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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Oct 27. 2024

7화 (2)작은, 그러나 무수의 균열로

기다랗게 주름이 팬 사수의 뺨에 그늘이 드리웠다. 장례식은 이제 시작이었고, 사수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은 아직도 수두룩할 터였다. 사수가 축 내려앉은 입꼬리를 무겁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기, 그만 내려놓자."


"내려놓자마자 귀신같이 알고 울어요."


"네가 알는지 모르겠구나. 자비…… 너도 그랬었지……"


나는 씁쓸했다. 내가 알는지 모르겠다니…… 사수는 기억 회로마저 방전된 모양이었다.


사수 본인에게서 귀에 딱지 앉도록 들어온 이야기였으므로 소상히도 알았다. 역대 보육원생 중 가장 유난스럽게 사수 품을 파고들었다던 어린 시절의 나를 사수가 어떻게 재우고 어떻게 깨웠는지 말이다. 지금 사수는, 기억의 어디쯤을 헤매는 걸까. 기껏 제자리를 찾은 사수의 입꼬리가 또다시 미세하게 떨려왔. 나는 조마조마했다. 그게, 무너질까 봐. 아기처럼 울던 사수. 사수는 딱 렇게 시작되었었다. 작은, 그러나 무수의 균열로. 그 순간 우리는 덜컥 바라보았다. 나는 사수를, 사수는 나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먼저 거둔 건 사수였다. 사수가 한동안 창밖을 응시했다. 먹구름 천지여서 암흑뿐인 그곳을. 뚫어지게. 묻어두었던 지난날의 그곳 사수는 나보다 먼저 다다른 듯했다. 그곳에서 사수는 울지 않았다. 아이처럼도, 사수처럼도. 미세하게 떨리던 사수의 입꼬리는 그냥 그러다 말았고, 사수는 눈곱을 떼는 척하는 수법으로 베일 끝에 극소량의 눈물을 찍어내는 게 고작이었다. 사수는 안으로 무너졌으므로.


사실 사수의 눈물과는 다른 의미로 나는 아까부터 눈물이 났다.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거적때기 같은 마스크를 도로 쓴 거북함도 거북함이고, 서 있는 것도 서 있는 건데, 자아의 손톱부터 다듬어야 할 듯했다. 단추와 단추 사이에서 자아는 툭하면 털 군락을 꼬집었다. 이게 생후 한 달 아기의 힘이 맞나 싶게, 그곳 털을 뭉텅이로 쥐곤 딱 뽑히기 직전까지 잡아당겼다. 나는 뿌리가 얼얼했다. 출산의 고통이란 게 이런 걸까. 구급차에 누워 웅크리던 도다리가 떠올랐다. 이를 꽉 물었더니 입 안에서 진짜 피비린내가 났다. 삼켜도 삼켜도 그게 삼켜지지 않아서 속이 왕창 메스꺼워졌다. 그때, 그냥 있지, 베일 끝을 만지작거리던 사수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기침, 그쳤네? 독감 그놈, 드디어 나갔나 보다!"


케케케케켁!


연기가 아닌 실제였다. 예상치 못한 사수의 집요함에 놀라 나는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기침이 속사포로 쏟아졌다. 대박이었다. 사수는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 기침 패턴을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연기든 실제든 마지막으로 기침한 게 언제였더라. 기침은 둘째치고 그들의 사고 소식을 들은 뒤부터 나는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먹고 자고 쌌는지도 가물가물했다. 내가 딱 필요한 타이밍에만 기침을 해온 필연적 독감 환자였음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쿠울럭! 쿠울럭! 쿠우우울럭!


"놀래라! 물 줄까? 마스크, 벗겨줄까?"


사수가 다급히 내 쪽으로 팔을 뻗으며 말했다. 뭐, 뭘, 벗겨요? 나는 일단 뒷걸음질 치며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렸다.


"쿠울럭! 아직! 아니! 아기! 쿠우우울럭! 아니! 혹시! 아기이이!"


아기라면 밥도 미사도 뒷전인 사수였다. 소멸 여부가 불분명한 독감 바이러스로부터 막 태어난 생명을 보호해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마스크 위 두 눈에 힘을 주며 강력하게 주장했다. 다행히 잘 전달되었는지, 사수는 뻗던 팔을 멈칫하곤 내 품에 안긴 자아를 내려다보았다. 자아는 분명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지만 내가 몸통을 울리며 기침할 때마다 불편하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그러곤, 꼬집었다.


"그럼 후딱 교체라도 하자. 희던 게, 새카매."


