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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Oct 27. 2024

6화 (2)우리는 서로 땀 마를 새 없었다

병원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도착한 장례식장. 무지근하게 어깻죽지가 뭉쳐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사수를 따라 빈소로 들어섰다.


하얀 국화가 작은 재단을 장식하고 있었다. 사수가 영정 사진을 마주하고 섰다.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한자리에 모인 우리. 나는 또다시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러나 잠깐 그러곤 말았다. 내 품에 안긴 그들의 아기가 온전히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인생 한 달 차인 이 아기는 좀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칭얼거리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십 분 간격으로 용을 썼. 그때마다 데일 듯 뜨거운 아기의 숨결이 내 몸 여기저기에 닿았다. 나는 까딱하면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작은 날개뼈를, 온 힘을 다해 조심스레 쓸어내려 보았다. 아기는 그 손길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결국엔 울음을 터뜨렸다. 


고자아.


아기의 정밀검사가 이어지던 어젯밤, 사수로부터 아기 이름을 전해 들은 나는 우수수 소름이 돋았다. 그들은 기어이 사고를 치고 간 모양이었다.


도다리의 임신 소식을 듣던 날이었다. 고대로는 아기 이름을 '고자아'로 확정했다고 식구들에게 발표했다. 사수는 푹 고개를 떨궜고, 나는 부르르 들고일어났다. '고자'아 라니. 이 무슨 망측한 소린가. 나는 펄쩍 뛰며 내 안에 겹겹이 쌓인 여자 고자의 울분을 토해냈다.


"고대로! 절대, 절대 안 돼! 아들이어도 문제지만 딸이면 어쩌게? 내 별명 몰라? 고자라고! 고자!"


"자비, 나는 언제나 직진해 왔다, 고대로. 고자아, 자기 자신을 또렷하게 바라보라는 뜻이다. 절대 물릴 수 없다. 수염도 나지 않은 그때 지어놓은 이름이니까. 실생활에 무리 없이 적용 가능한 이름일까, 의문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내게 이런 날이 오리란 걸. 오늘이 오리란 걸 말이다. 결정적인 건 이 이름을 다리가 한 방에 오케이 했다는 거다."


아직은 푹 꺼진, 도다리의 배를 쓰다듬으며 고대로가 말했다.


"뭐야? 진짜 오케이 했어? 도다리? 응? 도다리?"


나는 도다리를 몰아붙였다.


"고자비 동생 고자아. 어때?"


어때, 라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 마당에 돌림자라고? 나는 허무했다. 생선과와 이름을 나란히 해온 한 인간으로서 여자 고자의 고충을 백번 공감한다던 도다리는 이제 와 딴소리였다.


고대로와 도다리. 어쨌든 그 기능을 하긴 하는 그들의 이름 역시 그들의 혈육 작품이라 들었다. 세상의 수많은 말을 거르고 걸러 한 자 한 자 빚어낸다는 이름. 손수 지은 그 이름과 함께 그들을 보육원에 맡겨야 했던, 그들의 친부모 말이다. 설마 작명 감각도 유전이 되는 걸까? 나 고자비는 아찔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 고자아를, 미래의 '고자'를 나는 지금 안쓰럽게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내 품에 안겨 세상모르고 잠이 든 아기를. 어떻게 보면 엄마, 어떻게 보면 아빠가 떠오르는, 어떻게 보면 반반, 어떻게 보면 누구도 떠오르지 않는 새하얀 얼굴을.


자아는 울다가도 사수에게만 안기면 그치는 여느 아기와는 달랐다. 그래서 안 그래도 눈물바다였던 우리 셋의 첫 만남은 습하다 못해 꿉꿉하기 그지없었다.


