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감독-연상호 /103분
&; 스포일러 포함
지난주에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얼굴>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이라서 이영화를 선택해서 본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연상호 감독이 직접 집필한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단순한 스릴을 넘어 존재, 기억, 사회의 망각을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2억으로 시작해 75억의 매출을 거둔 영화 <얼굴>은 큰돈을 들이지 않고 잘 만든 영화라서 더 의미가 깊다. 시각장애인 아버지 임영규(배우 권해요)와 실종된 어머니 정영희(배우 신현빈)의 죽음의 진실을 쫒는 아들 임동환(배우 박정민)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사라진 얼굴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얼굴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이며 남겨진 자들이 누군가를 기억할 수 있는 모습이다. 동환은 얼굴조차 몰랐던 어머니가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큐를 촬영하던 PD 김수진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추적하게 된다. 영화는 5번의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전각(도장)의 명인으로 방송 다큐멘터리를 찍는 임영규와 아버지를 도와주고 있는 아들이 PD 김수진 (한지현 배우)의 진행으로 인터뷰하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의 연기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촬영이 힘들다고 임영규가 쉬는 중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40년 전에 죽은 아내의 시신이 아파트 개발로 인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살은 다 썩고 뼈만 남았지만 주민등록증이 발견돼서 임영규의 아내로 추정하게 된 것이다.
동환은 죽은 어머니의 영정 사진도 없이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우리는 늘 영정 사진을 시신 앞에 놓고 손님을 받고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사진이 없으니 뭔가 빠진 것 같고 허전했다. 없는 게 낯설게 느껴졌서 사진의 중요성을 실감하였다. 장례를 치르는 중에 이모 둘이 부모에게 땅을 받은 거 때문에 각서를 받으러 왔다. 임영규는 엄마가 죽은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땅에 대한 소유는 모든 걸 포기한다고 했다. 정영희에게 부정적인 이모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못생겨서 동네에서 많은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영희가 어려서 집을 나갔다고 했다. 영희의 유골이 발견된 건 예전에 피복공장 근처였다. 그건 어린 나이에 영희가 피복공장에 다녔던 거와 무관하지 않다. 영희는 집을 나와서 피복공장에 취업했고 매일 급하게 돌아가는 피복공장에서 부지런히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1970년대 열악했던 노동환경과 사회적 편견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녀는 긴 머리를 늘어 트린체 얼굴은 드러나지 않게 하고 다녔고, 순박하고 자신감 없는 그녀를 주변 사람들은 하찮고 만만하게 생각했다. 잠시도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공장에서 어느 날 영희는 배가 아파서 급히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겨우 허락받고 공동 화장실을 달려갔지만 줄이 길게 서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 그녀는 돌아오다 결국 바지에 똥을 싸게 된 것이다. 평소 얼굴이 못생겼다고 괴물이라고 놀림받던 영희에게 똥걸레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우리가 외면했던 어두운 사회의 단면들을 보여 주었다.
