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너머의 그에게 마음이 기울 때
‘Parasocial(파라소셜)’
- 화면 너머의 그에게 마음이 기울 때
만난 적 없는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관계를 건너고 있다.
1. 나를 붙잡은 목소리
눈이 내리는 조용한 밤이었다.
첫눈의 설렘에 마음속에서 작은 파문이 일던 날, 무심코 휴대폰을 켰다.
그곳에는 자주 보던 사람이 있었다.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내 일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내 이름도 모르고, 내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그의 말투 하나가 내 감정의 온도를 살짝 바꿔놓곤 한다.
이 묘한 감정이 바로 parasocial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영국 케임브리지 영어사전이 2025년의 단어로 선정했다는 parasocial.
유명인, 유튜버, 인플루언서, AI, 챗GPT 등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면서 일방적인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끼는 관계를 말한다.
2. 관계의 모양은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관계를 ‘함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길을 걷고, 함께 얼굴을 마주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화면 속 그는, 단 한 번도 내 앞에 선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가까웠다.
그의 기쁨에 내가 웃고,
그의 슬픔에 내가 잠시 멈추고,
그의 변화에 내가 이유 모를 응원을 보낼 때,
관계는 반드시 ‘접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은 때때로, 실재보다 이미지에 더 먼저 반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3. 위로와 도피, 그 사이에 머무는 마음
Parasocial 관계는 참 묘하다.
위로이면서 도피이고, 현실과 비현실이 가장 부드럽게 만나는 지점이다.
마음이 아픈 날, 현실의 사람에게는 털어놓기 어려운 말도 화면 속 그에게는 조용히 기대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모르니 상처 줄 일이 없고, 나는 그에게 책임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안전함이 때로는 위로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더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관계의 리스크를 제거한 자리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지만, 그곳에 오래 머무르면 현실과의 연결이 조금씩 희미해진다.
4. 이 관계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면 속 누군가에게 고마울 때가 있다.
어떤 날은 그가 건넨 말 한 줄, 표정 하나가
내 하루의 균열을 부드럽게 메워주기도 한다.
그것이 인위적이든, 기획된 이미지든, 그 순간 나에게 분명히 닿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진정성은 대상이 아니라 ‘내 마음이 움직였는가’로 판단되는 것이니까.
5. 이 관계가 내 삶에 남긴 것
Parasocial 관계는, 현대인의 고독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유대다.
결핍에서 생겨났지만, 고립의 증거만은 아니다.
화면 속 그에게 기대는 동안 나는 내 감정을 더 잘 들여다보게 되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흔들리는지를 조금씩 알게 된다.
어쩌면 그는 현실의 관계로 더 깊이 나아가기 위한 작은 징검다리일지도 모른다.
만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 한쪽을 조용히 밝혀준 그에게 오늘도 나는, 작은 인사를 건넨다.
“고마워. 이 시대의 낯선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와줘서.”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