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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13. 2022

7화. 과일을 먹는 까치

가을.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선선하다.

군 관사는 시멘트 거리에 아파트만 덩그러니 있기에 시멘트의 열기가 뜨겁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지나고 나니 선선한 바람이 반갑기만 하다. 초가을 날씨는 아이들에게 더없이 행복한 계절이지만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모기들의 반항은 여전히 거세다. 갈수록 독해지는 모기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물리면 많이 아프다. 군가족들의 고충을 아는지 방역차가  붕~ 소리를 내며 군 관사 한 구석에 자리 잡고 뿌연 소독 연기를 내뿜는다. 어렸을 때 동네에 소독 방역차가 오면 붕~소리를 내고 가는 뒤를 쫓아가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땐 동네 친구들과 그렇게 쫓아다닌 것만 해도 즐거웠는데 지금 군 관사 친구들은 그냥 쳐다보기만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참 열매 맺은 나무들이 많다.

집 앞에 큰 나무를 보면 정말이지 내 나무하고 싶을 만큼 열매가 많이 열린다. 아무도 관심 없는 감나무.

나는 이 감나무가 예쁘기만 하다. 주인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다. 소독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풀을 뽑아주는 것도 아니고 가지치기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익어갈 준비를 한다.

길을 걷는데 갑자기 내 앞에 쓱 나타나더니 5층 높이의 아파트 위를 훌쩍 올라가는 새의 모습.

아이들과 나는 정말 많이 놀랐다. 새같이 생겼는데 크기는 작은 닭만 하고 날기엔 이상하게 몸이 무거워 보였다. 꼬리는 어찌나 긴지 희귀 새처럼 보였다.

지나가던 다른 군인 가족이 알려준다." 저거 꿩이에요. 여기 꿩도 살아요~"

교과서에서나 봐왔던 꿩이.. 군인 아파트에 산다고?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산에서만 사는 줄 알았던 꿩이 군 관사에... 장끼와 까투리가 놀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이곳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사람 손이 많이 타지 않게 보존하고 있는 경계선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내 생에 실제로 꿩을 본 신선한 경험이었다.


날씨가 선선해 아이들과 초저녁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집 앞 감나무가 제법 익어가고 있다. 좀 있으면 주황빛에 한 입 먹으면 달콤할 홍시가 될 것만 같다. 아직 덜 익었지만 손에 닿을만한 홍시는 꼭 내가 따먹고 싶은 유혹마저 들었다. 햇살이 유난히 잘 비추는 위치 달려 있는 홍시는 벌써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저 높이 달린 홍시는 누가 따먹을까? 너무 높아서 아무도 따지도 못할듯하다. 며칠 뒤  아이들과 다시 산책을 갔다. 근데 잘 익었던 홍시를 까치가 다 쪼아 먹고 있었다. 며칠 더 지나 나무에 있던 그 많던 홍시들은 까치들의 뱃속에 들어가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까치들의 먹성이란 정말 최고다. 아주 맛있게 익은 홍시들만 쏙 골라서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다 쪼아 먹다니...

날개가 있는 게 정말 부러운 저녁이었다.


가을이 되니 나도 모르게 나무를 쳐다보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여기저기 단풍나무가 워낙 많기 때문에 붉게 물들고 있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는 멀리서 지켜볼 때만 기분이 좋지 사실 가까이 가고 싶진 않다. 은행나무 밑으로 떨어지는 은행열매를 밟는 건 가위바위보에 져서 까나리액젓을 먹는 슬픔과 비교할만하다. 피해 간다고 피해 보지만 어느 순간 내 발 밑에 있는 은행 열매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다닥다닥 다닥 붙어 있는 은행 열매가 한 가지에 도대체 몇 개나 달려 있는 건지 모르겠다. 순간 생각해 본다. 이 많은 은행 열매를 유용하게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  군에서 자체적으로 은행 열매를 수거해 현역군인의  요리에 포함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럼  누군가에게 귀한 열매를 버리지 않아 좋고 나와 같이 은행 열매를 밟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의 불편함을 덜어 줄 수 있을 텐데란 생각을 해본다.

군 관사에서 편하게 즐기면서 사는 사람의 배부른 소리인 줄 알면서도 괜찮은 생각 같다며 킥킥 웃어본다.


신책을하며 돌아보니 참 많은 열매들이 있다.

앵두나무가 5그루는 되는 것 같고 모과나무도 세상 크게 뻗어있다.

뽕나무도 두 그루나 발견했다. 잣나무도 정말 여러 그루가 쭉~ 심어져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부대안 군 관사는 숲의 연장선이고 날것 그대로를 표현해주는 도심 속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곳은 도심 근교 지역인데 섬처럼 따로 떨어져 자급자족 생존하는 작은 마을 같았다.


일반 아파트에 사는 친구 엄마가 얘기한다

"근데 저기 안에서 살면 배달음식은 어떻게 해요? 난 새벽 배송 많이 시키는데.. 신선식품은 배달이 돼요?"

난 단호하게 얘기했다.

"신선식품 시켜 먹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냐, 정말 불편하겠다, 아침마다 신선한 식품을 아파트 문 앞 바로 앞까지 배달해주는 장점을 이용할 수 없어서 안됬다는 등... 그동안 본인이 생각했던 군 관사에 사는 사람들의 안쓰러움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사실 이해가 간다. 나도 군 관사에 살기 전엔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안쓰러웠다. 일단 집이 좁고 낡았으며 배달음식의 찬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함. 왠지 돈이 없어 군 관사를 이용할 것 같은 안쓰러움까지. 참 복합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 적응하고 나니 장점이 참 많았다.

배달 음식을 거의 안 먹으니 재정을 아낄 수 있었고  신선식품이야 선택사항이지 근처 마트 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리고 군인 아빠들의 특성상 많이 바쁘기 때문인지 집에 차가 한 대씩 더 있는 집도 많다. 엄마가 따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동력으로 뭐든 가능하다. 집 문제는 사정마다 다르겠지만 따로 자가집 하나 정도는 마련해 두고 있다. 오히려 이곳에 살면서 돈을 모아 나가는 경우나 아이들 교육에 조금 더 보탤 수 있다면 이득이라고 본다.

또 일반 아파트에 비해 관리비나 가스비도 엄청 저렴하기 때문에 그만큼 새 나가는 돈도 막을 수 있다.

일반 아파트 40평대에 살 땐 가스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와 보일러도 빵빵하게 떼지 못했지만 이곳에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물론 아파트가 많이 낡았다. 정말 재개발이 들어가야 할 만한 아파트가 맞긴 하다. 내부가 맘에 안 들면 살짝 맘에 들게 고치고 들어오면 되지 사실문제가 될 건 없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좋은 장점도 너무나 많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내면서  점점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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