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9일에 만났다.
― 글. 홍희진 독립큐레이터
김윤호 작가는 늘 경계와 자유, 관계와 생성이라는 키워드를 작업의 중심에 두어왔다고 말한다. 그는 배드민턴 경기를 예로 들며, 네트가 필요한지 아닌지, 코트의 안과 밖이 어떻게 감각을 달리 만드는지에 주목한다. 안에 들어가 정신없이 반응하는 순간과 멀리서 바라볼 때의 느린 감각은, 시점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충돌과 감정의 진폭을 잘 보여준다. 2017년 홍티아트센터에서 동료 작가들, 공단 노동자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즐기며 공간의 활기를 끌어낸 경험은 이러한 태도의 실천적 사례였다. 2016년 울산 북구예술창작소에서의 첫 레지던시 경험 또한 작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시장 상인들과 교류하며 생활 속에서 미술의 가능성을 찾던 그는, 전시장이 지닌 ‘문턱’을 문제 삼았다. 그래서 탄생한 작업이 바로 <문턱>(2017)이다. 관객이 몸소 문지방을 넘어야만 작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이 작업은, 전시장이라는 제도적 울타리를 넘어서는 시도로 기획되었다. 작가는 과학적 사유와 미술의 접합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확률과 확실 사이에서>(2017)라는 작품은 초끈이론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다. 학부 시절부터 과학과 건축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온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라는 질문을 예술 속에 끌어들이고자 했다. 종이를 겹겹이 붙여 만든 돌덩이 같은 조각 실험도 그 연장선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당시를 돌아보며 “의식적으로 미술에 빨리 속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성급했던 태도에 대한 반성은, 이후의 작업에서 보다 여유 있는 사유로 이어졌다. 그는 이제 무거운 돌이나 나무보다 가볍고 조각행위에 빠른 반응을 보이는 스폰지를 선호한다.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 이성이 과하게 개입합니다. 저는 더 직관적인 조각을 원했어요. 스폰지는 단단하면서도 물러서 표현이 난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인터뷰 중, 작가의 말
스폰지는 단단하면서도 유연해, 그가 추구하는 ‘그림 같은 조각’을 가능하게 하고, 불교의 무봉탑처럼 인위적 이음새 없이 자연스러운 연속성을 구현한다. 소재의 무게와 노동, 감각의 둔화까지 고민한 끝에, 그는 결국 ‘삶과 예술을 먼지 같은 입자’로 이해하는 지점에 다다른다. 가벼움 속에 오히려 무게를 사유하는 태도, 그것이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한국적 사유와 불교적 세계관 또한 그의 작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토대다. 최치원의 ‘접화군생’, 청원유신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화엄경과 법화경의 가르침은 작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가 즐겨본다는 최광진의 미학 유투브에 나오는 “작가라면 개성과 지역성, 시대성이 삼박자로 맞아야 한다”는 견해에 공감하면서도, 특정 목적을 세우기보다 삶의 태도 속에서 자연스러운 확장을 추구한다. 코로나를 겪으며 인간의 약한 인체를 강하게 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존재 <맨베트>(2021), 빅뱅의 한 점과 같은 최소 입자를 가진 <메타폼>(2022)를 만든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미술이 정말 활용될 수 없고, 실용성이 없다는 생각이 강렬해지면서 결국 ‘예술적인 쓸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쓸모란 시선을 환기하는 힘, 세상과 다시 관계 맺는 능력에서 창출되는 것으로 갈음한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전시장을 물질로 다루는 태도가 중요한 축을 이룬다. 가령, 《빵야!빵야!》(2024)는 전시장 구조와 수치를 활용하고 합판을 공간에 가로지르고 거울이라는 상징적인 구멍과 실제 뚫은 구멍으로 어딘가로 터트려주는, 혹은 다른 공간으로 매개해주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는 공간의 고정된 형상으로 맺혀있는 생각의 결계를 파하고, 관객이 인식을 다시 환기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려는 장치였다. 《뻥이요》(2024)에서는 전시장 문에 풍선 이미지를 부착하여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터져버리는 효과를 통해, 갇힌 에너지가 세상과 섞이는 경험을 구현했다. 이 전시에 놓여진 저주하는 마음을 의례하는 저주인형이나 건물이 커지면서 점점 더 커지는 고질라와 킹콩 인형과 같이 구입한 오브제들은 억압과 불안, 경쟁 사회의 긴장에 대한 환기였다. 이렇듯 공간을 사물로 대하여 다른 공간으로 연결해주려는 그의 태도는 이러한 환기 방법을 취한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민감한 감각으로, 2023년 오픈스페이스 배에서 열린 개인전 《떨어지는 꽃잎, 흩날리는 수증기》에서는 전시장의 수직적이고 좁은 공간의 형태, 구성 물질과 구조를 그대로 파악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위층에는 불, 아래층에는 물, 중간층에는 번개를 의미하는 조형물로 만들어 배치했다. 이는 전시장을 일방적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입장에서 호흡하는 태도였다. 과거와 현재, 건물을 사용한 여러 시간대 사람들 차원에서 생긴 흔적을 존중하여 하나의 역사를 가진 몸으로 변주시켜 그 몸 속에서 자신의 몸이 함께 호흡하는 장소로서 전시장을 이해한 것이다.
“작가라고 공간에 들어가 선두에서 정해서 정리하긴 싫어서 살아온 태도에 대한 반성과 같이 다시금 구멍을 낸다던지 여지를 뒀어요. 호흡점을 그걸로 끝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
물질을 마주하는 것은 늘 문제입니다. 문제는 없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항상 문제이지요.” -인터뷰 중, 작가의 말
필자가 본 그는 일상과 미술의 교차에서 만난 이성과 제도를 일단 뒤로 가볍게 빼버리는 전술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끊임없이 문제를 돌려보며 다른 형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힘을 얻는다. 형식의 창출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 경계를 지속적인 호흡으로 환기시키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그의 예술적 실천을 이끌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김윤호 작가의 예술적인 쓸모, 그리고 ‘이성과 제도의 뺄셈’ 방법이다.
김해문화관광재단 웰컴레지던시 전문가매칭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처음 가보는 김해를 배경으로 김윤호 작가를 4시간 가량(11-15시) 만났고 위와 같은 글을 남깁니다. 김해문화관광재단 웰컴레지던시 설명: https://www.ghct.or.kr/content/intro06_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