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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국토종주길이란?

새로운 방향: 대한민국의 바람직한 도보 국토종주길 개발 방향(2)

by Hiker 나한영

온전한 의미의 국토종주란?


조선 중기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만국경위도에 우리나라 전도全圖의 남쪽 기점을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명시하므로 우리나라 육지의 끝이 되는 최남단과 최북단을 분명히 했다. 20세기초 육당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3천리 금수강산'이란 용어를 처음 언급했을 때 '3천리'는 해남 땅끝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 한반도의 가장 긴 축을 잇는 거리이자 국토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즉 남북으로 국토의 끝과 끝을 잇는 것이 온전한 의미의 국토종주이다. 또한 이 같은 온전한 의미를 충족하는 국토종주는 국토 전체를 걷는 상징성을 갖는다.


따라서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볼 때 온전한 의미의 국토종주길이 되기 위해서는 해남 땅끝점에서 시작해 도보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인 고성 통일전망대 제진검문소까지 우리 국토의 최장축을 대각선으로 관통하는 길이 국토종주길이 되어야 한다.


과연 이렇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을까. 차도인 국도를 이용해 걷는다 해도 분명 갈 수는 있다. 그러나 걸으면서 우리 국토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면 도보 국토종주의 의미를 살릴 수 없다. 국도를 이용한다면 그 길이 아무리 짧다 해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극기훈련 이상의 걷기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60년대, 70년대부터 도보 전용 국토종주길을 개발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서부와 중부, 동부에서 국토의 남북을 잇는 PCT, CDT, AT가 그것이다. 영국의 National Trail, 뉴질랜드의 Walkway, 호주의 Walking Track, 독일의 Wandering Route, 이웃 일본의 '장거리 자연보도'가 그것이다.


국토종주의 온전한 개념은 국토의 최장축을 걷는 것이며, 걷는 동안 국토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본 전제 속에 아래의 이상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이상적 국토종주의 조건들


1. 도보길이어야 한다.


만약 찻길을 따라 걷는다면 호랑가시나무 언덕의 묘역을 가볼 수 없을 것이고, 호랑가시나무의 잎을 찾아보며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을 것이다. 시속 4~5km의 걷기 속도는 만물을 눈에 담고 느낄 수 있는 속도이다. 우리 국토의 숨겨진 속살을 속속들이 뜯어보고 그 하나하나를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도보길이어야 국토종주가 나에게 영향을 주는 나의 것이 될 수 있다.


2. 사람길이어야 한다.


찻길을 걸으면 볼 수 있는 것이 찻길밖에 없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걷기가 된다. 걷기 내내 차량의 위협과 소음, 매연에 시달려야 한다. 무엇보다 사람을 위한 걷기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달리는 찻길 가를 걸을 때의 위축감과 소외감은 왜 걷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든다. 흥미나 재미가 없으므로 신도 나지 않고, 걷기의 맛도 느낄 수 없다. 무한 인내심 외엔 국토종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차를 위해 만들어진 찻길을 걷는 국토종주는 도보 국토종주가 아니다. 사람이 길의 주인이 될 때 오롯이 국토를 보고 느끼고 얻을 수 있다.


3. 중간의 길이어야 한다.


찻길도 아니고 산길도 아닌 그 중간의 길이어야 한다. 다름 아닌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이 길은 찻길 외엔 다른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국도도 아니고, 지역의 삶과 동떨어져 자연만 보는 산길도 아니다. 마을과 마을을 이으며 과거에 주민들이 걸었던 옛길, 지역과 밀접한 둘레길, 농로길을 걷고 때에 따라선 산 넘고 강 건너는 국토종주의 본 뜻을 훼손하지 않으며 우리 국토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우리 국토의 역사·문화·자연·지리·지역의 삶 등 우리 국토를 가장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길이다.


