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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썼는데 왜 유치할까?

<에세이 글쓰기 수업> 저자 이지니

by 이지니


글쓰기 초보가 글 잘 쓰는 사람으로 바뀌는 한 문장

: 당신의 글이 기회로 바뀌는 순간







글을 쓰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썼는데 왜 이렇게 유치하게 느껴질까, 감정은 솔직한데 왜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까. 저 역시 그랬습니다. 밤새 몰입해서 써 내려간 글을 다음 날 아침 다시 읽어보면, 이게 뭐야, 마치 중학생 일기 같잖아,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땐 몰랐어요. 문제는 감정의 ‘양’이 아니라 ‘방향’이라는 걸요.




우리는 흔히 ‘솔직하면 좋은 글’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그건 ‘일기’라면 괜찮은 이야기입니다. 일기는 나를 위한 글이니까요. 문장이 다소 서툴러도, 감정이 넘쳐흘러도 괜찮습니다. 그날의 마음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니까요. 하지만 에세이는 다릅니다. 에세이는 ‘읽는 사람’을 전제로 둔 글입니다. 누군가가 바쁜 시간을 쪼개 내 글을 읽는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고마운 일이죠. 그런데 그 소중한 시간을 들여 읽은 글이 단지 내 감정의 배출로 끝난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차이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볼게요.



<일기 버전>

일주일 전에 새 구두를 샀습니다. 신을 때마다 발이 아파요. 그래도 덜 아플 때까지 참고 신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신다 보면 언젠가는 안 아픈 날이 오겠죠.



그런데 이렇게 써보면 어떨까요?



<에세이 버전>

일주일 전에 새 구두를 샀다. 아직도 발이 아프지만 조금만 견디면 굳은살이 생기고 신발이 편해질 것이다. 삶도 그렇다. 힘든 시기를 잘 견뎌야 ‘삶의 굳은살’이 생기고, 그게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같은 이야기인데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하나는 감정에서 멈추고, 다른 하나는 생각으로 확장돼요. 이게 바로 일기와 에세이의 결정적 차이입니다.








저 역시 처음엔 그걸 몰랐습니다. 그날의 기분, 서운함, 분노, 후회 같은 감정들을 그저 솔직하게 써 내려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늘 같은 감정만 반복할까.’ 그때부터 감정 뒤에 ‘왜’라는 질문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 말이 그렇게 서운했을까. 왜 그 상황이 유독 마음에 남았을까.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제 글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이 단순한 하소연에서 나를 이해하는 사유로 바뀌었고, 글의 깊이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쓸 때 저는 이 세 가지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첫째, 왜 그랬을까. 둘째, 그건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셋째, 이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감정 뒤에 이 질문들을 덧붙이면 글은 훨씬 단단해집니다. 일기는 감정에서 끝나지만, 에세이는 생각으로 확장되죠. 그렇게 생각이 쌓이다 보면, 그건 언젠가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그 공감이 결국 내 글의 철학이 됩니다.






지금의 저는 종이책을 7권 냈고, 전국 도서관과 학교를 다니며 1,000번 가까운 강연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시작은, 그저 메모 한 줄이었습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침대 머리맡 메모장에 “오늘 회사에서 혼났다. 기분이 나빴다.”라고 적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그 뒤에 한 문장을 더 붙였습니다. “그래도 이 경험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질 것 같다.” 그 짧은 문장이 제 글을, 그리고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그 메모가 블로그 글이 되고, 전자책이 되고, 결국 종이책이 되었습니다. 책이 나오자 강연 제안이 오고, 강연이 또 다른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글쓰기가 내 인생의 첫 기회를 만들어줬구나.’







사람들은 종종 말합니다. “그건 운이 좋았던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운이 아니라, 짧더라도 꾸준히 보여지는 글을 썼던 사람의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는 한두 번의 글로 오지 않아요. 감정 위에 사유를 얹고, 그걸 꾸준히 이어갈 때 비로소 찾아옵니다. 그런 글에는 공감하는 사람이 생기고, 위로받는 사람이 생기고, 그리고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때부터 내 삶을 적은 문장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는 문장이 됩니다.




혹시 지금, ‘나도 해낼 수 있을까’ 망설이고 있나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는 지금, 당신의 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을 떠올리면 글을 쓰는 이유가 훨씬 선명해질 거예요. 기회는 기다린다고 오지 않습니다. 글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그 시도, 바로 거기서 인생의 전환점이 시작됩니다.







글쓰기는 첫 기회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당신의 첫 기회가, 글에서 시작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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