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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17. 2022

9화. 추억 쌓는 아이들

가을.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이제 제법 쌀쌀하다. 

너도 나도 겉옷 없이는 외출도 못하는 추위를 느끼고 있다. 그래도 낮에는 버틸만하데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 덕에 조금씩 몸을 사리게 된다. 아이들은 이 날씨에도 서로 어울리며 참 잘 놀고 있다. 갑자기 아이들이 우리 집 문을 벌컥 열더니 "엄마. 색종이 어딨어? 테이프는?" 하며 각종 종이들과 색연필, 가위 테이프 등을 챙겨서 황급히 나간다.  무슨 일을 벌이는 거지 싶다가도 서로 잘 어울리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창문으로 살짝 밖을 보니 군 관사 아이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 같았다.

아파트 사이에 시멘트 바닥을 해놓은 나름의 무대 같은 공간에서 무슨 꿍꿍이를 하고 있는지 오밀조밀 모여 A4 용지에 쓰기도 하고 색종이를 오리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모두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어둑해지고 아이들이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오늘의 즐거웠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나에게 조잘조잘 얘기하기 시작한다.

"엄마 할로윈 데이때 우리 사탕 받으러 다니기로 했어."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돌아오는 할로윈데이때 군 관사 아이들끼리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 모양이다

할로윈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허름한 무대 아파트 벽면을 꾸미기 위해 각종 색종이들과 부재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첫째 아이는 본인이 주도했다며 은근히 뿌듯해하는 모습이다.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가서 할로윈 데이 때  밤 6시에 모여 사탕 받으러 갈 거라고 부모님들에게 말해 두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할로윈 날이 되기 전까지 아이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밤에 모여서 허름한 무대 아파트 벽면을 나름의 즐거움으로 채우고 있었다.


다음날 가보니 벽면에 그럴싸하게 할로윈 장식이 붙어 있다.

아이들 부모님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오며 가며 지나다니는 군가족들이 아이들이 참 재미있게 노는 모습이 대견하고 예뻐 보였는지 보이지 않게 응원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할로윈 전을 한껏 즐기는 건 좋은데 아이들의 병원 문제로 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이의 영구치가 너무 썩어버려 신경 치료까지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기존의 소아치과에서 감당이 안되니 대학병원 가서 수면 마취를 하며 치료를 하라는 것이다. 이미 썩은 치아를 메워놓은 상태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치과는 보통 몇 달 후에 예약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학병원이면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가 하교 후  바로 병원에 가는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아이는 본인의 할로윈 일정에 따라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다. 본인이 주최자인데 빠지면 어떡하냐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엄마 마음은 온통 썩은 영구치 충치 치료에 탈탈 털리고 있는데  아이는 온통 할로윈에 마음을 뺏기고 있었다.


마음을 좀 내려놓기로 했다.

아직 어린아이의 영구치가 신경치료까지 가게 되어 속상하긴 하지만 진료를 며칠 늦춘다고 썩어버린 영구치가 돌아오진 않는다. 아이의 의견을 더 우선순위 하기로 했다.

할로윈 준비로 필요한 여려가지 장식들을 사러 다이소에 방문하기로 했다. 할로윈 장식들이 있는 코너에 갔지만 이미 장식들이 다 나가고 없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할로윈을 즐기길 원하는 아이들이 많은가 보다.

이맘때가 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에게 예쁜 할로윈 장식을 하나씩 하고 오라고 한다. 그때부터 불티나게 팔리는 할로윈 장식들. 외래 행사가 국내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을 줄이야.. 이젠 할로윈 행사가 매년 즐겨야 할 행사가 돼버린 것 같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다이소에 들렀다. 이곳은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장식들이 있다.

할로윈 망토, 도끼, 삼지창, 장식들, 호박 모형 등등.

아이들이 원하는 여러 장식들을 사 가지고 군 관사로 돌아왔다. 도착하니 벌써 몇몇 아이들이  빈 무대에 모여 자신들이 원하는 장식을 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빈 무대로 향하는 아이들. 할로윈 장식을 사러 갔는데 벌써 다 나가고 몇 개 안 남았다고 얘기하며 구매한 장식들을 꺼내 놓는다.

몇 개 없는 호박이나 장신구이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그것마저도 너무나 즐거워 보인다.


열심히 할로윈 꾸미기를 하는 아이들.

너무나 열심히 한 탓인지 무대 주변은 각종 종이들로 지저분하다.

