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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활동을 시작한 계기

키키 편:누군가 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by 천둥

천둥과 키키는 한 마을의 이웃이었다. 천둥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자녀들은 의무교육을 마친 상태지만, 지역적 특성이나 배경을 잘 알고 있고, 약간의 시간 차가 있기는 해도 학교는 여전히 그대로여서 두 사람이 학부모회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천둥: 키키가 처음 학부모회 활동을 해보겠다고 연락했던 때가 생각나네. 우리,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키키: 그러자. 그때 큰아이가 학폭 사건을 겪고 있었지. 아이가 중2 때, 한 학년 아래 민수(가명)와 갈등이 있었어. 처음엔 나도 흔한 다툼 정도로 여겼어. “너도 어느 정도는 잘못했을 수 있어, 그냥 신경 쓰지 마.” 하면서 넘기려 했지. 하지만 민수는 우리 아이를 타겟으로 계속 도발하는 행동을 했어.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지쳐갔고, 나도 마음이 무거워졌지.

이참에 아이에게 새로운 교육 환경을 마련해주자는 마음으로 나는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대안학교로 전학을 시켰어.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이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2주 만에 돌아왔어. 돌아온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민수는 여전히 우리 아이를 괴롭혔지.

선생님들은 "민수는 원래 문제아예요. 그냥 아이에게 좀 참고 넘기라고 해주세요."라며 상황을 방관했어. 내 아이는 날이 갈수록 우울감과 무력감에 시달렸고, 나 역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막막했어.

그러던 중, 내가 가르치던(글쓰기 교실 운영중) 아이들 중에도 민수 무리 때문에 고통받는 친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심지어 담임선생님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셨다는 거야. 정말 가슴이 철렁했어.

바로 그 무렵, 학부모회 일을 하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어. 곧 공모제 교장을 새로 모셔야 하는 중요한 시점인데, 다음 학부모회장을 맡을 사람이 마땅히 없다면서 “네가 회장을 맡아보는 게 어떻겠니?”라고 제안하더라고.

그 순간, 두 가지 감정이 들었어. 하나는 부담감. 내가 과연 그런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한 학교의 학부모회장이라는 이름 아래 주어질 책임과 부담이 너무 크게 느껴졌지. 다른 하나는 궁금증.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지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건 분노에 가까운 질문이기도 한데,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오래 고통을 받아야 했을까? 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조차 이런 일을 겪어야 할까? 나는 우선 이런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계속 다치는 게 참을 수 없었어. 어쩌면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학교라는 구조, 제도, 관행 등 너무 오래 고여 있어서 생기는 문제일지도 모르잖아. 더 이상 '누가 해결해주겠지.' 하고 기다릴 수 없었어. 이건 개인의 일이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할 공적 과제라는 생각이 나를 학부모회로 이끌었던 것 같아.


천둥: 개인적인 문제로 시작했지만 바로 공적 문제로 다가왔네?


키키: 응, 정말 그래. 나한테 학부모회는 단순히 내 아이만을 위한 방패가 아니라 학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관찰 창구였고,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 공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발언대라고 느껴졌어. 내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위해 공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졌어. 그래서 학부모회장을 시작하면서 되게 무겁고 책임감 있게 받아들였던 기억이 나.


천둥: 다시 그 학폭 사건으로 돌아와 볼까? 그 당시 어떤 마음이었어?


키키: 솔직히 깊은 상처였지. 아이들 분쟁이 쉽게 끝나지 않았거든.

아이 친구들이 나를 보며 “진짜 너무 억울한 상황이에요. ○○이 너무 불쌍해요.”라고 말하더라고.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구나, 내 아이의 아픔을 너무 가볍게 보고 간과했구나 싶어서 맘이 너무 아팠지.

아이들은 그런 교실 분위기를 수용하는 것 자체가 무력감이 느껴진다는 말도 했어. 나는 거의 매일 선생님들과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문제는 전혀 풀리지 않았고, 결국엔 아이도, 나도 완전히 무너졌었어. 돌이켜보면, 그때 선생님들은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아.

아이는 민수랑 싸우고 싶다고 했어. 그것도 당장 싸우고 싶다고. 선생님들도 다 싫다면서 매일 밤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어찌할지 몰라서 허둥지둥했어. 하루하루가 그저 암담하기만 했지. 근데 돌이켜보니, 그 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나도 아이도 바꿔놓았어.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밤마다 산책을 나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할 수 있었거든. 아이는 엄마에게 마음을 토로하면서 자신만의 기질을 실컷 드러냈고, 나는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발견해나갔어.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간이었어.

