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숲길/자연길·데크길
천상병 시인이 즐겨 걸었던 노원골(수락계곡)을 중심으로 뒷동산처럼 부담 없이 가 볼 수 있는 수락산 귀임봉과 여름에도 시원한 수락산무장애숲길을 연계해 걷는다. 천상병 시인이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던 것처럼 이 길은 '수락산 소풍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휴식과 자연 관찰, 역사유적 견학이나 운동을 위해 야외에 다녀오는 일'이라는 국어사전의 '소풍'의 개념에서 보면, 소풍의 확장이 우리의 삶일 것이다.
이 길은 숲, 계곡, 전망의 세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쓰리섬 길이다. '소풍'의 정의 대로 문학기행, 역사탐방, 운동효과의 세 가지를 같이 누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문학기행을 하고 역사유적을 답사하고 숲과 계곡과 전망을 즐기며 자연풍광에 매료되는 사이 힐링과 운동이 저절로 되는 수락산 소풍길 여행을 떠나본다. 전망 좋은 산 위에서 맛볼 도시락이나 간식을 챙겨가면 더 좋다.
출발하자마자 천상병 문학기행
비가 오락가락하던 8월 9일 이 길을 걸었다. 출발은 수락산역 3번 출구에서 한다.
출발하자마자 천상병 문학기행이 시작된다. 천 시인은 젊어서 일명 '동백림사건'이라는 중앙정보부의 간첩 조작 사건으로 무고하게 끌려가 고문후유증을 앓으며 살아야 했다. 자신을 간호했던 목옥순 씨와 43세이던 1972년 결혼한 후부터 8년 간 수락산 아래에서 살며 전성기 문학활동을 펼쳤다.
지금은 수락산 역세권 동네로 변했지만 시인이 살 때는 한적한 빈민촌이었다. 수락산역 3번 출구 앞의 골목길로 들어가 좌회전 한번, 우회전 한번 하고 100m쯤 직진하면 시인이 살던 집터이다. 이 자리에 지금은 경서레디빌 B동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시인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안내판조차 없다.
집터에서 수락산 가는 길은 '보행자 중심의 걷고 싶은 거리'를 표방한 '디자인거리'이다. 이 길은 '천상병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거리의 가로등 기둥은 모두 천 시인의 시작詩作으로 채워져 있어 조금만 걸음을 늦추면 여유롭게 시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이 길의 중간쯤 되는 부분에 '귀천정'이라는 정자가 있는 천상병공원이 있다.
공원에 설치된 동상이 참 재밌다. 행복한 표정의 시인의 팔을 한 아이가 잡아 끄는지 매달리는지 하고 있고 똥개가 시인의 벗겨진 신발 한 짝을 쥐고 물어뜯고 있다. 천 시인의 소박하고 천진한 모습과 딱 맞는 조형물이다. 천 시인의 타임캡슐도 눈에 띈다. 탄생 200주년이 되는 2130년에 개봉한다고 한다.
디자인거리는 노원평전투대첩비에서 끝나고 이곳부터 '천상병산길'이 이어진다. 시인도 매일 아침 이 길을 걸었다. 길 옆은 계곡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시인의 시를 새긴 시판이 줄이어 서 있다.
여름이 되면
새벽 5시에 깨어서
산 계곡으로 올라와
날마다 목욕을 한다.
아침마다 만나는 얼굴들의
제법 다정한 이야기들
...
목욕하고 있다 보면
계곡 흐름의 그윽한 정취여
-<계곡흐름> 천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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