열심히 꾸미긴 하지만 주변 정리는 하나도 안된 것이다. 나는 혹시라도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데 주변정리도 안 한다고  미운털이 박힐까 봐 주변의 쓰레기들을 모두 주워서 주변을 깨끗이 하였다. 혹여라도  빈 무대 주변에서 시끄럽게 모여 소음을 일으키고 주변 환경을 더럽힌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군가족들이 있을 수도 있어서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초대 편지를 쓰기도 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할로윈데이 행사에 초대한다며 아빠 엄마들을 초대하는 모양이다. 군 관사를 돌봐주시는 경비아저씨께도 드린 걸 보니 군 관사에 사는 모든 식구들을 초대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경비아저씨는 감동하며 얘기하신다. 군 아파트 아이들은 정말 너무 착하다고. 자신한테도 할로윈을 오라고 초대장을 주더라며 너무 기분 좋게 얘기하신다.  듣는 나마저 가슴이 뭉클해지며 마음의 훈훈해지는 걸 느꼈다.

드디어 아이들이 기대하던 할로윈 날이 돌아왔다.  

저녁 6시에 모두 모여 각 집에 사탕을 받으러 간다고 했다.

토요일 저녁이라 집안의 다른 행사로 못 참석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항상 놀던 아이들은 모두 다 참석을 했다. 아이들은 각각 모여서 예쁜 할로윈 망토를 하고 얼굴에 할로윈 장식을 붙이며 즐겁게 즐길 준비를 하느냐고 분주했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여는 순간 열명 남짓 아이들이 사탕을 받으러 집으로 들어왔다.

"사탕 주세요~~"하며 각자 준비한 모자 바구니와 호박 바구니 등을 내밀며 즐거운 얼굴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다. 나는 기분 좋게 준비해놓은 사탕, 초콜릿, 귤, 사과 음료 등을 한 움큼씩 아이들 바구니에 넣어준다.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이란.. 사진으로 정말 남겨 놓고 싶을 만큼 혼자 보기 아까운 오늘이었다.

바구니에 가득 찬 사탕과 각종 먹거리들.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사탕을 받는 중이었다. 그동안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할로윈이 기특해서인지 엄마들도 먹거리들을 준비해 놓고 기다려 아이들에게 주었다. 사실 엄마들이 사탕과 초콜릿을 준비할까라는 의심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여러 엄마들이 준비해서 아이의 빈 호박 주머니를 가득 채워주었다. 기분 좋게 즐기는 아이들을 보러 꾸며놓은 무대로 향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흥분상태에 즐겁게 놀고 있었다.  오늘은 허름한 빈 무대 아파트 벽면이 너무나 화려해 보였다. 큰 호박 등까지 등장해 반짝반짝 불빛도 들어왔다. 이곳을 예쁘게 본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많이들 도와주는 것이다.


군 관사 안에서 우리만의 공간에서 즐기는 아이들.

위병소 밖의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아도 이곳은 이곳만의 분위기를 타며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한다. 군인 가족, 군 관사라는 연결고리가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오늘을 즐기고 있다.

오랜만에 못 보던 엄마들 얼굴도 보인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마들도 보인다.  귀여운 아이들이 할로윈을 즐기겠다고 모여든 이곳은 즐거운 사랑방이 되고 있었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짖게 깔린다. 즐겁게 놀던 아이들은 아쉬워하며 하나둘씩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온 아이들은 여전히 흥분상태다. 오늘 최고 기분이 좋았단다.  첫째 아이와 씻으며 오늘 즐거웠던 할로윈 추억을 생각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 사탕 받는 것도 너무 좋았어.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가 사탕을 제일 많이 나눠주었어~!!"

라며 너무나 뿌듯해하는 아이.

"그럼~ 우리 딸이 주최자인데 엄마가 사탕 제일 많이 줘야지~~~"

역시 우리 엄마라는 아이의 표정. 오늘 정말 행복한 하루였구나 싶었다.


다음날. 아이들이 즐기고 난 빈 무대 아파트 벽면 주변을 정리하러 나갔다.

아이들이 어찌나 즐겁게 놀았는지 여기저기 종이와 과자, 사탕 껍질들이 너무나 많았다.  벽면에 있는 장식들을 떼고 여기저기 널려 있는 호박 등을 치우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그저 하루였지만 그 하루가 먼 훗날 기억될 만큼 행복한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눈은 더 깊어가고 마음의 행복함이 켜켜이 쌓이는 걸 볼 때마다 이런 재미로 살아가지 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만 행복한 게 아닐 것이다. 허름한 빈 무대 아파트 벽면이 채워갈 때마다 우리들의 마음도 행복으로 가득 찬 하루. 꼭 돈이 풍족하고 반짝여야 즐거운 하루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실의 부족함을 알고 채워가는 즐거움을 느끼며 뿌듯해하는 과정은 나의 경험이 되고 힘이 된다. 할로윈 파티로 느꼈던 아이들의 기분 좋은 하루가 마음속에 늘 자리 잡았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을 오늘도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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