그후로 ‘아이들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어. 가해자냐 피해자냐, 이분법적인 틀에서 벗어나서 그 중간에 놓여있는 복잡한 감정들—아이의 억울함, 모멸감, 교사에 대한 불신, 그리고 좌절감 등등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지.

그때 생각했지. 내 아이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부모회를 통해 학교와 학부모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나누는 통로가 되어야겠다. 그 절박함과 책임감으로 학부모회 활동을 시작한 거야.


천둥: 정말 상처 위에 핀 꽃이네. 모든 과정이 힘들었겠지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


키키: 학폭 심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였어. 우리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해자처럼 심판받는 기분이었어. "그걸 네가 좀 더 참았어야지." "어머니가 좀 더 지혜롭게 아이를 키워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 정말 심장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더라.

학교는 그저 사건을 빨리 정리되기를 바라는 태도였고, 아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였어. 아,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누군가가’가 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움직여야겠구나.


천둥: 만약 그때 학부모회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키키: 아마 끝없는 좌절감과 무력감 속에서 학교에 대한 불평과 불신을 계속했겠지. 또 아이를 어찌 대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었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컸거든. 아이도 나도 억울하고 막막한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외롭고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거든.

다행히 학부모회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어. 민수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이를 어쩔 줄 몰라 하는 다른 학부모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권유해서 함께 학부모회에서 활동을 했어. 우리는 조금씩 연결되면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지금보다 더 안전한 학교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됐지.

우리 가족에게도 변화가 있었어. 초등을 다니던 둘째, 셋째도 내가 학교 전반의 흐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친구 관계, 수업 분위기 같은 이야기를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건네더라고. 아이들과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지면서 학교생활 안에서 어떻게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선생님과 소통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이야기해줄 수 있었어. 아이들은 내가 학교를 드나들며 그들의 생활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간섭이나 부담으로 느끼기보다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는 거 같았어.

최근의 일인데, 둘째 친구들이 복도에서 다툼이 있었나 봐. 하교중에 내게 전화해서 정황을 자세히 설명하더라고. 마지막에 하는 말이 “엄마가 학폭심의인가, 그거 한다며? 그러면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알려주는 거야.”라고 하더라고. 아이가 엄마의 학부모회 활동을 의미 있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마웠어.

그건 아마도 ‘내 아이만을 위한 학부모회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야. 늘 다른 아이들, 다른 학부모들, 선생님들과 학교 전체를 보고 고민하니까 아이들도 내가 학교를 통째로 품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게 아닐까 싶어. 선생님들 외에 자신들의 생활을 관심 있게 바라봐주는 ‘또 다른 어른’으로서 나를 받아들인 거지.

무엇보다, 아이의 사건을 개인적인 고통으로만 받아들인 게 아니라 아이들의 일상이 학교와 마을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살펴보게 되는 눈이 생긴 것 같아.


천둥: 개인에서 전체로 시야가 넓어졌네.


키키: 맞아. 학폭이라는 계기가 있었고 개인적인 문제로 출발했지만, 거기 머무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더라.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보는가', 그리고 '어떤 자리에서 보느냐'라고 생각해. 학부모회의 자리는 내가 무기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구조를 분석하고 제안할 수 있는 제3자의 입장이 되게 해주는 자리였던 거 같아.

학부모회 활동을 하면 보통 단순한 회의 참석이나 행사 준비에 봉사 참여하는 정도에 머무르게 되는데, 학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풀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되면 좋겠어. 이왕이면 그걸 계기로 공공의 시선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

그동안 학부모라는 정체성은 너무도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었잖아. 하지만 사실 우리야말로 아이들을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교육의 주체’인데, 그 관점이 학교라는 구조 안에서는 너무 소외되어 있거든. 이제는 ‘단순한 민원인’에 머물지 않고 학교와 함께 교육을 만들어가는 동반자, 협력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쉽지는 않겠지. 수시로 내 목소리가 왜곡되거나, 의도를 오해받기도 하거든. 과연 이 구조가 바뀔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으니까.


천둥: 그래. 쉬운 일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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