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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살렸지만 내가 스스로 망쳐버린 인터뷰

실패라고 쓰고 배움이라 읽는다

by 투명물고기

“내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일을 떠나서도 개인적으로 친구가 되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일까 하는 것이에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런 질문을 글로벌 기업 인도인 부사장 입에서 거의 유일한 질문으로 듣게 되다니. 신선하면서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에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동시에 전혀 예상하고 가지 못한 질문이었다. 여태 살면서 수많은 인터뷰를 겪었지만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종류의 질문이었다. 당신이라면 이것에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순간 당황했지만, 프로답게 웃으면서 좋은 질문이라며 시간을 끌면서 그 짧은 몇 초 동안 고민을 하고는 바로 이어서 대답을 해나갔다. 그래, 구차하게 주절주절 대지 말고 임팩트 있을만한 하나의 스토리를 남기자. 문득 정말 바로 그전 주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퇴사한 지도 벌써 10년 되는 첫 회사에서 알게 되었던 후배가 오래간만에 꼭 보고 싶다며 찾아왔었다. 그것도 내가 계속 바쁘다고 하니 주말 시간을 내어 우리 동네까지 와서.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와인 한 병과 우리 아들을 위한 책 한 권을 들고 와서 선물을 하고는, 심지어 점심까지 미리 선결제를 해 두었었다. 그런데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녀는 감동적인 얘기까지 하나 투척해 주고 갔는데, ”저는 여태 회사 생활하면서, 늘 XXX 선배님(나) 같은 선배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해요.“ 나는 후배가 무슨 고민이 있어 찾아온 게 아닐까 걱정하며 나갔는데 완전히 의외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정도로까지 그 후배에게 잘해준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정말 과분한 이야기였다. 내가 딱히 기억이 남을만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그 후배가 신입으로 직장생활에 대해 고민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에 내가 당시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사서 간단한 편지글과 함께 선물했던 적은 있었다. 뭐 그게 큰 일은 아니지 않은가. 당시 내가 진심으로 걱정해 우발적 퇴사를 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썼던 후배가 둘 있었는데, 하나는 결국 퇴사를 하고는 두고두고 그때 선배 말 안 들은 게 후회된다고 하는 친구고, 다른 하나는 이후 10년 넘게 직장생활 중이며, 몇 년 만에 이렇게 선물까지 잔뜩 사 오고 밥까지 사버리면 어쩌냐는 나의 말에, 웃으며 ”이 정도는 벌어요~ㅎㅎ“하는 이 친구다. 결국 그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대한 답은 나의 이 후배가 살렸다고 생각한다. 십몇 년 전 내가 베풀었던 작은 호의가 시간과 함께 복리로 어마어마하게 돌아온 느낌이었다.


직장 생활하면서 나는 늘 ‘회사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는 없다고 믿고 ‘어디서 어떻게 만난 사람이건 좋은 사람이라면 맥락과 나이를 불문하고도 인생에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마인드로 살아왔다. 직급과 연차가 올라가고, 특히 경력직이 되면서부터는 이 마인드는 자산보다는 상처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졌음을 고백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내 마음 같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필명인 투명물고기급으로 늘 솔직한 나와는 달리, 이해가지 않을 정도로 앞뒤가 다른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는 그래도 여전히 먼저 상대를 믿어버리고 마음을 내어주는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는 것이다. 나는 상처를 수십 번 받게 되더라도 때로 한 번씩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삶이, 상처도 감동도 없는 삶보다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의 챕터별로 한두 명씩이라도 건지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잘 넘기고 종합적으로 인터뷰가 결국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면 더 좋았을 텐데, 역시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최종 분위기가 괜찮았기에 내심 기대도 했지만, 나의 그 ‘사람을 너무 빨리 믿고, 항상 선의를 우선 가정하는’ 성향 때문에, 굳이 스스로 나서서 망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이 중간에 있었다. 결국 나는 나의 이 ‘유난히 적극적이고 호의적인 성격’ 때문에 살면서 그간 때로 말도 안 되는 성취들을 이루기도 했지만, 이렇게 어이없게 문턱에서 망치기도 하였다. 이렇게 몇 달간 공을 들였던 글로벌 기업의 한국 총괄 자리가 코앞에서 날아가게 되었다.


분명히 너무도 아쉬운 결과이지만, 인생을 돌이켜보면 모든 것에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이제는 더 이상 일반적인 취업이 아닌 정말 완전히 다른 길을 갈 때’라는 신호 일지도 모르겠고, 항상 그랬듯 좀 뒤에 ‘궁극적으로 더 잘 맞는 것을 맞이하게 될 운명‘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뽑아내기 위해, 서로의 선의가 통했던 리크루터와 마지막 통화를 내일 다시 한번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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