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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줄도 쓰기 힘겨워하던 아이의 최후!(어린이글쓰기)

by 이지니

한두 줄도 쓰기 힘겨워하던 아이가... 어린이 글쓰기 수업 시간에 4장을 써낸 날!






초등 글쓰기 수업을 맡은 지 벌써 2년이 되어 간다. 월요일과 화요일, 50분씩 아이들과 마주 앉아 종이 위에 적혀 내려가는 문장들을 바라보다 보면, 문장이 문장 이상의 것이 되는 순간을 종종 목격한다. ‘잘 써야 한다’가 목적이 아니라, “아, 글쓰기!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이거, 꽤 재밌는데?”하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것. 사실 그게 내가 어린이 글쓰기 수업을 할 때 가장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S군의 변화는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처음 왔을 때부터 밝고 발표도 잘했지만, 이상하게도 글만 쓰려하면 갑자기 힘들어지던 아이. 한 장을 채우는 날은 참 귀했다. 종이를 앞에 두고 시계를 보거나 연필을 굴려보거나, 가끔은 먼 산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까지. 부담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글을 ‘써야 한다’는 순간 작아지는 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글쓰기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변화가 아주 조용히, 티도 안 나게 쌓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뚝!’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S군도 정확히 그랬다.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어느 날은 한 장을 채우고, 그다음 주에도 또 한 장을 채우고. 억지로 끌려가는 듯한 몸짓이 아니라, 글과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표정이 변했기 때문이다. 예전엔 생각이 막히면 연필부터 멈추던 아이가, 요즘은 생각이 막히면 오히려 종이를 쓱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그리고 2주 전, 나는 진짜 깜짝 놀랐다. 아이 손에 들린 종이가 네 장이었다. 네 장. 그것도 억지로 늘린 문단이 아니라, ‘대체 이 아이 머릿속에서 무슨 세계가 돌아가는 걸까?’ 싶은 엉뚱하고 발랄한 이야기들로 꽉 채운 네 장. 나는 아이에게 진심 다해 말했다. “세상에!! 우리 OO이가 4장을 쓰다니! 한 장만 써도 대단한데... 정말 멋지다!” 수업이 끝나고 기쁨을 참지 못해 아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자랑하고 싶어서, 그저 너무 대견해서. 어머니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그래요? 근데 글 보면 별스런 얘기는 없을 텐데요? 하하.”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이 살짝 짠했다. 어머니의 의도가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엉뚱한 이야기 한 편’이 누군가에게는 ‘처음 넘어선 벽’ 일 수 있다는 걸.



글쓰기가 부담스러웠던 아이가 연필을 들고 네 장을 채우기까지, 그 아이 마음속에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을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네 장이 아니라, “나도 써낼 수 있구나!”라는 마음의 움직임이고, 스스로를 향해 아주 작지만 단단하게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나는 확신한다. S군은 이제 글쓰기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관점보다 ‘두렵지 않다’, ‘나도 해낼 수 있다’라는 감각을 손에 쥔 아이가 되었다는 걸. 아이의 네 장짜리 글은 그 어떤 멋진 글보다 깊은 울림을 남겼다. 성장은 그렇게 온다.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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