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회고,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될 수도 있을
지난번 브랜드 지어가는 이야기에 관한 글을 쓴 이래 벌써 두 달여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이제 벌써 하반기도 한 달 반이나 지났다니! 개인적으로는 그 사이에 오래전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한 번 꽤 앓았었고, 엄마의 응급실 행으로 이래저래 쫓아다니는 일이 있었고, 아이는 이춘기나 삼춘기쯤 되었는지 갑자기 속을 썩이느라 아들 특강을 찾아다니거나 각종 육아 서적을 다시 다 꺼내 한동안 뒤지기도 하였다.
그 외에 나의 사업관련해서는 그 사이 1) 각종 제조사들과 온오프라인 미팅을 하였고 2) 여러 고려 끝에 결국 아이템이 바뀌었고 3) 사업자를 내었고 4) 수업을 하나 들으면서 백 명 넘는 다른 예비 대표들과 함께 단톡방이 하나 생겼고 5) 브랜드 상표권 출원을 신청하였으며 6) 디자인 작업이 진행 중이며 7) 공장으로부터 시제품 1차 안을 받은 뒤 2차 안을 기다리는 중이고 8) 중국 용기/패키지 업체로부터 조만간 샘플들이 도착할 예정이다. 요즘은 주로 아마존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최적의 상품명 키워드를 연구하는 데에 집중을 하고 있다. 중간중간 여러 가지 천연 아이템들을 직접 제작해 보면서 그 사이 만나게 된 친구/지인들에게는 각종 선물까지 하게 되었던 것은 덤이다.
이 두 달이 좀 안 되는 기간에 언급했던 여러 가지 실무적인 업무들을 수행하는 것 외에도, 그간 직장인으로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사업가 마인드에 대해 많은 배움과 사유가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의 글은 사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 교훈. 남의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사업을 한다는 것은 ‘멋’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것이다. 현재 연 수천억의 매출을 하고 있는 브랜드들도 여전히 대기업 마케터 입장에서 보면 소위 너무도 '짜치는' 광고를 많이 하고 있음에 놀랐다. 이미 수천억 대 부자도 멋진 허세가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여전히 다소 어설퍼보이고 짠내 나는 광고라도 성과만 잘 나온다면 전혀 마다하지 않더라.
두 번째 교훈. 제일 먼저 사업에 성공할 확신을 주는 사람은 너무 재지 않고 바로 팔 걷어붙이고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단톡방에 백 명 넘는 예비 대표들 중에 그런 사람들은 누가 봐도 눈에 띄었고, 제일 앞서 나가면서도 남들에게 도움까지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지난주 모 스타트업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스스로를 '바바리언처럼 무식하게 달려드는 업무 스타일'이라고 칭했는데, 정말 초 단기간에 괴물 같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세 번째 교훈. 사업을 빠르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완벽하게 첫 술에 배부를 생각 하기보다는, 일단 냅다 시작해 보고 시장과 고객 데이터 앞에 겸손하고 유연하게 대응한다. 무조건 애초 나의 신념이나 가설이 맞을 거라며 그저 곤조를 부리기보다 결과적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본인의 가설과 전략을 빠르게 수정해 나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세기에 한 두 명 나올까 말까 한 스티브 잡스 급의 선구안과 확신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그 방향이 훨씬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네 번째 교훈.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일단 과감히 질러보고 안되면 그때 다시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안되더라도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혹시라도 클레임이 들어올까 미리 지레 걱정하고 벌벌 떠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해보고 "만일 신고라도 들어오면 그럼 그때 바꾸지 뭐."라는 배짱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간 세상의 모든 리스크를 검토하고 매 건을 승인받고 진행해 온 대기업 직장인의 마인드에서 빨리 벗어나야 할 것 같다.
다섯 번째 교훈. 세상에 성공의 방정식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다. 저마다의 실패 이유가 다 다르듯이, 저마다의 성공 방정식도 다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업종이라도 맨 처음 교훈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말 짜쳐보일 정도로 커머셜 성과만을 반복해서 돈을 엄청 많이 번 기업도 있었고, 반대로 교과서에 나오는 브랜딩의 정석처럼 광고비 하나 안 쓰고 고고하게 있어빌리티의 끝판왕만을 고집했는데도 의외로 빠르게 큰 기업도 찾을 수 있었다. 창업자 본인의 경험치와 네트워크 등의 자산 및 능력치에 따라서 접근법과 실현 방법은 너무도 다르다.
나도 여러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나에게 맞는 길을 연구 중이다. 브랜드를 짓는다는 것은, 아마 나를 닮은 무엇인가가 세상에 하나 나오게 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생물학적인 유전이 아니라는 차이만 있을 뿐, 무생물이지만 유기체 같은 하나의 실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세상에 나오게 될지 궁금하다. 아무리 AI 도구들로 업무적으로 몇 인분씩의 도움을 받고 있고, 마치 외부에 존재하는 팀들처럼 제조 공장, 디자인 전문가, 해외 용기 제조 업체 등과 다채로운 일을 하느라 정신없을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혼자 일하는 외로움과 느슨함이 문득문득 찾아온다. 이것은 아마도 나의 팀이 커지기 전까지는 감내해야만 하는 1인 사업가의 숙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