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7년째 접어들고 얼마 전 8년째 시작. 외국인으로서 한국생활
추운 겨울날이고 나는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남들이 연말 마무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 방구석에 그저 게 주문한 밀크티를 마시면서 멍 때리는 나, 가끔 인스타에 들어가 동료들의 제주도 여행 사진을 부러워하며, 그게 내 방학이다.
30대 들어가면서 계속 바쁘게 지내왔다. 그래서 그런지 휴식을 취하는 게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 것 같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부산에 가서 드라이브를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었을 텐데…
사실 20대 때도 엄청 열심히 살았다. 대학 졸업하고 나서 진정한 휴가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평일에 출근하고, 주말이 되면 시골집으로 가서 집안일을 하고, 베트남을 떠나는 날까지 그렇게 살았다.
늙어가면서 옛날 기억을 많이 생각난다던데, 그게 맞은 것 같다. 어느새 32세 성인이 되어버렸고 한국생활도 이제 7년째를 마무리해 좀 있으면 8년째가 시작될 것이다. 한국엔 이렇게 오래 머물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대학원을 졸업하면 베트남으로 돌아가 대학 강사나 하겠다는 생각, 오래가지 못했다. 운이 좋게 중소기업에 취직되니까 한국에서 몇 년 정도 경험을 쌓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으로 옮겼다. 그러다가 이제는, 베트남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그만 돌아다니고 베트남에 와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게 어떠냐 가족들과 친구들이 늘 말하곤 한다. 이 나이에 또 어디 가냐 거기 가서 뭐 하고 살겠냐, 네 능력 정도는 베트남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타국에서 고생을 하냐 등등, 사람들의 눈엔 내가 그저 생각이 짧은 어리석은 성인에 불과했다. 하긴, 또래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난, 한참 늦었지. 친구들의 안정한 직장과 행복한 가정, 거기에 자기 집 마련까지 성공, 그게 사람들이 늘 말하던 30대의 기준이란 말이다. 그런 기준과 비추어 봤을 때 나는 빵점! 뭐, 이미 늦었으니까 맨날 반복되는 잔소리를 듣고 사는 것보단 지금처럼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긴 한다.
어떻게 보면 나한테 한국은 현실을 잠시 외면하게 해주는, 그런 곳인 것 같다. 내 꿈도 꾸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이 회고를 자주 하더라고. 그렇게 회고하고 새해를 맞이할 새로운 목표와 희망을 생각하며 기대할 것이다. 나도 2021년 회고를 한번 해보자면,
내 인생에 처음으로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 집이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것처럼 느끼겠지만 사실 조그마한 오피스텔 정도였다. 원래 사내 대출을 받아서 전세로 계약하려다가 매매 계약에 사인해 버렸다. 덕분에 더 이상 이사 갈 필요가 없게 생겼고, 매월 급여날에 대출금 갚는 명목으로 강제 적금을 하게 생겼다. 그래도 내 명의로 된 자산이 있으니까 마음 한 구석에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하기도 했다. 누가 그랬는데 대출도 능력이라고. 나도 좀, 능력이 있었다.
이름이 잘 알려져 있는 금융 회사에서 직장생활 2년째, 그중 정규직 생활 1년째 하는 중. 회사 내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팀 내에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 다행인 게 여전히 내 일을 좋아하고 성장해나가고 싶은 마음이 유지되어 있다 (물론 가끔 번아웃이 찾아왔을 때가 있긴 하지만…). 1년 동안 멤버 교체가 많이 진행되었고, 같이 일했던 사람이 퇴사할 때마다 나 또한 서운하고 속상한 게 여전하다. 언제까지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해야 하나 싶은데… 익숙해지겠지 언젠가. 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서 아직 먼 거리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해내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갖고 있으니 내년에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음, 그 외엔 별 기록하고 싶은 게 없는 것 같다. 시국은 시국이지요 해외는 물론 국내 여행 목표도 이미 접었고, 집 - 회사 노선을 벗어나지 않게 매일매일 반복되는 인생을 살아갔던 2021년, 그저 월급을 꼬박꼬박 잘 받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았다! 내년에도 수고 좀 더 하게!
2022년 첫 월요일, 그리고 겨울방학 마지막 날
7시에 일어나 침대 위에 빙글빙글 돌면서 고민에 빠졌다. 겨울방학 마지막 날에 뭘 할까?
가고 싶은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책이나 좀 더 읽을까? 확인해 보니까 그 카페는 오늘까지 휴일이라네 참… 추운데 밖에 나서 돌아다니는 것보다 집에 누워 있는 게 더 좋은데, 게다가 해결해야 하는 케이크가 있단 말이다.
