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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반대편에서

아픔이 지난 자리의 다정함

by 맨모삼천지교


“왜 하필 아이스크림 집?”

의사인 친구가 언젠가 말했다. 주변의 많은 동기들이 늘 농담반 진담반 언젠가 병원을 그만두고 ‘배스킨라빈스’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고 말이다.


“잘 보면, 아이스크림 집에는 다들 행복하게 들어와서 행복하게 나가잖아. 먹기 전에도 맛있는 순간을 기대하며 행복하게 들어오고,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나갈 때도 여전히 행복하잖아.”


행복으로 들어와 행복으로 나가는 일.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병원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아픈 사람들은 불행한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오고, 의사는 그 불행을 마주하며 긴 하루를 보낸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치료해도, 환자가 웃으며 나가는 일은 드물다. 하루 종일 부정적인 에너지를 마주해야 하는 일. 공부를 아주 잘해야 할 수 있고, 많은 수련을 거쳐야 하는 일이기도 한 일. 그래서 돈을 잘 벌기도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의대 광풍’에 휩싸인 한국에서 잘 이야기되지 않는 의사라는 직업의 다른 면을 생각해 보았던 순간이었다.


며칠 전 나는 그 행복의 반대편에 위치한 공간으로 향하고 있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예정되어 있던 검사 때문이었다.

연휴기간 중의 여행동안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부디 검사 결과가 좋기를 바라며 마음을 다잡고 아침 식사까지 든든히 하고 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의지가 닿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앞 차가 후진으로 내 차를 들이받은 것. 번호판은 찌그러지고, 범퍼는 흠집이 잔뜩 나버렸다. 보험사를 기다리다 보니 예약된 검사 시간은 임박해 왔고, 차 앞 쪽의 센서등도 고장이 나서 운전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더해져 급히 택시를 잡아 탔지만, 연휴 뒤 첫날 도로는 비 오는 날씨까지 더해져 도무지 움직일 줄을 몰랐다. 몇 달 만의 검사를 놓칠까 전정 긍긍하며 전화로 ‘늦을 것 같다, 죄송하다.’라 양해를 구하며 마음을 졸이고 나니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한껏 지쳐있었다.


그렇게 숨이 차서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

용기 내 감행한 여행에서 내내 잊으려 했던 병이 다시 내 곁에 가까이 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통증으로 앉아 있기도 힘들어 대기실 의자에 누워 팔로 눈을 가린 채 빛과 소음을 피하려는 사람,

온몸이 돌처럼 굳어 휠체어에 기대 있는 여성 환자,

그런 그녀의 자세를 바꾸어주려고 애쓰고 있던 중년의 보호자.

정갈하게 머리를 빗고 헤어핀을 단정히 꽂은 환자,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려 옷매무새조차 돌볼 수 없는 것 같아 보이는 환자.


누구도 완전히 괜찮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병원은 그런 곳이었다.


루푸스라는 병은 활성 기와 비활성기가 있다. 불꽃처럼 솟구치는 시기가 있고, 불꽃이 다 타고 꺼지듯 조용해지는 시기가 있다. 치료의 목표는 가능한 한 이 불꽃을 다시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침샘이 마르고 근육통이 심해지는 시기가 반복되는 쇼그렌 증후군까지 함께인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 주기와 정도는 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병은 늘 “지금”의 상태로 판단하기 어렵다. 어느 시점에 병원을 찾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진단이 내려질 수도 있기에, 한 의사의 일관성 있는 정기적인 관찰이 필요한 류마티스 내과에서는 ‘한번 지정 후 의사 변경이 불가능하다’라는 내용을 최초 예약부터 환자에게 안내하고 있다. 동일한 의사가 일관적인 기준으로 환자를 정기적으로 관찰한 후에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8월 대학병원으로 전원이 가능했던 시점은 이미 한 달여의 투약으로 활성기가 좀 지나 몇 가지 증상들이 가라앉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잠시 사그라든 듯 보인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기에 전원과 동시에 다양한 검사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만 했다. 이 날은 그래서 해야 하는 침샘 관련 검사 두 가지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일전에 검사 예약 시 받은 안내장에는 [2시간 전 금식]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9시 반 검사니까, 7시 반 전에 아침을 먹으면 되겠네.’

그리하여 새벽같이 일어나 갓 지은 솥밥을 먹고 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접촉사고로 엉망인 아침을 보내고 간신히 앉은 병원 의자였는데, 거기서 내 이름 옆에 적힌 ‘biopsy’라는 문구를 보게되었다.

biopsy….생검. 조직검사.

대학병원으로 옮긴 뒤의 첫 치과 협진이라 그저 전체적인 치아 상태를 보는 정도라 생각했는데…조직검사라니.


차분한 얼굴로 자리에 앉으신 처음 뵙는 선생님께서 말을 건네셨다.

“오늘 무슨 검사받는지 알고 오셨어요?”

“네? 저, 전원 한 지 얼마 안 되어서요. 그냥 전체적으로 보시는 것 아닌가요?”

