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가자는 곳을 따라 걷는 것은 귀찮고 힘든 일이었다. 그때는 다리가 늘 무거웠는데 중학생이 되어 혼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갈 수 있게 되자 걷는 건 가볍고 신나고 즐거운 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성인이 되어 멋을 위해 굽 높은 구두를 신게 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걷는 것이 즐겁지 않고 고행이었다. 이런 걷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건 한 친구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어 몇몇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 한 친구는 걷는 것을 참 좋아했다. 멀리서 볼 때 그녀의 걷기 목적은 대부분 다이어트일거라 짐작했기에 난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늦은 여름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 학교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가서 각자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자는 제안을 그녀가 했다. 왜 걸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품으며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했다. 마침 그 날은 구두를 신고 있지 않았기에 선뜻 나설 수 있었다. 그보다도 그 친구에 대한 호감 때문에 함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녀는 디즈니 영화 ‘뮬란’ 의 얼굴을 가진 아담한 언니였다. 조용한 성격일 거라는 첫인상과는 달리 영어수업 시간에 진행한 연극에서 특이한 소리까지 서슴없이 내며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녀에게 반하게 되었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훅 들어오는 스킨십은 그녀의 매력에 비하면 덤이었다.
우리는 교실에서 나와 사물함에서 옷을 갈아입고 건물을 나와 학교 정문을 지나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내가 늘 버스 타고 가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복잡한 건물과 찻길을 따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걸어오니 어느새 펼쳐지는 넓은 곳, 시청이었다. 시청을 지나 광화문에 도착하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어디든 걸어 올 수 있는 거였구나. 그리고 바람이 이렇게 좋구나. 걸으면서 하는 이야기는 참 맛있구나. 꼭 어딘가를 갈 때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이유는 없구나. 내 시간을 굽이굽이 펼쳐서 이렇게 길게 만들 수도 있구나. 나의 가는 길을 이렇게 값지게 만들 수 있구나. 걷는 다는 것은. 그녀는 이래서 그 동안 걸었던 거구나.
그 뒤부터 나는 어떤 길이든 걸어 다니기 시작했는데 차들이 지나가는 길을 옆에 두고 걷는 것이 좋았다. 네모난 상자에 실려서 이동하는 것 보다는 내 발로 내 눈으로 내 귀로 무언가 듣고 보면서 하늘을 천장 삼아 걷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거리마다 다른 가로수를 보는 기쁨도 있었고 늘 있는 가게도 반가웠고, 새로 생기는 가게들도 반가웠다. 걸어 다니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외국에서 걷는 건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늘 보던 눈높이의 짙은 머리 색 사람들이 아니라 매우 큰 사람, 아주 작은 사람들이 다양한 피부색과 머리 색을 가지고 복합적으로 돌아다니니 리드미컬한 느낌과 함께 하늘이 더 높고 크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학교에서 방학 기간 동안 이루어진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그때도 그녀와 동행했었다. 우리는 보스턴에서 20여일 묵는 일정이었고, 2명씩 자는 방이 배정되었다. 조식은 쿠폰으로 발행되었는데 근처 던킨 도너츠에서 사용할 수 있었다. 말이 근처지 20분은 걸어야 나오는 곳이었으니 역시 미국은 우리나라와는 거리감도 다르다. 이른 아침 친구들, 언니들과 던킨으로 걸어가던 그 시간의 햇살과 넓은 길은 아직도 생생하다. 반짝이는 작은 보석들이 가득 박힌 샌들을 신은 어느 날은 지나가던 여성분이 돌고래 소리를 지르며 뷰티풀 뷰티풀 난리가 났다. 도대체 그 신발은 어디에서 샀냐고 물으며 호들갑이었다. 한국이라고 말하니 무너지는 얼굴 표정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시내로 가는 길엔 철망을 사이에 두고 아침부터 농구를 하고 있는 하얀 몸의 반짝이는 금발 남자애들이 늘 보였는데 그녀와 나는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무언의 눈빛으로 큭큭 대며 좀 더 느리게 걸었던 생각이 난다.
걷는다는 것은 내 시간을 길게 늘려서 그 사이를 볼 수 있게 해준다. 그 때의 경험을 시작으로 해외만 가면 어디든 걸어 다녔다. 차비를 아끼려고 걷기도 했고, 버스를 타면 외국어를 잘 못 알아들어 못 내릴까 봐 일부러 걷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랑 어딜 가는 게 귀찮았는데 성인이 되어 해외여행을 부모님과 같이 다니게 되자 함께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즐거웠다. 소소한 상점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힘들면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이 가족여행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아이가 생겨도 걷기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유모차를 가지고 다닐 때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기 힘들어 더 많이 걸었던 것 같다. 내가 걷는 동안 아이는 유모차에서 잠도 잘 잤고, 애와 함께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육아의 시간을 나가서 걸으면서 채웠다. 그리고 내가 걷는 그 길에서 위로를 많이 받았었다. 집에서는 아이와 나 둘 뿐이었지만 나가서 걸으면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가게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하니 든든했다. 유모차에서 잠자던 아이는 어느덧 8살이 되어 걷기 좋아하는 우리 덕분에 어디든 잘 걸어 다닌다. 유모차를 타고 다녔던 그 길들을 이제는 같이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집 앞도 마스크를 쓰고 걸어야 되는 지금, 우리는 모두 함께 아주 긴 시간 사이를 걷고 있다. 내일은 새달이고 새날이다. 시간 사이를 걷다 보면 새로운 시간이 나타날 거라 믿으며 오늘도 나의 시간을 굽이굽이 펼쳐서 걸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