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 연인이 되기 위하여
솔로들이 흔히 소울메이트를 찾는다. 처음 만났어도 "아 이 사람이야" 하고 한눈에 알아보는 영원한 영혼의 동반자이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은 없다고 말해도 "아냐 언젠가 내 앞에 나타날 거야" 하고 무작정 기다린다. 환상을 갖는다는 것, 그래서 지금 현재를 기대와 설렘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 어찌보면 참 멋진 일이다.
소울메이트를 찾는 심리적 기저에는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을 찾는 성향이 존재한다. 나는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하지만 그 동기는 내 기준에 맞아야 하고 내 뜻에 따라야 한다는 심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기의 기준이 명확하다 보니 소울메이트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누굴 봐도 성에 안 차고, 주변에서 찾을 수 없다 보니 기대감이 더욱 커진 소울메이트라고 하는 마음이 그려낸 형상체를 더욱 바라고 기대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이런 감정을 기대한다. 간혹 "아 이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금세 실망한다. 내 기준에 맞는 사람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애인이 되어 사귀더라도 애인이 그 기준에 따라오기가 힘들다. 내가 정한 기준, 내가 정한 규칙에 집착하는 성향 때문에 애인의 실수에 덜 관대하다. 애인이 내 기준을 못 따라오면 그때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사귐이 계속될수록 "아 이 사람은 내 소울메이트가 아니었네 어쩌지" 하고 무언가 불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소울메이트란 내가 예측 가능하고 내가 통제 가능한, 내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그가 알아서 실행해 주는 나의 아바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생각할 것이 있다. 왜 굳이 나와 같은 사람을 따로 찾는가라는 것이다. 그는 결국 나면 된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를 내가 알고 있다. 내 소울메이트는 나면 족한데 또 다른 대상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주 잘못됐던 것이다.
내 사람을 만날 때 유연함이 필요하다.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간혹 물을 때 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굳이 꼽자면 외모가 달라도, 성격이 달라도 감정이 통하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해두고 싶다. 또 하나 꼽자면 여행을 같이 할 수 있는(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다. 혹자는 이상형이란, 어떤 사람을 1년 이상 사귀고 있다면 그가 바로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동감한다.
유연함은 배움을 전제로 한다. 나와 상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이다.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되냐고. 아니 중간이 필요하다. 나와 같지는 않지만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취미가 다른 사람, 종교가 다른 사람,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이라도 왜 다르냐고 싸우지 않을 사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상대,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상대라는 서로의 접점이 있다면 행복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상대를 인정하는데서 개별성이 살아나고 자유로운 감정이 생기고 이런 편안하고 흡족한 심리상태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같지 않다고 싸우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이다. 유연하면 싸움이 줄어든다. 상대를 인정하면 싸울 일이 없다. 존중감이 살아나면 오히려 서로에게 더 잘하려고 한다.
만약 내 취미생활을 하고 싶다면 굳이 애인과만 같이 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지거나 나와 같은 관심을 가진 동호회나 친구들과 같이 하면 된다. 굳이 내 아바타를 따로 세워 대상화하지 말고 아바타는 나로서 족하다. 소울메이트는 내 아바타가 아닌, 나와 다르지만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로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배우고 새로움을 발견하며 다양하고 행복한 미래를 같이 열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그가 나의 소울메이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