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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Valerie Sep 30. 2019

'육아'와 닮아있는 '창업'

'나'와 '회사'가 분리 될 수 있을까?


*본 글은 글쓰기 모임 Meeji의 파일럿 프로그램 <스타트업, 냉정과 열정 사이의 글쓰기> 참여를 통해 작성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요즘 스타트업계의 핫뉴스는 위워크 창업자 애덤 뉴먼 Adam Newman의 사퇴 뉴스가 아닐까 싶다. 몇 달 전, 위워크를 본인 소유의 건물에 입주시켰다는 뉴스를 시작으로 상장을 준비하며 위워크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이스라엘로 가는 전용기에서 친구들과 대마초를 피어 논란을 빚는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사퇴까지 이어지게 됐다. 위워크 초창기 시절 (2012년으로 기억한다) 인연이 닿았었다. 뉴욕에서 스타트업 창업가들을 인터뷰하고 글을 쓰던 시절, 단연 위워크는 실리콘앨리가 탄생시킨 대표적인 스타트업이었기에 인터뷰를 하게 됐다. 뉴먼을 컨택했지만 바쁜 관계상 그 당시 위워크내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던 현재는 위워크 코리아 대표 차민근 대표와 인터뷰를 했었다. (아쉽게도 잡지사와의 의견 마찰로 기사를 싣을 수 없었지만...) 


초창기 패기 넘치고 사업을 확장해가려는 열정적인 스타트업이 어쩌다 대표직 사퇴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다양한 창업가들을 만나는 일을 하다 보니 별별 케이스들을 많이 봐 왔던것 같다. 당시 뉴욕의 잘 나가는 스타트업 중 하나인 '지니어스'(랩지니어스란 이름으로 시작해 현재는 랩을 뺀 지니어스로 서비스 중이다. 지니어스는 함축적인 의미의 음악 가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각주를 달 수 있게 해 부연 설명을 돕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는 3명의 예일대 졸업생들이 공동창업한 회사이다. 안드레센 호로비츠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았을 만큼 승승장구하던 지니어스는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이었던 마보드 모하담 Mahbod Moghadam의 기이한 행동들로 곤혹을 치러야 했고, 얼마 있어 마보드는 본인이 창업한 회사를 퇴사하게 됐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투자자였던 벤 호로비츠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와 사적으로 만난날, 마보드가 주커버그에게 사진을 한 장 같이 찍자고 이야기했지만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주커버그가 정중히 거절했고 그는 몰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포스팅을 올리자마자 페이스북 마케팅팀에서 1초마다 전화가와 사진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그 일을 가지고 공식석상에서 페이스북에 "F*** **"를 외친 사건으로 지니어스를 떠나게 된 일화가 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3명의 창업자 중 내가 인터뷰했던 창업가가 마보드였고 인터뷰가 끝나고 기사를 내자마자 공교롭게도 퇴진을 해 곤란했던 일이 있다.








자신이 세상에 만들어내고 성장시킨 회사를 떠나야 하는 창업가들의 마음은 어떨까?


창업가들을 만나며 공통적으로 느꼈던 건 나와 회사를 동일시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낳은 아기에 비유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많은 창업가들이 회사를 my baby라 표현 하곤했다.) 한 가지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창업가에게


"그럼 당신은 도대체 언제 휴가를 떠납니까?"

라고 물었더니

"어떻게 내가 낳은 아이를 두고 휴가를 떠날 수 있죠?"

라고 반문을 했던 창업가가 있었다. 그땐 정말 '워커홀릭인가?'라고 나 스스로 반문할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참 재미난 경험들을 하고 있다. 이전 내가 해오던 일들은 제3자로써 창업가들을 관찰하고 질문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이해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이해가 안 가더라도 일단 받아 적고 글을 써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창업가가 되고 나니 몇 년 전 들었던 한마디 한마디들이 다시 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 이해의 깊이가 달라져 있음 또한 느낀다.


현재 정부지원금을 받아 운영하고 있지만 인건비로 책정 불가에 선지불 후지급 조항 때문에 내 돈을 먼저 쓰고 지출증빙이 인정되면 사업자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형태다. 그중에서는 부가세는 지원대상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익보다 지출이 많은데 부가세로 나간 돈만 해도 어림잡아 수백만 원에 달한다. 밥값이며 왔다 갔다 교통비며 사무실 관리비며 이래저래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솔솔 하다. 당연 내 사업이니 그 정도야 투자하고 희생하는 게 맞다 생각하지만 초반 내 돈 들여 이렇게 고생하며 만들어낸 '내 상품'이기 때문에 너무도 쉽게 '내 거다'란 생각이 자연스레 자라나고 있지 않나 싶다.


가끔 외부 미팅을 하다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란 적이 여러번 있다. 이야기 중 '우리는' 혹은 '저희는'이란 대명사를 자주 쓰게 되는데 처음에는 내가 지칭한 '우리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팀원들과 나를 통틀어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깊숙이 들여가 생각해보니 그 '우리는' 회사와 나를 지칭한 것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이전 세상에 없던 것을 내가 만들었단 사실, 그 힘든 시간들을 버티고 견디며 성장시켜 나갔다는 자부심, 어느 누구도 나보다 이 회사를 잘 알지 못할 거라는 자만심. 이건 마치 많은 창업가들이 이야기했듯 회사는 내가 낳은 아기와 같단 말과 일맥상통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낳았고 내가 먹이고 공부시켜 성장시켜 놓았고 그리고 부모인 나만큼 자식을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건강한 양육의 시작점은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시대에 부모가 아이를 망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이가 나의 소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어쩌면 회사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나의 소유이기에 내가 소유한 건물에 임대를 줘도 별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 내가 만든 회사니 성장할 만큼 성장했어도 지금도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이끌 수 있단 착각, 아무리 기이한 행동과 언행을 일 삼아도 날 버리지 않을 거란 뻔뻔함.


지금은 아이가 어리다 보니 모든 것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혼자 밥을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 가는 것도 도움이 필요하고, 세수도 칫솔질도 모두 내가 도움을 줘야 가능하다.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는 많은 것들을 혼자의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이 올거고 그땐 온전히 그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써 존중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지금 회사는 나를 많이 필요로 한다. 아니 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회사는 내가 없이도 잘 돌아갈 시기가 올 거고 그 시기엔 회사도 또다른 인격체로 존중하고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키워나가야 되는게 아닌가란 생각을 해본다.


아이가 빨리 크지 않았으면 좋겠단 모든 부모의 바램처럼 나도 지금 헤이키도가 당분간은 내 곁에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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