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때때로 삶의 목소리로 들린다
어느 날 문득, 몸이 가벼운 신음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연령이 주는 작은 흔들림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픔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마치 “이제는 좀 들어보라”라고 묵묵히 말을 거는 것처럼.
그 조용한 통증 속에서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마음 어딘가 깊은 곳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미뤄둔 삶의 숙제가 조용히 봉투를 열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플 때마다 내 안에서 어떤 문장이 떠올랐다.
“서두르지 말아라.”
“마음을 내려놓아라.”
“화를 덜 내고, 판단을 덜 하여라.”
그 문장들은 내 의지로 만든 말이 아니었다.
몸이, 혹은 삶이, 혹은 나를 둘러싼 더 큰 무엇이 오랜 시간 끝에 전해주는 묵묵한 훈계처럼 느껴졌다.
아픔은 처벌이 아니라 징표이며, 멈춤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숨을 주는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동을 갑자기 무리하게 하면 다음 날 아프다.
기한에 쫓겨 마음을 조여 매면 그날 밤 통증이 스며든다.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비난한 날은 몸이 묘하게 무거워진다.
술잔을 과하게 기울인 날엔 다음 날 아침이 낯선 얼굴로 찾아온다.
계획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며 불면이 이어진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일들, 그러나 몸은 아주 작은 일에도 정직하게 반응한다.
그 성실함 앞에서 나는 오히려 부끄러워진다.
몸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렇게 살면 아프다.
그러니 조금 더 부드럽고 천천히 살아라.”
중년에 들어서며 나는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달리는 데 써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일을 벌이고, 스트레스를 삼키고, 책임이라는 넓은 그릇을 감당하며 나는 쉼 없이 앞만 바라봤다.
그렇게 지나온 세월이 이제야 나에게 “잠시 뒤를 돌아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몸이 먼저 늙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먼저 지쳐서 몸이 뒤늦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 반응이 바로 아픔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아온 것뿐이다.
아픔은 나를 둥글게 만들었다.
화를 덜 내게 하고,
남을 조금 더 품게 하고,
가끔은 스스로에게도 따뜻한 손을 얹게 했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 이제는 ‘놓아주는’ 법을 배우게 했다.
그 배움이 어쩌면 삶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지혜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아픔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밀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기 때문이다.
마른 장작처럼 바삭해진 마음에 다시 촉촉한 숨을 불어넣는 인생의 은밀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두세 달 동안 겪은 통증이 나에게 준 것은 고통이 아니라 깊이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아픔은 나에게 말한다.
“너는 아직 익어가는 중이다.”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오늘은 위로처럼 들린다.
"아픔은 때때로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부드러운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