케이크라…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케이크 만들기는 결국 해냈다. 원데이클래스를 신청해서 어제 생크림 플라워 케이크를 만들어봤다. 선생님 덕분에 꽃다운 꽃들이 케이크 위에 피어났고, 나한테 값진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고도 집중을 해야 해서 2시간 동안 잡생각을 완전 멀리 하게 해 줬다. 일 걱정도 가족 걱정도, 내 인생 걱정마저도 하지 않았다 2시간 동안. 만족도 100점! 나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만 같았거든. 선생님도 놀라실 정도로 내 실력이 빠르게 좋아졌다. 처음엔 꽃인데 꽃처럼 안 생긴 것들 만들었다가 나중에 활짝 피어나는 꽃까지 만들었다니, 나 스스로 뿌듯했다. 근데 문제는 그 후부터 시작되었다. 난 원래 케이크를 잘 안 먹거든. 생일날에 친구가 보내준 케이크도 친구에게 다시 돌려줄 정도로 케이크를 잘 안 먹는 편이다.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케이크 조각을 먹긴 하는데 나 혼자서 케이크 하나를 다 먹어야 한다는 자체가, Mission Impossible! 친구들에게 나눠주려고 했지만 나눠주고 싶은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에 사는 것이고, 서울까지 가져가 주는 것도 극한직업이었다. 아침 식사로 해결하기에 너무 느끼한 것 같고, 이러다가 버리게 될 건데… 내일 출근할 때 회사로 가져가 동료들과 나눠 먹을까 생각했는데, 우리 동료들도 케이크 별로 좋아하지 않은 편이고, 오래 보관하는 케이크의 맛이 좀 걱정되어서… 뭐 어쨌든 방법이 있겠지!
케이크는 냉장고에 둔 채 카페에 가서 글을 좀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근데 카페 가기 전에, 작년부터 미루었던 치과 검진을 먼저 받기로 했다. 뭐 딱히 불편한 곳이 없는데 스케일링을 받는 김에 검진도 같이 받으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으로, 먼저 집 주변 치과의원을 찾아봤다. 언제부터 구글 아닌 카카오앱에 들어가 검색하는 습관이 생겼다. 위치를 보고, 별점도 보고, 홈페이지까지 확인한 후 집 건너편에 있는 치과의원에 전화를 걸었다. 11시 가능하다고 하니 바로 예약하고 브라브라 준비해서 집 밖으로 나갔다 노트북을 들고. 따스한 햇빛 아래 바쁘게 움직이는 패딩맨들, 한국 겨울이면 패딩이 진리지 말이다. 나도 그 패딩맨들 속에 하나가 되었다. 치과 가는 길에 공차 매점 하나 있거든. 나 여기 지나갈 때마다 마음속 항상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들어가서 우롱티 한잔만 사갈까?”라는 생각과 “에이, 우롱티 무슨 우롱티야! 다이어트를 한다며 돈 아껴 쓴다며? 언제까지 제멋대로 살려고 그러니?”라는 생각 간의 갈등. 이긴 자는 항상 전자였다. 우롱티 한잔 정도는 양보할 수 있거든. 오늘도 역시 전자가 승리했고! 아무튼 치과의원에서 스케일링을 받고 검진까지 받았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하시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한참 생각했다. 건강검진을 했을 때도 건강상태가 별 문제가 없다고 하시는데, 내가 왜 문제 있는 것처럼 느낀 건가? 몸무게 문제를 빼고 모든 진단을 거의 다 부정해 버리는 상태였다. 두통이 자꾸 찾아오는데 그것도 문제가 없다네. 찍을 수 있는 온갖 촬영을 했었고, 결론은 항상 문제가 없다는 것.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에 뭔가 잘 못됐다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는 그 자신감 때문인가? 문제가 되는 부분은 몸에 있지 않고 어쩌면 마음에 있는 것 같다. 심리치료 같은 걸 한번 받아볼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근데 그게 돈 많이 드는 거라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아직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서 괜찮겠지… 내 몸은 내가 잘 안다는 것처럼, 내 마음도 내가 잘 안다는 것이다. 뭔가 문제인지 알고 있지만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지 여전히 방법을 찾는 중이다.
검진을 받고 나서 1층 카페에 갔다. 월요일 오전에 카페에 가서 앉아 있는 게 참 오래만이다. 카페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잡담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한 구석에 앉아 글을 써보는 나. 이렇게 개인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는 것도 오래만이다. 카페에서 재택근무를 하면 당연히 회사 노트북을 들고 갔고, 쉬는 날에 카페에서 뭐 하면 항상 들고 가는 게 또 회사 노트북이었거든.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되어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해야 하는 조급한 마음으로 사니까 여행을 다닐 때도 회사 노트북이 필수였다. 작년을 다시 돌이켜보면 개인 노트북으로 만진 일이 거의 없었다. 사진을 많이 찍었으면 사진 편집을 위해서라도 개인 노트북을 썼을 텐데…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던 작년에 할 거 없었지. 그래서 개인 노트북을 더 좋은 걸로 바꾸겠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다 반대했다. 워커홀릭인 내가 개인 노트북을 쓸 여유가 없는데 거긴 왜 투자하냐며, 차라리 그 돈으로 저축하는 게 더 의미가 있겠다며… 근데 뭐, 결국은 새로운 노트북이 문 앞까지 배달되었다. 올해는 일 말고 내 커리어와 내 취미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데 이 정도를 투자해줘야 할 맛이 나지. 과연 올해는 개인 노트북을 몇 번 쓰게 될까?
