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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설레게 하는 일

인간은 걸어야 사는 존재라는 자각

by Hiker 나한영

1. 내가 여행 크리에이터라고?


나는 내가 여행 크리에이터인 줄 몰랐다. 책을 출간하고 작가 소개난에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별칭이 붙었을 때도, 브런치스토리가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을 붙여줬을 때도 그 무게를 가볍게 여겼다. 한 번도 나 자신을 여행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다녔고, 걷기를 했다. 10년 전 걷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걷기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과 같이 다녔고, 다니면서 인솔을 했다. 그렇게 한 인솔이 800번을 넘었다. 내가 좋아하는 걷기와 여행을 사람들과 같이 하는 즐거움에 빠졌다.


그렇게 좋아서 다니다 보니 이곳저곳 참 많이 갔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여기저기 다녔다. 한번 간 곳보다 안 갔던 곳을 새로 개척해 가는 것을 더 즐겼다.


내가 갈 때는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알고 가려는 것이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 그것이 왜 그곳에 있는지, 그것은 지금까지 어떤 의미였는지를 공부한 만큼 여행의 감동은 배가됐다. 걸으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도 어디 있나 일부러 찾아보게 되고 매 순간 감동의 연속인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개척하는 것도 즐겼다. 남들이 안간곳, 잘 안가는 곳을 걷는 흥미와 새로운 발견이 나를 이끌었다.


2. 인간은 걸어야 사는 존재


여행은 우리를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에서 해방시켜 준다. 인간은 원래 하루종일 새로운 곳을 걷는 존재였다. 100만 년간 먹이를 찾아, 잘 곳을 찾아 하루종일 걷던 존재이다. 걸으면 해결됐다. 인류문명의 진화는 그렇게 가능했다.


걷지 않는 인간은 산업화 이후 디지털시대가 된 뒤부터 생겨났다. 인류 역사를 24시간에 비춰 보면 1초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인간의 DNA에 23시간 59분 59초는 걸었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걷지 않는 현대의 인간은 '운동'이란 명목으로 억지로 걷는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운동을 위해 걸었던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걸었다. 그 차이는 명백하다. 짐에서 러닝머신으로 걷거나 뛰거나 하는 것은 인간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꽉 닫힌 공간이나 늘상 보던 트렉에선 우리의 두뇌가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트 1기 1회차 해남 땅끝을 출발하며(2.22)


걷기여행은 인간이 만물을 볼 수 있는 시속 4~5km의 속도로 이루어진다. 야외에서 인간은 옛 기억을 되살린다. 우리의 두뇌가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새로운 정보를 파악하느라 바쁘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이유는 냄새를 맡게 하기 위해서이다. 강아지에게 냄새는 정보이다. 인간은 보는 것으로 정보를 얻지만 동시에 오감을 활용해 입체적으로 얻는다. 그것은 뇌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인간의 뇌는 새로 들어오는 정보를 획득, 저장, 분석, 지난 정보와의 연결 과정을 통해 놀랍게 성장한다. 1년간 추적관찰에서 스트레칭은 노화에 따른 뇌의 해마의 자연감소(매년 -1%)를 단 1도 막지 못했지만 걷기는 해마의 크기를 2% 성장시켰다는 미국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도 있다. 걷기를 통해 들어오는 새 정보는 인간의 오랜 기억 상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매우 흥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걸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왕 같은 시간을 쓸 바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하면서 걸어야 한다. 새로운 곳으로의 야외 걷기는 자연스럽게 그런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준다. 걷기가 단지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힐링이 되고 긍정과 자신감을 높이고 행복을 선사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이유이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생존과 연대의 삶을 위한 필수 조건 들이다.


3. 나를 설레게 하는 일


나는 새롭게 자각하고 있다. 그동안 소홀할 수 있었던 여행 크리에이터의 무게감을.(여행 크리에이터보다 걷기여행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여기에 대해 말하자면 또 많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줄인다.) 나만 즐기고 과시하기 위한 명칭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내가 걸으며 본 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했다. 나누고, 같이 동참하는 것만큼 설레는 일, 보람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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