밤샘 검사를 마친 자아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울다 지쳐 이제 막  잠이 들었노라, 의료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울다 지쳐 잠든 아기를 사수는 오야오야, 다짜고짜 안아 들었다. 딱 봐도 무심코 발현된 습관이었다. 자다 깨버린 아기는 바로 몸을 떨며 울기 시작했다. 작은 입술이 댐 수문 개방되듯 왈칵 열렸다. 검사 결과는 안 봐도 정상일 듯했다. 자아는 그 정도로 건강하게 울었다. 놀란 사수는 황급히 '재우기' 기술에 들어갔다. 어째선지 기술이 심화될수록 아기의 울음소리 또한 심화되었다. 아기는 온몸으로 도리도리를 하며 사수를 거부했다. 사수의 베일이 틀어졌다. 가 바로잡으면 틀어지고 의료진이 바로잡으면 틀어졌다. 저절로 바로잡히기도 했다. 사수는 그렇게 장장 세 시간을 고군분투했지만, 뭘 하든 족족 실패였다. 40년 내공에 빛나는 어떤 육아 기술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던져진 아기를 쉽사리 만족시키진 못했다. 다른 방식 중에서도 조금 더 다른 방식이었다. 사수의 이마에 삐뚜름하게 걸쳐진 회색빛 베일에 굵직한 띠를 그리며 땀이 번졌다. 그 땀이 흐르자, 사수는 결국 내게 자아를 넘겼다.


나 역시 육아라면 자신 있었다. 똥 기저귀 갈아가며 키워낸 보육원 동생이 몇 명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사수의 아성을 뛰어넘는 실력자라곤 감히 생각해오지 않았다. 조금 , 사수의 품을 벗어난 자아가 교과서 팔일오 광복의 미소로 내 품에 안겨오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자아의 작은 손이, 내 교복 셔츠의 단추와 단추 사이를 파고들기 전까지는.


이런 아기는 나 역시 처음이었다. 자아는 사수보다도 나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앉으면 딱 뱃살이 접히는 부위, 내 배꼽 근처를 특히 좋아했다. 어쩌다 거기가 조금이라도 접히면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쪽 단추와 단추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요술램프라도 문지르는  그 부위를 마냥 쓸었다. 내가 왼쪽 오른쪽 번갈아 안아봐도, 자아는 왼손 오른손 번갈아 가며 제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쓸었다. 그래서 나는 자아를 넘겨받은 그때부터 그 부위가 접힐세라 계속 서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자아는 잠이 들었다, 싶어 바닥에 눕힐라치면 여느 때보다 눈을 홉뜨고 울어댔다. 우리는 서로 땀 마를 새 없었다.


웅크린 엄마 품에서 발견된 고자아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반복된 정밀검사에서도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아 의사는 꾸준한 추적 관찰만을 당부했다. 사고 당시 엄마가 몸을 부수며 카시트를 통째로 껴안았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어린 생명 앞에서 밤샘 근무를 자처한 의료진들은 젖은 눈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기적입니다. 지금껏 울다 이제 막 잠들었……"


"주여……"


바로 이 순간이 그때였다. 우리 셋의 첫 만남. 울다 지쳐 잠든 자아를 사수가 무심코 안아 든 그때. 사수의 눈엔 떨어질 듯 말 듯 눈물이 고였고, 아기 역시 그렁해진 눈으로 살아온 세월에 비해 너무도 곡진한 얼굴로 울기 시작했다. 칠십 인생 할머니 주름이나 한 달 인생 신생아 주름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오야오야, 졸리는구나."


"기저귀 좀 보자."


"그래! 밥, 밥 먹자!"


사수의 육아 기술은 하나하나 예리하게 빗나갔다. 사수가 어떤 기술을 쓰든 자아는 사수 품을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듯 몸을 뒤틀며 사수의 혼을 쏙 빼놓았다. 사수의 베일이 틀어졌다. 대롱대롱하던 사수의 눈물방울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우르르 까꿍! 그동안 갈고닦아온 육아 기술을 하나하나 적용해보며 나는 아까부터 이러고 있었다. 이번 문항이야말로 답을 찍을 기회조차 없는 초고난도의 주관식이었다. 다행히 머지않아 내 단추와 단추 사이, 수북한 그곳을 헤치고 그 답을 찾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셋은 그렇게 빈소로 향한 참이었다. 오래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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