카페에 멍하게 앉아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현재의 나에 대해서 만족한가? 뭐 때문에 이렇게 존재한가? 올해도 과연 작년처럼 살지 않을 건가? 수많은 질문은 머릿속에 떠올라 손가락이 키모드 위에 멈춰버렸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현재 타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한국 사람보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외국인, 나름 괜찮은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는 외국인 직장인. 한국에서 나에게 붙인 딱지, 외국인. 말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건데, 그래도 지금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외국인이라는 딱지를 떼고 싶을 때도 많았고, 일부러 티 내어 남의 눈에 잘 띄게 붙일 때도 있었다.
앞으로도 타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한국 사람보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외국인, 기존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는 외국인 직장인으로 살겠지만, 하나 더 붙인다면 회사에서 성공을 일으킬 직장인이 되고 싶다. 다니는 회사가 나한테 참 좋은 직장이거든. 나 자신이 성장해 나갈 수 있게 많이 지원해 주고, 자율과 책임으로 일하게 해주고 있으니까 그만큼 목표를 달성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 같다. 괜찮은 남자와 결혼하지 말고 지금 다니는 회사와 결혼하라는 다들 자주 하는 말, 워라밸이고 뭐고 나랑 크게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내가 그 상태를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근데 위에 말한 것들이 다 직장에 관한 이야기고, 나 자신한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통번역 업무를 그만하고 더 전문적인 커리어를 발전해나가고 싶다, 그 전문적인 커리어를 발견하고 싶다, 여기 말고 다른 회사나 다른 나라에 가더라도 그 커리어로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 하고 싶다, 그 외에는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싶다, 한국에 관련 책을 쓰고 베트남에서 출판하고 싶다 등 되고 싶은 게 참 많이 있다. 꿈은 마음속에 두고 있으면 영원히 꿈일 뿐이고, 그 꿈을 밖으로 꺼내어 실천해 보아야 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올해는 나도 하나하나씩 해보고 말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아직 없다. 천천히 맛보고 결정하기로!
현재의 나에 대해서 만족한가? 만족 반 불만족 반.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고, 내 생활뿐만 아니라 우리 식구들의 생활비를 챙겨드릴 수 있으니까 이 나에 대해 만족하다. 물론 가끔 우울해질 때 이 나를 원망하고 짜증 나긴 하지만요.
하고 싶은 것은 뭔지 알고, 할 수 있는 것도 뭔지 알고, 내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잘 알고 있는 나에 대해서도 만족하다. 내 장점을 살려서 끝까지 노력해 도전하는 일이 반복되는데 성공의 맛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에 대해 소중히 여기고 있다.
너무나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나, 불만족이다. 이성적으로 문제를 대면하고 해결했으면 좋았을 텐데, 항상 감정 개입을 허락해 줘 결국 상처를 받게 된 일이 드물지 않았거든. 다들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나 혼자서 그놈의 감정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진짜 많이 했었다.
쓸데없는 물건 앞에 유혹을 견디지 못한 나, 불만족이다. 잠이 안 올 때 항상 하는 버릇이 쇼핑앱에서 서핑하는 것이다. 서핑하다 보면 분명히 무언가 구매하게 될 건데, 작년에 구매했지만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옷들이 옷장 한 구석에 있거나, 한 순간에 마음에 들어 구매하게 돼 책장에 먼지를 쌓은 책들도 아직 있다. 매번 고쳐야지 고쳐야 되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돈은 돈 대로 나가고, 물건은 물건 대로 집에 쌓여 있다.
그럼 과연 올해도 작년처럼 살지 않을 건가?
일단 새해 3번째 날에 봤을 때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지만 여전히 작년처럼 살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은 완전 배체 할 수 없는 것 같다. 뻔하잖아. 평일에 회사에서 죽도록 일해야 하고, 주말만 되면 누워서 멍 때리는 상태가 지속될 것.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밖에 나가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한데 과연 올해는 가능한가 싶다. 지금 이 생각을 하는 자체가 잘못이지 말이다… 아무튼, 내 삶을 바꾸려면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이고, 안 그럼 올해 말까지 아쉬운 소리만 여전히 계속하게 될 것이다.
방학 마지막날이 할 거 없이 이렇게 허전하게 보내게 되었다. 내일이 오면 다시 집 - 회사 노선에 들어가 정신없이 달리게 될 건데…
정리하고 집이나 가서 케이크를 먹어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