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넘어, 설명과 반론으로 완성되는 학습 루틴
책을 읽고, 노트나 Notion에 정리하며 채우고, 머릿속에 최대한 정리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고 믿었다. AI가 일상에 스며들면서 나의 학습에 끌어들였다. 그리고 내가 완전히 배웠다는 믿음은 헛된 망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AI에게 내가 배운 내용으로 대화를 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금세 깨졌다.
내가 설명한 내용을 기반으로 AI에게 "이 주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관점을 다섯 가지 제시해 달라"라고 요청했을 때였다. 그제야 내가 놓친 지점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학습은 기록이나 정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설명하고 질문하고, 다시 반론을 받아야만 완성된다는 사실을.
나의 경험은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남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흔히 파인만 학습법이라 불리는 방법이다.
파인만 학습법은 복잡한 개념을 단순화하고,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남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법입니다.
- 파인만 학습법의 핵심 단계
① 주제 선정 및 개념 정리
배우고 싶은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노트에 적거나 머릿속에 정리한다.
② 쉽게 설명하기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최대한 단순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개념을 설명해 본다.
③ 모르는 부분 확인 및 보충
설명하다가 막히거나 불명확한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다시 공부하고 보충한다.
④ 반복 및 정리
설명을 반복하면서 개념을 더 간결하게 정리하고, 이해도를 높인다.
파인만 학습법은 분명히 효과적이다. 막상 실행하려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설명하다가 모르는 부분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사람은 지식의 저주에 걸린다. 지식의 저주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당연히 알 것이라고 착각해 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현상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보면 내가 제대로 몰라 설명에 어색한 부분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AI에게 '너를 중학생 수준이라고 생각해'라는 명령만 내리면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어려운 단어로 설명하고 넘어가려는 부분을 알 수 있다.
또한 교육학에서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즉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점검하는 능력"을 학습의 핵심 요소로 꼽는다. 정리만 해서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드러나지 않는다. 설명하고 질문받을 때 비로소 빈틈이 드러난다.
AI와의 대화는 그 과정을 거울처럼 비춰주었다.
✅ 쇼펜하우어의 철학
나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공부하면서, 그가 자살을 삶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았다고 오해했다. 하지만 AI는 내 설명을 바로잡았다.
쇼펜하우어는 자살을 어리석은 행위로 봤다. 개인이 죽는다고 해서 세계의 고통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텍스트를 읽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 영화 매트릭스의 자유의지
영화 <매트릭스>를 보며 1편에서는 자유의지를 긍정하고, 2·3편에서는 자유의지를 부정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AI는 내 관점을 반박했다.
오라클은 끝까지 자유의지를 관철했고, 인간을 닮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놓친 건 "부정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확장"이었다.
✅ 최적화에 대한 관점
나는 최적화란 여러 사람의 방식을 배워 좋은 방법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AI는 이렇게 반박했다."최적화는 허상일 수 있다. 최소 시간에 최대 효율을 추구하는 순간, 배우는 과정과 적용 과정에서 이미 비효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효율을 좇던 내 사고가 얼마나 단순했는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중요한 건 AI가 먼저 알려준 게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게 뭐야?"라고 묻는 게 아니라, "내 설명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관점을 제시해 달라"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중 한 가지 관점을 선택해 토론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AI는 내가 이해한 내용의 취약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이는 마치 독서 모임에서 누군가의 질문 하나가 내 허술한 이해를 드러내는 순간과 같았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AI는 언제든 질문할 수 있는 '항상 열려 있는 독서 모임'이라는 점이다.
AI와 대화를 단순한 검색으로 쓰면 10%만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습 파트너로 활용하면,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가 된다. 내가 활용해 본 방법은 이렇다.
1️⃣ 역할 부여하기
"너는 소크라테스야. 내 설명을 검토하고 부족한 점을 질문해 줘."
역할을 부여하면 답변의 깊이가 달라진다.
2️⃣ 다각적 관점 요청하기
"이 주제를 다섯 가지 관점에서 설명해 줘."
이렇게 하면 내가 놓친 시야를 보완할 수 있다.
3️⃣ 반론 요청하기
"내 설명의 취약점을 찾아줘."
반론은 내가 가진 오해를 드러내는 가장 빠른 길이다.
4️⃣ 비유로 풀기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줘."
비유와 쉬운 언어는 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검증하는 도구다.
이 네 가지가 방법이 파인만 학습법(설명하기)과 메타인지(내가 모르는 것 점검)를 AI 대화에 적용하는 방법이다.
학습은 읽고 정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설명하고, 질문하고, 반론을 받는 과정이 있어야 진짜 이해에 도달한다.
AI와의 대화는 나의 이해를 시험대에 올리고, 취약점을 드러내며, 다른 관점으로 확장시킨다. 그것은 마치 나만의 토론장이었고 AI는 가정교사 같았다. 언제든 질문할 수 있고, 끊임없이 토론할 수 있는 학습 파트너.
"당신도 지금 아는 것을 설명해 보라. 그때부터 진짜 학습이 시작된다."
AI와의 대화는 나의 맹점을 드러내고, 설명과 질문을 통해 이해를 완성하는 나만의 가정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