하며 그 순간만을 느꼈다. 정해진 결말이 없는 이 퍼포먼스에서는 관객의 경험 가장 중요했고, 그들이 오브제이자 퍼포먼스의 중심이었다. 마리나는 사람들이 타인이나 외부 세계와 맺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연결될 수 있다면

마리나는 <512 시간>에서처럼 개별 관객이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마주하고 무언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고 그다음 단계는 내면을 변화시킨 개인이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개인이 연결되어 강력한 집단 에너지를 이루면 더 커다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관객의 참여가 더 중요해졌고 2017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청소부>가 대표적이었다.


6. 아브라모비치


퍼포먼스의 시대

1950~60년대 시작된 퍼포먼스는 물질과 자본에 대한 반동으로 반사회적인 내용과 허무하게 사라지는 형태를 취했다. 회화나 조각 작품처럼 물질로서 작품을 남기지 않고, 투기의 대상이 되어 자본주의에 영합할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80년대 이후 퍼포먼스 열풍이 가라앉았으나 199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반자본주의적 예술로서 퍼포먼스가 다시 활기를 찾았다.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은 국내 미술관에서도 증가 추세다. 퍼포먼스가 다른 예술 장르와 가장 구분되는 점은 생산자와 수용자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존재하며 부딪히고 상호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관객과 함께 피드백의 고리를 채워가는 과정에서 평소에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진실이 노출된다. 이것은 오로지 그 순간에만 조우할 수 있는 우리만의 시간이다.


아브라모비치 메소드

마리나는 40년 이상의 작품 활동 끝에,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근원적이고 단순한 경험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마리나는 예술가로서 개인작업에 매달리지 않고, 대중의 의식 변화를 이루는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아브라모비치 메소드’는 현재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근원으로 향하는 마리나만의 방식으로 강렬한 경험을 통해 각자 변화하고 실천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인스티튜트는 장시간 지속되는 예술을 지원하며, ‘아브라모비치 메소드’로서 예술가와 대중이 자신의 내부를 재발견하고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마리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60번째 생일을 맞이한 해에 뉴욕 허드슨에 새로운 장소를 마련했다. 그는 지금도 세계와 조우하기 위해, 그리고 당신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가 눈을 맞출 때

마리나는 멀리 있는 것을 마법처럼 끌어와 펼쳐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에 천천히 머무는 예술을 제시한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외부의 정보와 언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마리나는 낯선 경험을 해야만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삶의 해결책은 알지 못하거나 두려운 일을 하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서 실패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존재이지만 거미줄 같은 관계와 넘쳐나는 언어 속에서도 여전히 외롭다.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구할 수 있다. 나의 내부를 직시하고 받아들여야만 본연의 자기 자신에게 이를 수 있고, 진짜 삶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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