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감염 이후, 가끔씩 왼쪽 팔과 어깨, 가슴 부분에 마비감이 느껴졌다. 때때로 심장이 빨리 뛰며 몸이 떨리기도 했다. 신경과와 흉부외과에 가서 검사도 해보았지만, 특별한 기능의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몇 년간 내면 아이 작업과 함께 몸을 기반으로 하는 소매틱 상담을 하고 있었기에 몸이 내는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이번에는 TRE(Trauma Releasing Exercise)라는 상담을 받아보았다. 이는 몇 가지 몸의 동작들을 통해 몸의 떨림을 유발하고, 떨림 속에서 내면의 긴장감, 불안, 두려움,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을 풀어가는 치유 기법이었다.
첫 시간, 몇 가지 동작을 따라한 뒤, 내가 보게 되었던 이미지는 왼쪽 상체 부분에 총알이나 화살 같은 것이 박혀서 마비되어 떨고 있는 동물이었다. 프리다 칼로의 '상처 입은 사슴'이라는 아래 그림과 유사한 이미지였다. 상담을 이끄셨던 선생님은 그 마비감과 떨림을 피하거나 억누르지 말고 따라가 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허용하며 지켜보니, 떨림은 점점 더 심해지고 강렬해졌다. 두려움에 멈추고 싶은 저항이 올라왔지만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The Wounded Deer - Wikipedia
"와, 움직임이 바뀌었어요!"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상담가 선생님의 말에 내 몸을 인식해보니, 가슴 부분에서부터 들썩이던 몸의 떨림은 잦아들고 나의 팔이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로 시작된 움직임은 온몸을 일으켜 세웠다. 상처에 사로잡혀 있었던 몸은 제한적이었던 움직임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날개가 젖어있던 곤충이 날개를 말리고 펼쳐 사방을 날아다니듯, 내 몸은 꽤 넓은 상담 공간을 자유롭게 마음껏 누비기 시작했다. 마치 춤을 추듯, 날아다니듯 움직이는 몸을 느끼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몸이 이토록 움직이고 싶어 했구나.', '몸이 이렇게 자유롭고 싶어 했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묶이고 막힌 것을 뚫고 나와 치유의 움직임을 찾아가는 몸의 지혜와 힘을 오롯이 느끼며 경이로움과 감사함이 가득 차올랐다.
과거의 상처를 놓아 보내는 과정은 한 번에 완전히 끝나는 과정은 아니다. 지속적이며 실질적인 변화가 동반되는 진정한 놓아 보내기는 그 특성상 순환적이고 혼란스럽다. 일단 기억의 수문을 열어서 과거의 모든 상처를 허용하면 사랑과 증오, 원망과 감사, 애착의 욕구와 이탈의 욕구 사이에서 극심하게 오락가락하는 시기를 거칠 수도 있다. 불쾌한 감정이 강렬하게 느껴지겠지만, 이런 감정이 진정한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마음을 굳건히 할 수 있다. 그런 감정이 몸을 통과하도록 허용하는 과정이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유로 이끈다.
- 이미 로, <예민함이라는 선물> 中
위의 글에서처럼 머리로는 알고 있고, 여러 번 작업해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상처나 트라우마와 억압된 감정들이 몸을 통해 완전히 해소되고 싶어 함을 느꼈다.
오늘 두 번째 상담 세션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저항이 올라왔다. 몸은 죽은 송장처럼 무감각하게 느껴졌고, 무기력과 우울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상담 선생님께서 그 상태도 존중해주시고, 충분히 기다려주셨다. 존중과 안전함과 따뜻함은 이런 깊은 내면과 무의식 작업을 지지해주는 필수적인 기반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느끼는 순간이었다.
서서히 굳었던 몸이 풀리고, 떨림이 시작되고, 한 편에서는 저항이 올라왔다.
"변화하려면 드러나야 해요."
라는 선생님 말씀에 몸의 본능과 직관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가슴과 목에서 기침이 계속 나왔다. 회음부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잿빛 연기 같은 것들이 올라오더니 구토가 났다. 마치 목으로 출산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수많은 것들이 빠져나왔다. 어딘가에 쌓여있던 분노, 죄책감, 수치심 등의 감정과 그에 관련된 기억들, 그 당시 충분히 표현하고 알아주지 못하고 덮어두었던 모든 것들이 몸 안에 저장되었다가 마치 막혀있던 하수구 문을 열었을 때처럼 콸콸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쓰레기처럼 버리고 간 감정과 상처들도 쏟아져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나서, 몸이 원하는 데로 막혀있던 목과 몸을 풀어주는 움직임을 이어갔다. 몸 안의 가볍게 텅 빈 공간이 느껴졌다. 마치 자연이 그렇듯, 몸이 자신에게 필요한 정화의 작업을 스스로 하는 게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다. 몸은 이미 답을, 길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유기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나의 목소리를, 내 몸의 신호를 무시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몸이 원하는 데로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래의 글처럼 내 몸이 긴장되거나 마비되거나 떨리거나 하는 모든 반응, 혹은 나의 모든 방어기제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자, 그렇게라도 나를 살리고자, 돕고자 생긴 것임을 알고 나니 나의 몸의 증상. 마음과 행동의 패턴들이 더 이해되었다.
완벽주의적이고, 불안감이 고조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갇혀 있는 '적응된 자기 모습'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방어기제는 아주 힘든 시기에 살아남도록 도왔던 당신의 훌륭한 일부분임을 기억하자. 그것을 반갑게 맞이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존중해주어도 좋다. 그런 생존 패턴을 사람처럼 생각하고 이렇게 말해보자.
"당신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제가 방법을 알아냈으니 당신은 가서 편히 쉬세요."
- 이미 로, <예민함이라는 선물>
그리고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키는 데 썼던 힘을 나만의 창조성과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는 데 점점 더 많이 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담을 마무리하며 모든 지류를 받아들이면서, 자유롭게 길을 내며 흘러가며 깊어지는 강물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인위적으로 그 흐름을 막을 때엔 여러 문제와 오염이 생기지만, 그대로 두면 강물은 스스로를 정화하고 살려내며 주변의 생명들도 함께 살린다.
나의 몸이, 나의 삶이 그런 강물과 같이 흐를 수 있기를 기도하며 텅 비어 빛나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