사수가 장바구니로 몸을 돌렸다. 주섬주섬 장바구니를 뒤적이던 사수가 마침내 그 안에서 새하얀 뭉치를 찾아 높이 들어 보였다. 내 눈앞에서 경쾌하게 흔들리는 저것은 딸랑이인가, 나는 순간 흐릿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사수는 마트에서 내 마스크까지 사 온 모양이었다. 멀리서도 특대형이었다.


진짜 본인이 교체해버릴 작정인지 사수는 마스크를 다발로 흔들며 또다시 내게 접근했다. 형광등을 등진 채, 거대한 그림자를 업고 잰걸음 치는 새카만 수녀복의 사수는 얼굴빛까지 새카맸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지금 사수의 얼굴빛은 분명 산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가 사람이고 어디까지가 그림자인지 모를 시커먼 그것이 발 없는 저승사자처럼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나는 자동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마스크가 부지불식간에 날아가버리고, 닷새를 기른 수염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충격으로 사수는 뒷목을 잡고 쓰러지고…… 마침내 상상의 마침표를 찍는 그 뒷일…… 나는 도리도리 고개 저었다. 일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시선 분산이 우선이었다. 사수를 교란시킬 수단? 아기 혹은 아기의 밥. 어쨌든 아기. 나는 별수 없이 잘- 자는 자아를 깨우기로 했다. 자아는 입꼬리를 슬쩍슬쩍 올리며 배냇짓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한창 달콤한 때인 듯싶어 나는 한구석이 찌릿했다. 누구보다 잘 안다. 숙면을 습격당하는 그 기분.


오야오야, 작게 몸을 흔들며 나는 어깨 부근으로 자아를 올렸다. 몇 가닥 털을 끈질기게 잡아당기며 자아의 손이 단추와 단추 사이에서 미끄러졌다. 선잠에서 깨어난 아기는 직결로 울음을 터트렸다. 짜증도 짜증도…… 그런 짜증이 없었다. 본능에 충실할 뿐, 막 세상이라는 무대에 던져진 아기가 아닌 척 괜찮은 척 연기를 할 순 없을 테니까.


"사수! 분유! 아기 먼저! 밥, 밥 먼저요!"


마스크를 흔들며 다가오던 사수가 그길로 걸음을 돌려 분유를 탔다. 사수의 재빠른 유턴은 계산이라곤 때리지 않은 무조건 반사의 몸짓이었다. 평소에도 손목에 파스를 달고 사는 사수. 지난 새벽 자신을 거부하는 자아를 안고 그 손목으로 세 시간을 버텨낸 사수. 그 시큰시큰함의 여파가 그새 사라진 걸까, 혹은 되살아난 걸까. 자아의 짜증에 사색이 된 사수는 전투적인 스냅으로 젖병을 흔들었다. 나는 자지러지게 우는 자아를 안고 둥가둥가 상하좌우 끊임없이 몸을 흔들었다. 갈 곳을 잃은 자아의 손은 허공을 저으며 몸짓을 따라 흔들렸다.


자아는 허공에서 단추와 단추 사이를 찾는 듯했다. 이만하면 시선 분산이라는 목표는 이룬 셈. 두피까지 벌게진 채 우는 자아를 보니 나는 엄청나게 찔렸다. 얼른 안정을 되찾아줘야 했다. 급한 건 자아 역시 만만치 않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자아가 그 순간 선수를 쳤다. 나는 머리칼이 삐죽 섰다. 허공을 휘젓던 자아의 손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돼지털 풍성한 내 뒤통수를 더듬기 시작한 거다.


그래, 털. 털이라면 양으로나 굵기로나 길이로나 단추와 단추 사이의 그것보단 뒤통수에 머리털이 나을 수도 있지. 그렇게만 된다면야 특정 부위가 접힐까, 내내 서 있지 않아도 될 텐데…… 나는 혹했다. 아주 잠깐. 굵고 뻣뻣한 내 머리칼은 아예 자아의 취향이 아닌 모양이었다. 내 머리칼에 손을 파묻은 자아는 뭘 제대로 쓸어보지도 않고 일단 잡아당기기 바빴다. 자아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땀에 전 내 머리칼이 뻣뻣하게 휘감겼다. 자아가 그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곤, 사정없이 흔들었다. 머리칼이 우수수 뽑혀 나갔다.


"아- 아- 아- 아-"


"여기! 밥! 여기!"


