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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궁중 회화, 천 년의 빛을 다시 피우다

최정연 작가 기획초대전 리뷰

by 글사랑이 조동표

한국 전통 궁중 회화, 천 년의 빛을 다시 피우다 — 최정연 작가 기획초대전 리뷰


주말, 인사동 작은 골목 끝, 오래된 건물 사이에 조용히 빛을 품은 공간이 있다.

문을 열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건, 화려한 꽃들의 군락이 비단 위에서 영롱하게 흔들리며 내뿜는 빛, 그리고 그 빛 위로 포개진 이름이었다.


《한국 전통 궁중 회화, 명화를 만나다 - 최정연 기획초대전》

2025년 11월 5일부터 18일까지, GAGA Gallery.



조용한 1층 전시장은 마치 작은 궁정(宮廷)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작품 위에 내리는 조명조차도 곱게 산란되어, 공기 속에 고운 미세한 먼지를 빛으로 변화시키는 듯했다.


1층 전시장

- 찬란한 빛 위에 서 있는 이야기들


전시의 중심에는 단연 ‘탄생’의 서사가 있다. 사진 속 작품 캡션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갈래로 확장시키고 있었다.


〈찬란한 탄생〉 (2024, 비단에 진채)


찬란한 탄생 그리고〉 (2025)


〈The Birth in July〉, 〈The Birth in August〉


〈삼신할매의 붉은빛 선물〉, 〈보라 빛 선물〉, 〈푸른빛 선물〉


〈The Noble Maria〉

고귀한 마리아

〈The Portrait of a Noble Lady〉

고귀한 부인의 초상

그리고 전시의 절정 〈탄생의 불꽃 (Flame of Birth)〉

마리아의 속눈썹이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놀랐다.

모든 작품 제목에는 “누군가가 세상에 처음 아닌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라는 은유가 깃들어 있었다.


비단 위에 올린 석채(石彩)의 깊은 색감은 일반 캔버스의 질감과는 전혀 달랐다.

빛을 머금었다가 관람자의 발걸음에 따라 천천히 ‘반사’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 작품 앞에 기록된 한 편의 긴 고백


관람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작품만이 아니었다. 벽면에 인쇄된 글귀들은, 작가의 내면 기록처럼 읽혔다.


“딸은 말한다.

‘엄마 미안’

‘나만 아니었다면 아름답게 꽃 피워 살았을 인생이었잖아..’”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들은 세대를 지나며 다시 이어지는 ‘탄생의 반복’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내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을 바라보며

내 안에 당신이 떠오른다.”


딸의 삶은 엄마의 두 번째 봄이라는 표현이 인상적.

그 글은 단지 모녀의 대화가 아니었다.

이 전시의 모든 작품이 견고하게 품고 있는 “여성의 삶과 시간”에 대한 시각적 사유였다.


- 궁중회화의 기법이 오늘에 살아 숨 쉬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가 고집스레 이어온 전통 궁중회화 기법, 진채(眞彩)였다. 비단에 아교를 먹이고, 석채로 색을 올리고, 겹겹이 쌓아 올려 투명한 빛을 머금게 하는 기법. 이것은 단지 ‘고급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정면으로 견디는 방식이었다.


작가는 그 고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수천, 수만 번의 붓질이 한 폭에 숨 쉬고 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탄생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가 다시 나를 깨닫는 순간.”


석청, 호분, 무소 블랙...

작가는 전통 안료의 미세한 입자감까지 통제하며, 빛이 어둠을 밀치고 올라오는 장면을 그린다.


- ‘탄생’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서사


특히 〈탄생 그리고〉 앞에 붙은 평론가 글은 이번 전시가 단순히 미적 재현을 넘어 인간의 존재론적 여정까지 포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탄생은 끝이 아니다. 다만 그 빛은 이제, 고통을 견딘 자의 심연 속에서 다시 타오르고 있다.”