4. 지역 친밀감을 쌓는 길이어야 한다


흔히 여행 갈 때처럼 특정 관광지나 포인트를 정하고 다녀오는 방식은 진정으로 그 지역을 알 수 없고 친근감도 쌓을 수 없다. 도보 국토종단 여행은 지역으로의 새로운 접근법이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닌 타 지역이 단지 관광 서비스를 받기 위해 들렀다 가는 피상적인 곳이 아니라 진정으로 알고 친근해지기 위한 걷기가 국토종주이다. 도보 국토종주를 통해 나와 우리의 땅인 국토로서 경험케 하고 명소 여부를 떠나 걷기의 연계 속에서 지역의 작은 모습 하나까지 속속들이 보고 감성으로 느끼고 진정으로 아는 친근한 지역이 된다.


5. 지역과 접하는 기회를 만들고 넓히는 길이어야 한다


걷기 하는 해당 지역이 품고 있는 우리 땅과 삶의 모습을 진정성 있게 바라보고 함께 공감하는 기회를 만든다. 공감이 이뤄지면 그 지역은 더 이상 그곳만의 지역이 아닌 공감하는 모든 국민의 지역이 된다. 도보 국토종주가 계기가 되어 쌓는 지역에 대한 친밀감은 그 지역 내 걷지 않은 다른 곳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 때문에 국토종주는 지역과 접하는 기회가 많아지게 하는 길이며, 확장성을 갖는 길이다.


6. 하나 되는 길이어야 한다


제각각 다른 지역의 특색을 접하고 나면 그 지역들을 흐르는 하나의 줄기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각자 다른 지역을 관통하는 한국적 전통과 정신, 모두가 공감하는 우리의 정서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많으면 많을수록 폭과 확신은 커진다. 특히 우리 국토를 지킨 하나 같았던 노력과 희생들을 보며 우리가 같은 목적을 갖고 같은 것을 지킨 하나라는 것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국토종주를 하면 지역 갈등이 근거 없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7. 미래를 여는 길이어야 한다


도보 국토종단의 모든 길과 지역은 수천 년 수만 년 켜켜이 쌓인 우리의 역사의 현장이다. 대대로 우리나라 사람의 삶의 터전이 됐던 우리 국토에 대한 이해를 키우고, 대한민국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은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된다.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정체성이 기반되어야 한다. 자기 정체성과 역사에 기반하지 않는 미래는 내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도보 국토종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길이다.


8.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길이어야 한다


정체성을 찾는 것은 이 땅을 사는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한국적 자부심은 세계로 연결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나만이 가진 색깔과 특징이 세계의 일원이 되게 한다. 세계 시민이 되는 길이 국토종주에 있다. 또한 PCT를 걸으며 미국을 알듯 외국인이 HANT(한국종단트레일)를 걸으며 우리를 아는 길이기도 하다. 즉 가능성은 정체성과, 그를 기반한 소통에 있다. 모두가 자기만의 정체성을 갖고 소통한다면 가능성은 무한대로 확장한다. 정체성을 갖고 모두와 소통하는 길, 그로 인한 무한한 가능성을 여는 길로서 도보 국토종주길이 되어야 한다.


9. 스토리텔링이 쌓이는 길이어야 한다


걷기는 무조건 걷는 것이 아니다. 걷다 보면 자연히 길에 많은 이야기가 쌓인다. 옛이야기도 불러오고, 현재의 걷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쌓인다. 이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 우리가 왜 그곳을 찾아야 하고 걸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 스토리텔링은 걷기의 의미와 보람, 만족도를 높여 주는 중요한 수단이며 방법이다. 이를 통해 국토종주라는 거대 담론 안에서 지역의 작은 장소 하나까지 뜻이 살아나고 눈여겨보는 명소로 탈바꿈한다.


