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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 중간 어디쯤 Apr 02. 2020

저 보라색 좋아하는 AB형이에요

난 보라색을 좋아하는 AB형이다.

이 정도 되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혹시 또.. 라.. 이???


좀 독특한 면이 있긴 하지만, 유쾌한 4차원이지, 또라이는  아닌 것 같은데, 나의 혈액형과 좋아하는 색깔은 여지없이 나를 사람들의 선입견 속에 가둔다.


"O형 아니에요?"

믿거나 말거나 이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듣는 나인데..



사랑하는 어린 왕자들은 좋아하는 색깔이 수시로 바뀌고 있다. 둘째는 한동안 노란색이었다가 주황색, 다시 빨간색으로 바뀌었고, 큰애는 분홍색을 엄청 좋아하다가 파란색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분홍색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둘 다 무지개색을 좋아하기에 이르렀다!!!!


똘똘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우문'에 가족 모두 좋아 라는 '현답'을 할 줄 알게 된 것처럼  모든 색이 다 이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할극 할 때 고양이 이름도 '무지'다. 처음에 지식이 없는 무지인 줄 알았다가 무지개의 무지라는 말을 듣고 안도했었다.


그런데 이쯤 되니

말이 안 되는 말을 한 번씩 한다.


"난 노란색 싫어, 무지개색이 좋아."


(전자)

노란색을 싫어해서

빨주(노 빼고)초파남보 만 좋다는 것인지

(후자)

혼자 있는 노란색은 싫고

빨주노초파남보 함께 있는 색깔들이 좋다는 것인지.


전자면 말이 안 되고 후자면 말이 되겠다 싶어,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있으면

"엄마는 무슨 색 좋아해요?"라고 아이가 물어 온다.


그러면

"엄마는 에메랄드 녹색 좋아해."



그랬다. 내가 어릴 때 에메랄드 녹색에 많이 끌렸다. 일반 크레파스에는 없고 색깔수가 많은 친구의 크레파스에만 있었던 그 색이 좋았다. 내 것으로 가질 수 있게 된 뒤 금색 은색과 함께 엄청 아껴 썼던 기억이 있다.


보라색은 사실 우리 엄마가 좋아하시던 색인데 이유는 모르지만 어른이 된 후 내게도 1위가 되었다. 그다음이 에메랄드 녹색.


그런데 아이가 나에게 무슨 색이 좋냐고 물어보면 보라색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선뜻 잘 나오지 않는다.

선입견이 아직도 나를 묶어 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눈을 휘둥그레 뜬 친구들에게

"너희 엄마 보라색 좋아하셔????? 진~~~ 짜?????" 이런 이야기 들을까 싶어 그런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AB형인 것만큼

그다지 알리고 싶지 않다. 보라색 좋아해요 라는건.




얼마 전, 둘째의 생일을 맞아, 불을 끄고 자지 않으려는 둘째를 위해 아이들 고모께서 예쁜 무드등을 선물 주셨다. 무드등이 집에 온 첫날 형광등을 끄고 무드등을 켠 어두침침하지만 아늑하고 따뜻한 그 분위기 속에서 둘째가 말했다.

"엄마랑 아빠가 보라색으로 보여요"

"혹시 무서워?"

"아니요~ 연하게 다 보이는데 하나도 안 무서워요"


컴컴해서 어둑어둑하게 사물이 보이는걸 4살이 그렇게 표현하는 걸 듣고 있자니, 갑자기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보라색이 따뜻하고 아늑한 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당당하게 무지개색에도 포함되어있지 않은가!!!


나의 선입견,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는  이상한 행동들은

이제 무지개 너머로 던져 버려야겠다.


오늘에서야,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당당히 말한다.


저 보라색 좋아하는 AB형 여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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