젖병을 흔들며 칠십 살 사수는 마치 신이 난 일곱 살의 속도로 뛰어왔다. 진이 빠진 나는 어디가 접히든 말든 자아를 품으로 내리며 바닥에 앉았다. 뽑아낸 내 머리칼을 바닥에 흩뿌리며 자아는 단추와 단추 사이로 유유히 손을 집어넣었다. 어디가 접히든 말든 상관없는 건, 적어도 나만큼은 급했을 자아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자아는 내 뱃살과 뱃살 사이를 더듬으며, 그 안으로 숨어버린 털 군락을 찾아내는 데 오로지 집중했다. 휘유우우우우우…… 내 인생을 통틀어 최고로 긴 한숨이 나왔다. 그래, 이만하면 된 거였다. 우린 지금 제자리니까. 잠깐 방향을 잃은 것일 뿐 목적지를 잊은 건 아니니까.


얼마 만에 앉는 건지 부어오른 종아리에서 부력이 느껴졌다. 처음엔 가만히 서 있으라던 자아는 어느 순간부턴 흔들라더니 나중엔 걸으라고 했다. 안고 흔들면서 걸으라고. 쉬라고 할 때까지 계속하라고. 쉬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차라리 학교가 그리울 만큼 짧았다. 나는 내 한쪽 종아리를 주의 깊게 내려다보았다. 이전보다 풍성해진  다리털 사이로 푸른 핏줄이 구불구불 튀어나와 있었다. 이건 수염이 난 직후에 발병한 하지정맥류라는 건데, 처음보다 상태가 나빠진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벽에 등을 단단히 붙이고 젖병 물릴 자세를 잡았다. 자아가 입술을 마구 오물거렸다. 강제 기상 상태에선 썩 입맛이 없는 게 보통이라지만, 자아는 벌써 젖꼭지를 찾고 있었다. 이렇게나 고단했구나. 자아는 배고픈 줄도 모르고 쭉 자버린 모양이었다. 극한의 피로 상태에서만 발현되는, 아는 사람만 아는, 수면욕이 식욕을 억누른 기현상이었다. 자아가 낚아채듯 젖꼭지를 물었다. 꿀떡꿀떡 분유를 삼키는 부드러운  넘김을 보며 나는 자는 아기를 일부러 깨웠다는 찔림에서 조금은 해방되었다.


사람이 앉으면 뱃살은 응당 접히는 법. 밥은, 응당 허리띠 풀고 앉아서 먹어야지 서서 먹으면 바로 소화불량 오는 법. 그 진리를 벌써 알아챈 걸까. 신기하게도 자아는 본인이 식사할 때만큼은 내가 앉아도 울지 않았다. 선호 부위가 접혀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젖병을 다 비울 때까지 내 품에 가만히 안겨 있기만을 바랐다. 다만 완벽하게 가만히. 내내 서 있다 벽에 등 좀 붙이고 앉은 내가 본인 식사 중에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자아는 젖꼭지를 뱉어내고 세상 처량하게 울어댔다. 그래그래, 누구보다 잘 안다. 밥 먹는데 누가 건드리는 그 기분.


"어쩜 이리 잘 먹을꼬…… 네가 알는지 모르겠구나. 딱 요만할 때, 자비 너도 그랬었지……"


자아를 안은 내게 다가서지 못한 채 사수가 멀찍이서 말했다.


어떻게 모를 수 있나. 사수야말로 알는지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사수 본인에게서 심심하면 들어온 이야기였다. 신생아 시절의 내가 어떤 속도로 젖병을 비워냈는가, 하는 이야기. 나를 뺀 모든 식구가 자람 보육원의 전설로 인정한 이야기. 하지만 자아는 지금도 내 품에 안겨 식사 중이었으므로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질까, 나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사수의 말을 듣기만 했다. 완벽하게 가만히.


수없는 아기에게 수없는 젖병을 물려왔지만 이건 새로운 전설의 탄생이었다. 자아는 전설 속 그 시절의 나를 웃도 기념비적인 속도로 젖병을 비워나갔다. 자아의 식사 시간, 이 눈 깜짝할 새가 바로 내게 허락된 쉬는 시간이었다. 이쯤이면 자아의 무의식에도 '밥'이 있는 건 아닐까. 자아는 밥에 진심인 아기였다.


쪼오오옵. 마지막 한 모금을 힘차게 빨아들이며 자아는 식사를 마쳤다. 나는 그제야 몸을 조금 크게 움직여 자아를 내려다보았다. 경직된 내 어깻죽지에서 두두둑 소리가 났다. 젖꼭지를 물고 있던 자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느슨해졌다.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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