10.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길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국토는 세계 10위권 대의 경제강국이자 한류 붐의 원천지이다. 고래로 금수강산으로 불려 온 천혜의 산천과 자연을 가진 우리 국토이다. 우열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특색을 가진 우리나라의 도보 국토종주 루트는 한국적이라는 데서 세계적이다. 외국인 걷기 여행자에게도 한국을 느끼는 가장 좋은 매력적 걷기 여행 트레일이 되어야 한다. 한국종단트레일이 세계인의 트레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도보 국토종주길의 효과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도보 국토종주길은 한국에 닥친 여러 과제를 해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1. 지역 위기 극복


국토종주는 지역 특산품 구매 및 숙식할 수 있는 기회를 필수적으로 제공하는 1차적 효과 외에 장기적 진흥 효과를 가져온다. 지역의 역사와 전통, 문화, 명소를 찬찬히 보고, 알며 지역 친밀감을 쌓는 기회를 제공하므로 한번 왔다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대한 관심의 확대와 지역 내 여타 다른 곳으로 여행의 기회를 확대한다. 인구 감소, 저출산으로 지방 소멸 위기를 안고 있는 지방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유휴 공간이 많아진 지방은 이를 실행하기 위한 여력이 많다. 특별한 투자 없이 무공해 산업이자 해당 지역에 대한 이해와 호감까지 가장 자연스럽게 효율적으로 얻는 걷기산업의 메카로 거듭날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국토종주길이 지나는 곳에 도보 국토 순례자들을 위한 시설, 쉼터를 설치해 국토 순례자들을 더 많이 유치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지역의 많은 길이 걷지 않아 황폐화되는 것에 반해 국토종주길은 선택과 집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집중으로 인한 파급력 또한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 도보 국토종주길이 활성화되면 유동 인구 증가와 함께 걷기 산업이 성장하는 선순환구조가 생성된다. 도보 국토순례길이 활성화된다면 지방이 겪고 있는 많은 위기를 청정 산업인 걷기산업의 기회로 탈바꿈 시키게 될 것이다.


2. 지방 특성과 자연 환경의 보존


지방에 들어서는 산업 클러스터들이 지역과의 부조화와 주민의 반발로 지역의 전통과 마을, 자연을 훼손하고, 막대한 지방 재정 투입에 비해 지방 인구 감소 현상의 여파로 실패 부담이 높은 반면 국토종주길은 오히려 지역의 특성과 전통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산업 클러스터를 부정하는 의미가 아니라 관광자원 활용의 측면에서 비용에 비해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형적 변형이나 자연 훼손 없이 지역의 특성을 보고 느끼고 향유하므로 도보 국토순례의 의미와 효과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 자연을 살리고 보호하며 진작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방 인구 감소와 함께 대두된 가장 큰 문제는 전통의 소멸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한국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미래 한국의 자산이자 자랑이 되는 것이다.


3. 소통의 사람길이 만드는 확장성


도시의 찻길이 사람의 길을 단절하고 인간 소외 현상의 단면으로 부작용이 대두된 것의 반성으로 사람이 중심이 돼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사람길의 회복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소통의 길로서 사람길이 정착되면서 사람길 주변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된 사례를 수도 없이 경험하고 있다. 사람길로 걷는 국토종주 트레일은 찻길도 아니고 산길도 아닌 마을과 마을을 잇는 진정한 소통의 길을 지향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순례자 맞춤 형태의 호스텔, 게스트하우스, 식당, 카페, 바 들이 생겨났듯 걷기산업의 인구 유입 영향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고 친지역적이고 친환경적이다. 국토종주길 주변에 도보 순례자를 위한 맞춤 숙소와 식당을 다양한 형태의 게스트하우스와 쉼터로 개설할 수 있다. 이들은 옛길에 필수였던 주막 처럼 순례자들의 소통의 장으로 역할하며 더 많은 순례자를 유치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사람길이 만들 수 있는 걷기산업의 확장성이다.


(참고) 이상적 도보 국토종주길의 방향(1) : 우리나라엔 왜 도보 국토종주길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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