“아.. 오늘, 침샘 조직검사 하실 거예요. 입술 안쪽을 1-2cm가량 절개하고 침샘을 꺼낸 뒤에, 다시 봉합할 겁니다. 실밥은 다음 주에 풀러 오시고 그때 조직검사 결과도 같이 들으실 거예요.”

“절개요? 실밥이요? 아…아…네.”


친절한 말투였지만,예상치 못한 내용에 그만 나는 목이 탁 메어버렸다. 안내가 끝나자 동그란 의자를 빙그르르 돌려 반대쪽 컴퓨터를 보고 등지고 앉으신 선생님을 향해 여쭈었다.


“선생님. 저.. 아픈가요?”

“네. 음.. 조금요. 마취하면 안 안프실 거에 요.”

“마취 풀리고 나면 아플까요?”

“네. 음.. 조금요. 마취 먼저 할게요.”


간결하고 명확한 대답.

하지만 이상하게 그 말들이 오래 남았다.

네. 음…조금요.

얼얼해진 입술로 마취약을 헹구느라 물을 머금었는데, 이런. 물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술 옆으로 슬그머니 새어 나왔다.


잠시 후, 얼굴을 덮은 면포 위로 요오드 소독약 냄새가 진하게 번졌다. 잡고, 자르고, 꺼내고, 다시 넣고, 봉합. 빠르고 능숙한 손놀림이었지만 손놀림은 능숙했고, 이상하게 자꾸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파서가 아니라, 이 면포 아래에는 누구도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외로워서. 그 때,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자분, 다 끝났습니다. 괜찮으세요?”



피검사를 위해 이동한 채혈실에서는, 시어머님 나이 즈음 되어 보이시는 할머니 한 분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가고 계셨다.

“난 언제 해줄 거요. 지난번엔 너무 아팠는데, 이번엔 안 아플 거요?”

정확히 누구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질문에, 남자 간호사 한 분이 조용히 대답을 이어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다른 직원들은 식사를 갔는지 비어있는 자리가 보이는 채혈실이었 안에서, 이 간호사 분 홀로 채혈 대기자 전부를 바쁜 손길로 담당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뒤에서 계속 말을 거는 할머니에게 일일이 “네, 조금요”, “네, 괜찮아요” 라며 대답을 이어갔다.

내 순서가 되어 자리에 앉아 팔을 걷고 작고 날씬한 플라스틱 병을 여섯 개 정도 채우는 동안에도,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등갈비를 사서 먹으면 맛이 없잖소. 우리 영감이 또 사 먹는 건 죽어도 안 먹어요. 그래서 내가 시장 가서 직접 사다가 핏물을 내리고 만드느라 등골이 다 빠졌다니?.”

병과 상관없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할머니 곁에는, 분명 병원에서 처음 만나셨을 또 다른 나이가 지긋하니 할머님이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고 계셨다.


병원은 그런 곳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다들 좋지 않은 이유로 모이고, 각자의 피로를 조용히 감내해야 하는 곳. 그 와중에 작은 말에 위로받고, 또 작은 말에 상처받기도 하는 곳.
그래서 곳곳에는 의료진을 향한 ‘친절한 서비스를 부탁드립니다’라는 포스터와 환자들을 향한 ’지금 보시는 분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라는 포스터가 함께 붙어 있기도 한 곳.
그 문구들이 왜 필요한지, 조금은 더 알 것 같은 하루였다. 짧지만, 다정했던 의사 선생님의 말투 안에서 느껴진 온기와, 바쁜 와중에도 애써 답해주던 간호사님 덕분에 조직검사로 몇 바늘을 꿰맨 얼얼한 입술로 집에 돌아오는 길이 크게 외롭지 않았다.


행복으로 들어와 행복으로 나가는 곳이 있다면,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그 반대편의 문 앞일까. 하지만 그곳에서도 누군가는 여전히 다정한 대답을 이어가고 있다.

“네, 조금요.”


병원이라는 불행의 공간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약간의 다정함.

아마도 그게, 이 외로운 마음들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일지도 모르겠다.








P.S.

이번 글의 표지로 사용한 사진 속 그림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르 아브르 근처 정원에서(Garden at Sainte-Adresse, 1867)〉를 찍은 것입니다. 이번 여행 중에 담아 온 작품들 중 이 그림을 오늘의 글과 함께 보여드리고 싶어 올려보았습니다.


이 작품을 그리던 시기(1867년)의 모네는, 아직 젊고 화풍을 확립하지 못한 이름 없는 화가였습니다. 사랑하는 여인 카미유와 아들이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렵던 시기였죠. 아마도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마주하며 고단하기도 했을 듯합니다. 아내를 얻으며 아버지의 지원을 잃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 모네의 그림은 이후의 작품들에 비해 한눈에 보기에도 밝고 경쾌합니다. 그의 일생의 사랑이라 말하는 아내 카미유와 아들이 그의 곁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머물던 길지 않던 시기였으니까요.


행복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생에 그리 길지 않은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언제 어떻게 머물다 갈지 모르는 행복의 순간들을 소중히 하며, 곁에 있는 이들에게 다정함을 더한 말을 건네는 하루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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