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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곳이 다 길이 아닌가요?

사람길이 많아지면 어떤 세상이 될까?

by Hiker 나한영

소외와 단절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사람길 걷기 운동을 하고 있으니, 걷는 곳이 다 길이 아니냐고 묻는다. 아마도 조선시대였다면 걷는 곳은 다 길이고 사람길이었다. 삼남대로, 영남대로 하는 모든 대로 역시 사람길이었다. 우마차도 다녔지만 길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사람이었다. 굳이 사람길로 호칭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길이 다 사람길이기 때문이다.


차가 들어오고 찻길이 생기면서 모든 길은 차의 차지가 되었다. 모든 길은 차가 주인인 것처럼 도시계획을 할 때도 찻길부터 그어놓고, 시골 신작로를 낼 때도 차가 다닐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둔다. 사람은 차에 길을 내주고 변방에서 찻길의 배려로 한 귀퉁이를 내 준 인도에서 걷게 되었다. 그나마 배려하면 있지만 지방도는 인도조차 없다. 시골 할머니들이 찻길 가를 아슬아슬 걷다가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차에 희생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길의 주인이 차가 되고부터 인간 소외 현상이 나타났다. 차는 생물처럼 움직이지만 무생물이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괴생명체가 되어 감정 없이 움직인다. 사람이 그 속에 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는 차 안에 갇혀 있다. 사람은 차 속에서 차 밖에 있는 사람과 인사도 나눌 수 없다. 동물원의 동물처럼 사람을 객체화해 구경할 뿐이다. 소통은 없다. 차 밖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구경하고 있는 차 안에 있는 사람을 얼굴조차 볼 수 없다. 졸고 있는지, 술에 취해 운전하는지, 사람을 해치려 하는지 알수가 없다. 다행히 사고가 안나길 바랄 뿐이다. 이 단절된 길에 적응하면서 사람들은 소통을 포기했다. 그저 각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갈 뿐이다.


찻길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도 갈라놓았다. 건너편의 카페에 가려면 그냥은 갈 수 없다. 생태통로처럼 허용된 곳을 통해서만 허용된 시간에 조심히 건너가야 한다. 나는 양재동에서 찻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죽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괴물이 다니는 찻길 옆을 아슬아슬 곡예하듯 걸어 다닌다. 단절된 채 길의 변방에 놓인 사람의 모습은 원래 길의 주인이었던 모습이 아니다.


사람길의 한 사례인 강북도시자연산책길


소외받지 않을 때 제 가치를 발휘하는 인간


사람이 길의 주인일 때 사람이 살아난다. 우리가 주말에 등산로를 걸으면 누구랄 것도 없이 스치면서 인사를 나눈다. 사람이 살아나면 소통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 시대에 찻길을 피해 걷게 된 등산로는 가장 사람을 사람이게 만들어 주는 사람길이 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중심일 때, 소외받지 않을 때 제 가치를 발휘한다. 사람들 속에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다른 사람이 보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차에 길을 내 준 뒤부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찻길만 길인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등산로 외에도 사람길은 곳곳에 많다. 흔히 둘레길도 사람길이다. 그러나 사람길이라고 반드시 흙길이거나 숲길일 필요는 없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 걸을 수 있는 길이라면 사람길이다. 공원길, 천변길, 차가 다닐 수 없는 옛 골목길도 사람길이다. 찻길을 사람길로 바꾼 곳도 많다. 남산 북측순환로, 서울로 7017길, 청계천길, 경춘선숲길, 경의선숲길은 사람이 길의 주인이 돼야 소통이 일어나고 주변도 살아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생긴 길들이다. 서울만 아니라 경기도도 옛길 복원 사업으로 많은 사람길을 다시 만들어냈다.


차가 가긴 해도 사람길 사이로 미안해하며 가는 길도 있다. 덕수궁 돌담길이 대표적인 예이다. 차가 주인이었던 길에서 사람이 주인인 길로 바뀌었다. 이 모두가 사람길의 범주에 있는 길들이다. 차보다 사람을 우선시해 차가 무조건 천천히 지나가야 하는 의무가 적용되는 보행자중심길(보행자우선도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서촌이나 북촌, 인사동길을 걸어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길거리가 자유롭고 활기 있다. 소통과 회복이 일어나는 사람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들은 차가 다니긴 해도 보행자가 우선인 보행자우선도로로 지정된 길이다. 보행자우선도로란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로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보장하기 위해 보행자 통행이 차량통행에 우선하도록 지정한 도로를 말한다. 서울시엔 보행자우선도로가 133개소가 지정돼 있는데 앞으로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보행자우선도로도 사람길의 범주에 속한다. 사진은 보행자우선도로인 인사동길


더 많은 희망을 위하여


도시라 해서 사람길 걷기를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찾기만 하면 사람길이 우릴 반겨 준다. 또 우리가 사람길 걷기를 즐길수록 사람길은 더 많아질 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8년 전 사람길로 '서울종단길'을 만들었다. 서울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사람길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마찬가지로 '서울횡단길'도 만들었다. '서울 사람길 100km 루트'도 만들었다. 도로와 빌딩으로 도배된 메가시티로만 서울을 알지만 사람길로만 100km 이상 이을 수 환경이라면 사람이 살만한 도시임이 증명된다고 생각해, 연속되는 사람길을 찾아내서 이은 것이다.


우리 국토의 남쪽 끝 해남에서 북쪽 끝 고성까지 찻길이 아닌 사람길로 도보 국토종주할 수 있는 '사람길 국토종주길'(한국종단트레일 HANT)도 만들었다. 내가 길을 새로 낸 것이 아니고 이미 있는 사람길들을 찾아내고 지자체에서 만들어놓은 둘레길을 잇고 사라져 가는 옛길을 잇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서 사람이 주인이 되는 길로 걸어서 국토종주 할 수 있게 재탄생시켰다.(앞으로 지자체와 더 협력하겠지만 아직은 군데군데 찻길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나는 10여 년 전 걷기 모임을 만들어 사람길 걷기를 실천했고, 이제는 사단법인 사람길을 설립해 실천하고 있다. 이왕이면 걷기 운동을 할 때 사람이 소외된 찻길 가를 걷지 말고 사람이 주인이 된 길을 걷자는 것이다.


원래 길의 주인이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길을 걸으면 힐링이 저절로 된다. 기분이 좋아지고 걸을수록 건강해진다. 소외나 단절 대신 소통과 회복이 일어난다. 지나는 사람끼리 서로 활력과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사람길은 앞으로도 더 많아져야 한다. 사람을 회복하는 길, 소통과 힐링이 일어나는 길, 건강한 길,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람길을 걷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서만 사람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사람길로 걸어서 출근도 하고, 안전을 걱정하지 않고 학교도 가고, 지인을 만나러도 가고, 사람길을 거닐며 데이트도 할 수 있도록 사람길이 많아지길 바래 본다. 가만히 앉아서 많아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길을 찾아서 걷고 어디 갈 때도 걸어서 찻길보다 사람길을 이용한다면, 그래서 사람길을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우리 주변에 사람길은 더 많아질 것이고 우리가 사는 곳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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