평론가의 글

이 문장을 읽고 작품을 다시 바라보면, 화면 속 인물이 더 이상 한 명의 ‘여성’이나 ‘어머니’가 아니라 누구나 겪는 존재의 갱신, 내면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은유처럼 보인다.


- 갤러리 밖으로 나오며,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전시를 보는 내내, 한 가지 색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작가가 즐겨 쓰는 푸른빛.

금보다 귀했다는 전통 안료 석청(石靑)의 깊은 색. 그 색은 기억의 어딘가에서 천천히 발광하는 느낌을 남겼다.


최정연 작가가 비단 위에 수천 번의 붓질로 쌓아 올린 색은 단지 ‘그림’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반복되는 탄생의 순간을 깨우는 작은 불씨였다.


어쩌면, 이 전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탄생은 한 번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빛의 조각을 다시 갈아 넣으며, 또 한 번의 생으로 나아가고 있다.”


- 아래는 작가와의 대담을 인터뷰 기사로 구성한 글이다.


빛을 새기는 사람: 진채(眞彩) 작가와의 긴 대화


전시장의 문을 열기 전부터, 어딘가에서 빛이 묻어 나왔다.

유화의 기름 냄새도, 아크릴의 매끈함도 아닌, 조금 더 오래되고 조금 더 깊은 빛.

마치 ‘색이 스스로 호흡하는 곳’에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시장 입구

그 빛을 만드는 사람, 진채(眞彩) 작가 최정연을 만나기까지 나는 여러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진채가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오래 쌓아야 하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손끝의 감각이 필요한지.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알고 싶었던 건, 이 모든 고된 기술을 견디게 만든 ‘마음’이었다.


사실적인 꽃 그림

인터뷰는 조용한 전시실 한편에서 시작됐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비단 위에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Q1. 진채는 그렇게 어렵다는데... 왜 이 길을 선택하셨나요?


작가는 잠시 웃으며 비단 한 폭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A. “아교는 젤라틴이에요. 안료를 감싸고 있다가, 마르면 수축해요. 그때 빛이 안에서 밖으로 새어 나오는 느낌이 생기죠.

호분이나 분채는 되려 빛을 흡수하는 느낌이 있어요.

아교가 수축해서 생기는 장점은 접착제가 마르면서 화면에 최소화되고 그 때문에 안료 각각이 가지고 있는 특색이 접착제에 가려지지 않고 생생하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예요.


즉, 빛이 번져 나오는 느낌은,

1. 비단에 앞뒤로 채색함으로써 속에 숨은 색들이 새어 나오는 느낌.

2. 석채가 빛을 난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설명은 기술적이었지만, 듣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들렸다.

빛이 캔버스를 ‘뚫고’ 나오는 게 아니라, 안쪽에서 천천히 ‘새어' 나오는 그림.


“유화는 빨강과 노랑을 섞으면 주황이 되잖아요.

그런데 진채에서는 층을 쌓아요.

빨강 한 번, 노랑 한 번, 또 빨강...

겹칠수록 색이 맑아져요.

마치 속에 숨겨둔 감정이 천천히 드러나는 것처럼.”


그녀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손끝으로 ‘빛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Q2. 하루 16시간 작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인가요?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A. “네, 그 정도는 해야 색이 나와요.

작품 하나에 붓질이 수천, 수만 번 들어가요.”


작가의 말은 과장도 자랑도 없었다.

그저 ‘사실’이었다.


진채는 건조 속도가 빠르다.

색을 얹고 자연스럽게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얹고 또 얹는다.

그 과정이 끝없이 반복된다.


“유화처럼 한 번에 깊은 색이 나오지 않아요. 무조건 반복해야 해요. 그래서 하루에 열여섯 시간도 모자라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색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Q3. 색감이 유난히 빛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석청이에요. 옛날엔 금보다 귀했어요.”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 단청을 금지한 이유는, 안료가 너무 비싸 사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한 병 20g이 몇십만 원이에요. 그래도 이 색을 쓰지 않으면 그 깊은 파랑이 안 나와요.”


