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문장들로 푸닥거리
올해 내 생일은 맘껏 기쁠 수가 없었다.
내 생일에 아들이 태어났다. 그건 9년째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일이다. 남은 생 동안 이렇게 아이와 생일축하를 같이 받는 것에 두려울 사람이 있다면 내 친구들은 날 축하해준다고 안심시켜줄 수 있다. 이 끄적거림은 올해 내 생일 즈음인 어제 그제 생긴 일들에 대한 얘기이다.
서울로 복귀하고 교회를 옮기며 친하게 지낸 동갑내기 목사의 어머님께서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투병으로 힘들어하는 목사님과 위로의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생생한데 헤어짐의 도착은 너무나 빨랐다.
기분과 기운이 좋지 않았다.
장례식장의 적막한 공간은 얼은 대기와 같았다. 이 기운이 외동아들에서 온 것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때론 분위기가 말없이 상황을 전한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앉아서 다른 손님들 몰려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게 우리의 일이라는 신랑의 말에 따라 공간의 정중앙에 덩그러니 앉았다. 그 분위기 결정체의 기운을 받았는지 뿜어냈는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것에 낯설어 밥을 먹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지만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인의 마지막 상차림이라는 생각에 먹었다. 손자인 두 아들은 싱그럽게 아름다울 정도로 뛰어다녔다.
장례식 밥은 내게 참으로 소화 못시키는 밥이다. 여러 번 몸의 경험으로 이젠 그렇게 몸에 새겨졌다.
대기의 불편함은 몸을 타격해왔다. 아니 내 몸으로부터 생겨난 느낌들이 몸을 장악했다. 장례식을 다녀와서 심상치 않았다.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는 몸의 상태였다. 결국 다 토해냈고, 생일 내내 몸을 추스르질 못하고 누워있었고 오늘에서야 일상을 보낸다. 끼니에 밥다운 밥을 먹고 씻고 나갔다오고 생일 축하 지난 톡들에 답하고 그런 별다를 것 없는 일상 말이다.
어제 저녁 믿기 어렵게 7년째 함께 살던 이끼가 죽었다. 죽음의 징조가 몇 번 있었지만 잘 넘겼다고 생각했다. 평균 나이보다 오래 산다는 생각은 했지만 잘 키우면 10년도 거뜬히 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끼가 잘 살던 어항 물을 최근에 갈아주고 인간의 기운으로 느껴지기로는 주로 숨어있거나 안 움직이던 이끼가 행복하게 헤엄을 쳤다고 생각하던 차이다. 그 활기찬 움직임은 죽기 직전 생의 찬미 같은 헤엄이었을까. 서울로 복귀하고 새로운 삶을 펼쳐나간 우리 집에 와줘서 고마운 이끼에게 어항 너머로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헤어졌다. 이끼의 죽음은 마치 강력한 생의 기운으로 사의 기운을 재촉하여 순환시켜버린 느낌이다. 죽음이 때가 있다지만 겪은 자에게 백 살 부모가 떠난 들, 세상에 호상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겨울이라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날이 맑았고 햇볕이 좋았던 며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