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도 한국에 있었다
2024.09.15
나는 2024년 추석도 여전히 한국에 있다.
올해 추석은 주말과 끼면 5일이나 쉴 수 있었다. 동료들 중 몇몇 시 전주 이틀 정도 휴가를 써서 해외여행 갔다 온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해외여행이라... 언제 예약을 다 했지 이 사람들이? 이렇게 길게 쉬면 무조건 항공권이나 숙박은 죄다 가격이 다 올라갔을 텐데 말이다. 대단한 J들! (뭐 나도 완전 J지만)
나는 이번 추석에도 베트남 집에 가지 않았다. 가도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는데 (조카들이 새 학기 시작해 숙제를 하랴 학원 다녀랴 나보다 훨씬 더 바쁨) 차라리 그 비행기값을 아껴서 설날 때 집에 가지라고 생각했었다. 단 나라에 가기에 비자 신청이 너무 귀찮았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비자 신청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같은 질문을 한다 "그게 얼마나 어렵고 귀찮냐고 해외여행을 포기를 해?"라고!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들이 꽤나 많은 한국인들이 비자를 신청해야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 없을 만하지. 여권의 권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볼 적이 없을 것이다. 작년에 이탈리아 여행 비자를 알아봤는데 진작 포기했었다. 요청 서류가 왜 그렇게 많은지... 여기까지 끝이라면 섭섭하지. 서류를 접수하기 위해서 대사관 방문 예약도 해야 하는데 그게 아이돌 티켓팅만큼 힘든 일이다. 한국에 있으니까 외국인 대상 해외여행을 신청해 준 여행사가 많이 없고, 있다 해도 수수료가 진짜 많이 비싸더라. 여행 한 번을 가는데 그렇게 까다로우면 안 가는 게 낮겠다 싶었고, 그래서 일단 이탈리아 여행 계획을 접었다. 언젠가에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실 이번 추석 때 우리 집 막내 동생을 데러 오고 한국 관광을 구경시켜주려고 했었다. 근데 여기서도 비자 문제가 걸려 있었지. 관광비자를 받기가 어려워서 가족방문 비자로 신청했지만 서류 접수 단계부터 계속 문제가 생겼다. 까다로운 한국 비자센터를 잘 알기에 2달 전부터 이메일을 보내 신청 서류 리스트를 몇 번이나 받아왔다. 나중에 뭐라 뭐라 하면 그냥 받았던 안내 이메일을 내밀고 따져보려고도 했었다. 한국에서 서류를 준비해 베트남으로 보내야 해서 J답게 진짜 넉넉하게 준비하고 서류를 보냈다. 서류 접수하러 가는 날, 역시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막내가 서류를 제출했는데 거절을 당했다. 이유는 보증서와 신청서 양식이 최근에 바꿨는데 나는 옛날 양식을 써서 제출하니까 안 된다고 한 거였다. 막내가 거절을 당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양식들 우리가 이메일로 안내받고 받았던 거였잖아. 가서 다시 말해! 비자센터 직원분이 이메일로 안내해 준 대로 했다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고 따져봐라! 말을 못 하겠으면 스피커폰으로 연결해, 내가 말할 테니까!"
막내가 갔다 왔고 다시 나에게 전화했다. 알겠는데 최근에 양식이 바꿨고 어디도 아직 그 양식을 업로드하지 않아서 지금 비자를 신청하려면 새로운 양식으로 작성하고 다시 오라고 했다. 와 말이 안 나온다! 현장에 있었으면 내가 진상 민원처럼 보였겠지 소리를 지르고 따지고 난리 났을 텐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몇 번 서류 제출을 실패했고 4번째 방문인가 그제야 접수가 되었다. 근데 비자 결과가 나올 예상일이 9월 말이라 추석 계획을 엎을 수밖에 없었다. 미리 예약해 둔 버스나 숙소를 다 취소해야 했고, 이미 늦었으니 나는 어디든 갈 수 없게 되었다.
막내랑의 한국 여행 계획은 다시 10월 초에 미루게 되었고, 그전까지 비자가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도 막내도 수시로 비자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하곤 한다. 접수한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쯤 접수 상태에서 심사 중 상태로 변경되었다! 비자가 나올 때까지 착하게 살겠다는 우리 막내의 마음 다짐, 비자 하나를 받는 게 이렇게 힘든 건가 싶었다.
아무튼, 그래서 추석에는 다른 계획을 세워야 했다. 천년만년 전에 만나자고 이야기했던 친구들과 연락해 일정을 맞추고 장소를 정하고 추석 5일 연휴를 빠르게 채우게 되었다. 차가 없는 신세라 멀리 가지 못해 서울이나 경기도권에서 만나기로 했고, 여기 가서 이걸 보자고, 저기 가서 이걸 먹어보자고 딱히 평일과 다르지 않은 약속들이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시간도 가져보려고 한다. 집 주변에 돌아다니는 건 너무 시간 아깝고 그래서 악어봉 가보기로 결정했었다. 판교에서 충주까지 가는 KTX도 생겼으니 멀리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경기도 사는 사람들의 긍정 마인드인가 싶다). 날씨만 좋으면 문제가 없겠다 싶었고, 혼자 등산 가는 것도 처음 아니니까 살짝 겁이 나긴 하지만, 악어봉 올라가 SNS에서 늘 보여주는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내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겁보다 신이 더 많이 난 것 같다.
그리고 오늘, 광교에 있다. 아침에 주일미사를 드리러 다녀왔고, 늘 가던 책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도 읽었다. 9월이고 추석이지만 날씨가 너무나 뜨겁다... 아직 여름인가 착각할 정도 더위였고, 조금만 걷다 보면 땀이 줄줄 난다. 이런 날씨에 과연 월요일 등산 갈 수 있는가 급 걱정된다. 근데 최근에 춘천에서 등산 갔을 때도 어마어마한 더위를 견디고 정상까지 올라갔는데 뭐 문제겠어? 비만 안 오면 되겠지만 말이다.
아 오늘 2시 20분에 배테랑 2 예매를 했었고, 운이 좋게도 무대인사가 있는 날이다. 딱히 좋아하는 배우들이 없는데 예매했을 때 그냥 무대인사가 있고 마침 자리가 남아 있어서 (무대인사를 즐기기에 막 좋은 자리가 아니지만) 결제를 눌렀다. 황정민 배우님, 정해인 배우님 등 모두 다 나온다고 봤는데 살짝 기대가 된다 그동안 마동석 배우님의 무대인사만 봤지 (그래, 나는 마동석 배우님의 찐 팬이다) 다른 무대인사를 보는 게 처음이라...
이렇게 추석을 보내고 좀 있으면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현실... 그 현실이 다가오기 전까지 부디 최대한 맘껏 쉬고 즐기리라!
다들, 해피 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