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직장을 나오고 6개월이 넘어가니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과연 내가 재취업할 수 있을까? 섣불리 퇴사를 한 것은 아닌가? 이직할 곳을 알아보고 확정되면 퇴사를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난무하는 가운데, 학과 선배의 회사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는 다른 선배를 통해 연락을 받았는데 같이 일하게 될 선배는 친분이 두터운 선배는 아니었다. 또 회사의 업무도 내가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고 통근 시간도 거의 왕복 4시간으로 거리도 멀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 반, 일할수 있다는 기대 반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규모는 나까지 포함해서 3명이었다. 3명이면 진짜 가깝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대화하면서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사무실은 10명 정도의 인원이 근무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는데, 그 공간에 달랑 세 명이 있으니 숨 쉬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또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까지 다 들리니 그마저도 없으면 정적이 흘렀다. 또 학과 선배고 아는 얼굴이라서 모르는 것 물어보고 대화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일하는데 방해되지 않을까 더 조심스러워 질문을 잘하지 못했다. 만약에 서로 잘 알고 친한 사람 세 명이었으면 오히려 좋았을 것이다. 서로 잘 알기 때문에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세 명다 그렇게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도 그 어색한 분위기를 더하는데 한 몫하였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실장(대표)은 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실장은 내 자리를 지나갈 때 내게 질문을 하였는데, 대부분 전기, 전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전기, 전자를 공부하지 않았어서 -전공 또한 아니어서- 그에 대한 내용은 잘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내가 대답을 못하자 실장은 '도대체가 컨셉이 없다. 학교 다닐 때 뭘 배웠냐.'는 등을 포함하여 자존심 상할 말들을 거리낌 없이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가스라이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행동은 짧은 재직기간 동안 계속되었다. 하루 걸러 한 번 씩 내 자리를 지날 때마다 회사 다닐 거면 똑바로 잘하고 아니면 빨리 결정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말을 계속해서 하였다. 내가 똑바로 못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쳐도, 빨리 결정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는 말이 무엇인가? 퇴사를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실장의 본심 아닌 본심은 이후 곧 드러났다.
어느 날 내가 관심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며 PT발표를 요구하였다. 관심 있는 것이나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대하여 PPT를 만들어 발표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이는 곳 내가 관심 있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UX 연구 경험에 대한 내용을 발표하였는데 발표를 듣고 난 실장의 반응이 영 아니었다.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며 분명 관심 있는 거나 지금까지 했던 일에 대하여 발표하라고 해놓고서는 내가 해왔던 일들이 별거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하였고, 그것은 실무가 아니지 않으냐, 심지어 틀렸다는 이야기까지 서슴지 않고 하였다. 월급 받으면서 일했는데 실무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면서 내가 해왔던 일이 우리(실장)가 하는 일이랑 다르다는 둥 우리와 관련 있는 활동이 없다는 둥 은연중 본심이 드러나는 말을 하였다. 심지어 발표 말미에는 '코로나가 이렇게까지 지속될 줄 알았다면 당신 안 뽑았을 거야'라는 말을 대놓고 하였다. 이 정도 되면 서로 끝내자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빨리 결정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하셔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만두기로. 나는 인수인계할 것도 없어서 그 길로 회사를 바로 나왔다.
그렇게 나오고 나는 급여 정산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을 보내고 십 분도 되지 않아 실장이 내게 전화를 하였다. 격양된 목소리가 역력했다.
일도 안 해놓고 무슨 급여를 바라냐고,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줘야지 일한 거지 당신이 무슨 일을 했냐며, 오히려 업무에 대하여 공부한 거 아니냐며 생각지도 못한 말들을 쏟아내었다.
나도 이때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내가 교통비 들여가며 하루 4시간 가까이 왔다간 것은 내가 뭐 때문에 간 거냐고, 내가 회사 업무 익히기 위하여 관련 내용을 공부했지 내가 회사일 아니면 그거 뭐하러 익혔겠냐고 맞받아쳤다.
이렇게 말했지만 실장은 꿈쩍도 안 하였다. 그러면서 급여는 못주겠다고 하며 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