보석가루로 만들어진 안료, 석채.

빛이 자연스럽게 반사되는 이유는, 그 이름이 ‘보석(石)’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말했다.


“예민하지만, 그만큼 순수해요. 빛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죠.”


Q4. 비단은 종이보다 예민하다는데, 왜 굳이 비단을 선택하시나요?


비단은 작은 힘에도 흠집이 생긴다. 물을 올리는 양도, 붓끝의 기울기도 모두 조심해야 한다.


A. “비단은 예민하지만, 손끝이 제대로 반응하면 최고예요. 색도 깊고, 빛도 고와요.”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


“잘못해도 닦아낼 수 있어요.

물론 감각이 필요하지만요.”


섬세한 화면 아래에는 흩어진 시간과 감각이 숨어 있었다.


Q5. 글도 굉장히 잘 쓰시는데, 그 감수성은 어디서 온 건가요?


A. “어릴 때 난독증이 있었어요. 책을 읽으면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죠.”


그녀는 그 난관을 ‘연습’으로 뚫었다.


“해리포터 1권을 한 달 동안 읽었어요.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읽었죠. 1년 뒤에, 문장들이 술술 들어왔어요.”


그러자 책이 쌓였고, 문장이 쌓였고, 여러 권의 시집이 그녀의 감수성을 키웠다.


“문장이 나보다 먼저 나이를 먹는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Q6.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고요?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A. “이번 전시 주제가 ‘탄생’이라 그런지... 여성분들이 많이 울어요.”


관객은 그림을 선택할 때, 현재의 감정 상태를 반영한다고 했다.


“지금 평온한 분들은 정면의 그림을 좋아하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는 분들은 눈을 뜨고 있는 작품을 좋아하세요.”


나는 그 말에 오래 머물렀다. 작가가 담아 둔 감정과 관람객의 감정이 조용한 파동처럼 서로를 건드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Q7.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하셨나요?


A. “네 살 때 데칼코마니 하던 기억이 있어요. 아빠가 퍼즐을 사주셨는데, 새벽 3시까지 졸면서 맞췄대요.”


그 끈기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 모든 시간이 공부로 채워져 있을 때, 그녀는 오히려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제일 돌아가기 싫은 시기예요.”


그러다 대학에서 ‘배우는 기쁨’을 다시 찾았다.


“그때 제 인생이 비로소 색을 찾은 것 같았어요.”


Q8. 앞으로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작품을 바라보았다.


A. “이름을 몰라도, 그림만 보면 ‘아, 이건 그 사람 거다’ 할 수 있는... 그런 작가요.”


꽃이든, 인물이든, 풍경이든... 그 무엇을 그려도 ‘그 사람의 세계’가 드러나는 작가.


“예전 화가들처럼요. 풍경도, 초상도, 정물도 그렸는데, 단 한 번에 ‘그 사람’이라고 알아보는 그림.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절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었다.

작가는 비단 앞에 앉아 있다.

조용히 붓을 들고, 색을 준비하고, 천천히 칠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마치 ‘빛을 부르는 주문’ 같다.


이 작가에게 빛은 안료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힘,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였다.


나는 그녀가 말했다던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제가 담는 감정이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나는 그녀가 쌓아 올린 수만 번의 붓질을 떠올렸다. 그건 단순히 색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층위를 차곡차곡 올려 ‘빛이 나오는 사람’으로 성장해 온 시간들이었다.


그 빛을 마주한 사람들은, 아마 오래도록 그 여운 속에서 자신의 감정 한 겹을 새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궁중회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서양 명화와 만나는 초사실주의 기법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상위 1%의 30대 작가가 일궈낸 깊이와 장인정신에 경의를 표하며 전시장을 나섰다.


꽃과 열매 그림은 사진보다 더 사실적이다.
작가 최정연(오른쪽), 필자(왼쪽에서 두번째), 필자의 친구(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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