피복공장 근처 길거리에서 도장 파는 일을 하던 시각장애인 임영규가 있었다. 남들이 알아봐 주지 않았는데 그런 그에게 영희가 다가가 도장에 관심을 갖는다.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도장을 만들어 주겠다는 영규가 그녀는 고마웠다. 오가며 자주 이야기를 나눴고 정이 들기 시작했다. 영규는 영희가 다른 남자를 만날까 봐 불안하여 결혼하자고 청혼했고 그녀도 흔쾌히 받아 들었다. 아들 동환도 낳고 둘은 잘 살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뭐가 잘못된 걸까?' 40년 전 젊은 나이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영희에 대해 궁금증에 생긴 PD와 아들 동환은 사건을 파헤쳐 보기로 한다. 그래서 당시 피혁공장 동료였던 진숙 어르신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진숙은 피혁공장의 재봉사였고 영희를 재봉사 시다로 엄청 부려먹었다고 증언했다. 누구에게 하소연하기 어려웠지만 다 받아 주었던 영희에게 진숙은 백주상 사장에게 강간을 당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진숙이 피혁공장에 이틀을 못 나오자 새로운 재봉사를 들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장에게 진숙이 강간당한 사실을 알고 있던 영희는 사장의 행동에 찾아가 항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사장이 영희의 말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자 길바닥에 내용을 써붙여 사실을 알린다. 당시 진숙은 강간당한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수치감을 갖게 되고 영희를 미워했다. 방법은 잘못됐지만 부당함을 항의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던 영희의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PD는 사장 백주상을 찾아가 죗값을 받게 하자고 동환과 백주상을 찾아가 정영희의 마지막 삶을 물어본다. 추잡하게 늙고 병들어 누워 있던 백주상은 임동환이 정영희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게다가 40년 공소시효가 사라졌으니 대답해 달라고 하자 장님 새끼 임영규가 영희를 죽였다고 떠들었다. 당시 백주상 사장은 강간사실을 폭로한 영희를 깡패들을 시켜 각목으로 패서 실신을 시켜버리기도 했다. 영희가 가여워 살려 달라고 영규가 부르짖는다. 영희는 밤에 다시 사장을 찾아가 악을 쓰며 따진다. 그런 영희를 며칠 일어나지 못하게 깡패들이 두들겨 패주었다. 영규는 어느 날 밤에 산에다 영희를 들러 업고 가서 낭떠러지에 떨어트렸다. 동환은 아버지에게 백주상을 만났다면서, 혹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였느냐고 묻는다. 그때 아버지 임영규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시각 장애인이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많이 맞고 자랐다고 한다. 그런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 전각을 배워 좌판을 열게 된 것이다. 그런 임영규에게 백주상은 가끔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럴 때 정영희를 만났고 지금 필요 없다는 영희에게 공짜로 도장을 파주었다. 어느 날 친구 규칠과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됐다. "아내 얼굴을 보는 게 소원이다"라고 하자 안 보는 게 나을 거라고 떨떠름하게 이야기를 했다. 영규는 주변에서 자신을 놀리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닫게 되었다.
영화의 반전은 정영희를 죽인 사람이 그녀의 남편 임영규라는 것이다. 임영규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놀리고 멸시당해 왔는데 영희가 무시해서 접근해 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 이 여자를 죽여주길 기다렸다. 백사장에게 처맞고 기어가고 하는 것에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모두 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했지만 영규가 따뜻하게 대해줘서 자신감을 갖게 된 거라고, 당신은 나를 못생긴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해서라고 했을 때 영규는 달려들어 영희의 목을 조르게 된다. 그래서 결국 영희를 죽였고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영규는 어려서부터의 모멸감을 내 힘으로 밀어낸 거라고 했다. 동환이에게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었다면서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해를 못 하면 '기생충 같은 놈'이라고까지 했다. 동환은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살인자'라고 했다. 그러나 영규는 공소시효가 다 지났고 손끝으로 내 삶을 개척했다고 절규한다. PD가 백주상에게 받아온 사진 한 장을 동환에게 주었다. 지금까지 영희의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다. 화면에서 영희의 얼굴은 철저하게 숨겨졌다. 긴 머리로 가려서 옆모습이나 뒷모습을 보여 주었다. 영희의 모습이 '괴물 같다'라는 말에 이상하게 생긴 모습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사진의 얼굴은 아주 평범한 얼굴이었다. 왜 그렇게 얼굴에 대해서 집착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한가족의 슬픈 이야기와 우리 사회의 깊은 모순을 섬세하게 꼬집고 있다. 그래서 영화 <얼굴>은 한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사회적 불평등, 노동문제, 그리고 세대적 모순까지 탐구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신은 누구의 얼굴을 외면하고 살아왔는가?"
"얼굴이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있을까?"
"기억되지 않는 존재는 진짜로 사라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