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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윤 Feb 18. 2020

수험생인 걸 절대로 들키지 마세요

층간소음 대처법

오늘도 알람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21세기 4D는 구현할 수 없는 진동이 뇌 깊은 곳에서부터 나를 흔들었다. 일어나. 눈 떠. 빨리 일어나. 눈 감지 마. 눈을 몇 번 깜빡이고 있으니 잦은 진동은 더욱더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몇 분만 더 자고 싶은 본능이 나를 누르지만 어쩔 수 없이 깨어나야 했다. 내 기상 시간은 나와 상관없이 정해졌다. 아침 7시. 위층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천장을 타고 내려온 진동이 방을 가득 채우고 곧이어 우리 집 전체를 울렸다.


몇 년 전 외출 후 집에 돌아오니 식탁에 봉지가 놓여있었다. 부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명한 비닐봉지에 뭔가가 들어있었다. 뭐가 들었나, 배가 고파서 비닐봉지를 자세히 봤다. 약간 습기가 차서 뿌옇고 물기 묻은 봉지 속에는 빵이 있었다. 빵은 이런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구겨져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배가 고파서 아무 휴게소에 들어가 급하게 주차를 하고, 이름없는 빵집에 들어가 빵을 대충 담은 뒤, 차에 앉아 앙금이 들어있고 크림이 들어있고 속이 꽉찬 빵만 골라 먹으며 허기를 채우고, 남은 빵이 든 봉지는 대충 묶은 다음 자동차에 대충 던져뒀다가 삼일 정도 지나 발견했는데, 빵은 여기저기 눌리고 찌그러져 원래 어떤 형태를 가졌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내가 빵을 샀으니까 빵이겠지, 생각하다가 먹기는 찝찝하고 버리에는 아까워서 일단 주차 후 집으로 가지고 온, 이런 느낌을 빵은 내뿜고 있었다.


"엄마, 이게 뭐에요?"

"위층이 이사왔다고 주고 가더라."




위층은 체계적인 규칙 속에서 소음을 만들어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위층의 바닥이자 우리 집의 천장을 통해 울리는 발소리로 나는 알 수 있었다. 전혀 모르고 싶고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과 달리 나는 강제로 알 수밖에 없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발뒤꿈치에 힘을 싣고 이동하고 있구나. 여기서 모여 뛰어놀고 있구나. 화장실에서 나와 우다다다 달리고 있구나. 부엌과 거실과 방을 오가며 뛰고 있구나. 실내용 자동차를 타고 있구나. 공을 굴리고 있구나. 누가 놀러 왔구나. 같이 뛰는구나. 지치지도 않고 쿵쾅대며 달리는구나. 가끔 조용한 시간에는 아이가 기쁨에 겨워 지르는 소리가 벽과 화장실을 통해 전달됐다.


발소리가 어찌나 소란스러운지 외출을 하는 날도 알 수 있었다. 그럴 때면 집에 없는 동안 소음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게 억울한지 나갈 준비를 하는 시간 내내 우리 집 천장은 동네 놀이터가 됐다. 평상시가 아메리카노라면 빨간 날이 있거나 명절이 겹치는 날에는 에스프레소. 외출을 하면 잠시 조용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비워둔 오늘 치 소음을 한껏 열심히 만들고는 다시 조용해졌다.


어느 날 저녁 8시쯤 아파트 방송이 나왔다.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서 비슷한 고민을 겪고 있는 사람이 부탁했는지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뛰는 걸 자제해 달라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이 와중에도 위층은 뛰고 있었고 한 시간 뒤에나 조용해졌다.




나도 어린 시절이 있었으니까, 아이니까, 나름 배려해주는 거겠지, 10시 이후에는 안 뛰니까, 다른 집은 새벽에도 뛴다는데 새벽만큼은 조용하니까, 다른 소음은 별로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안 뛰겠지, 오늘은 덜 뛰겠지, 오늘은 조용하겠지, 오늘은 쉴 수 있겠지, 내일은 괜찮겠지... 이런 합리화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신기하게 창문을 열면 소리가 중화되는지 미친 듯이 찍어대는 발소리가 덜 들렸다. 미세먼지와 궂은 날씨는 뒤로한 채 일단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추울 때도 더울 때도 눈이 올 때도 비가 올 때도 창문을 열었다. 


이어폰을 끼기도 하고, 노래도 크게 들어봤지만 진동은 모든 걸 뚫고 전달됐다. 식사 시간이면 아이들은 왔다갔다하며 밥을 먹는지 천장에 달린 형광들이 흔들릴 정도로 뛰었다. 같은 시차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식사 시간이 겹칠 때면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밥을 꾸역꾸역 급하게 밀어 넣었다. 먹으면서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지.




우연히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를 뵀다. 그동안은 마주쳐도 뉴스에서 본 보복 소음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워서 입을 꾹 다물고 인사만 했었는데 무슨 용기였는지 그날은 말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뛰는 소리 때문에 오랜 시간 힘들었다고 말씀드리니 매트를 깔고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그 소리가 전부 매트를 통해 전달됐다니 다른 의미로 놀라웠다. 다른 집을 가봐도 아래층 생각해서 매트를 깐 집은 없을 거라고 하셨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애들 뛰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는 민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서둘러 덧붙이셨다. 당연히 그때는 아이가 어려서 걷지도 못하니 그런 민원은 안 받으셨겠지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지 않았다.


당시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어리니,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생각하니 이사올 때부터 미친듯이 뛰었는데.. 아마 민원을 받지 않았다는 말은 그냥 한 것 같다.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


아래층이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었는지, 어제만 시끄러워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주머니께서 요즘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셨다.


"수험생인데요."

내 대답 저편에는 기대심이 은근하게 깔려있었다. 조금은 배려해주지 않을까, 여태 우리 가족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면 우리 집 애들 뛰는 소리 때문이 아니라 예민해서 깨는 것 같은데. 어떻게 뛰는 소리에 일어나요. 근처에 도서관 좋던데 한 번 가봐요. 제가 공부 좀 해봐서 아는데 그렇게 공부하고 싶으면 도서관 가요. 저도 몇 번 갔는데 공부하기 괜찮더라고요."


모든 인내의 시간이 수험생과 예민. 이 두 가지로 귀결됐다.




아주머니의 말을 끝으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다며 대화를 끝냈다. 뭐가 감사했고 죄송했을까. 나는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보복 소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좋게 좋게 마무리해야 뒤탈이 없겠지 하는 마음도 들었고.


그날은 조용했고 다음날은 새벽 1시까지 뛰는 소리가 들렸다.


아래층이 감히 그런 말을 해? 이런 생각이 벽을 통해 전달되는 듯했다. 새벽은 고요했고 창문을 열어도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어도 위층의 소리를 덮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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