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구직이냐 창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늘로 올해 두 번째다. 문턱까지 갔다 또 헛물만 켜고 만 꼴이 된 것이.
작년부터 정말 다양한 곳과 인터뷰를 했다. 나는 늘 성장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므로 같은 산업, 같은 수준의 업무를 할 사람을 뽑는 (소위 상대적으로 이직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모두 제외하고 검토를 했었다. '마케팅 총괄'이라는 자리는 기업마다 딱 한자리이고, 그마저도 누군가 퇴사를 해야만 가능하기에 가뭄에 콩 나듯 거의 안 날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막상 이름을 들으면 다 알만한 곳에서 계속 기회가 오긴 했었다.
여러 과정들을 거치면서 별의별 일들 역시 겪었다. 내가 최종 단일 후보였고, 한 시간 반에 걸친 대표이사 최종 면접까지 잘 보았다는 피드백을 받고도 막상 자리 자체가 갑자기 없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이 연식(?)으로도 ‘그’ 조직을 이끌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피드백도 몇 번 있었고, 마케팅인데 이력에 컨설팅사 경험이 없는 게 가장 부족한 점이라는 다소 이해가 안 가는 피드백도 있었다. 그 와중에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에서도 공고를 내었다가 아예 그 자리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도 계속 있었다.
가장 최근 두 번의 경험은 역시 또 엄청나게 다른 인더스트리들이기도 했지만, 그간 나의 베이스였던 마케팅을 넘어선 한국 마켓 총괄, 그리고 한국 사업 전체를 책임지는 GM 포지션이었다. 나 스스로도 이게 가능할까 싶은 스트레치였는데, 올인하여 준비해서 수차례 스텝을 지나 각각 글로벌 부사장 인터뷰까지 가면서 한낱 가능성의 희망을 보게 해주기도 하였다.
거의 문턱까지 갔다가 결국은 얻어내지 못하여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쉬움으로만 끝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니, 끝나고도 피드백들을 받아냈다. 첫 번째의 피드백은 “임원 포스(Executive Presence)가 약하다”는 것이었다. 원래 성격이 일반인 이상으로 과하게 열정적이고 캐주얼한 스타일인 나는, 그런 자리를 원한다면 ‘위엄 있고 차분한 캐릭터’로 점점 변신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 뒤로 노력 중이다..)
두 번째로 오늘 받은 피드백은 사업부장 이상 급으로 직접적으로 Full P&L을 충분히 Manage 해본 경험이 부족하고, 내가 이끌었던 조직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내게 기회가 없었던 경험을 거짓말할 수도, 당장 만들어낼 수도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경쟁자들은 이미 다른 곳의 지사장들이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기에 부사장과의 인터뷰까지 올라간 것만으로도 놀라운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런 탑 글로벌 기업의 지사장을 노리려면 우선 상대적으로 규모나 브랜드가 조금 떨어지는 곳이라도 ‘직접 필요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예 ‘내 것’을 지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맞을지, 계속 구직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맞을지를 집중적으로 고민을 좀 해볼라치면, 그냥 놓치기에는 아까운 기회들이 계속 어디선가 들어오긴 하면서 시간은 이렇게 잘도 흘러만 간다. 이 고민은 둘 중 하나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 같고, 이런 온갖 인더스트리를 다 파는 여정조차 미래의 언젠가는 어딘가에는 분명 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턱까지 두 번이나 갔다 오고 나니 그냥 접기엔 아까운 길 같고, 그렇다고 계속 목숨을 걸기엔 이런 자리들이 흔하지도 않고, 이렇게 막상 결과적으로 얻지 못할 때에는 한동안 모든 삶을 뒤로하고 올인하고도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고민이다. 오늘도 한 헤드헌터가 야심 차게 올렸던 마케팅 상무 포지션이 기업 내부 사정으로 무기한 홀드 되었다고 한다. 점점 불확실한 경제 상황과 AI의 급격한 발달로 많은 자리들이 사라지는 속도가 더 가속화될 것 같다. 이 격변의 시기에 어떤 길이 옳은 선택일까?
바꿀 수 없는 결과는 빠르게 마음을 접는 편인 나도 오늘은 기분이 별로인 것은 어쩔 수 없다. 남편이 치킨을 사 온다고 한다. 오늘 밤만은 씩씩이 모드를 버리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남편 곁에서 치맥으로 위로를 좀 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