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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20. 2022

12화. 지나 칠 수 없는 반짝임

겨울. 군 관사에 찬 바람이 불면

냉기가 가득한 겨울엔 집안의 온기를 느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게 날 수 있다. 

이 추위에 바깥활동을 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또다시 집순이, 집돌이가 되었고 포동포동 살을 찌우는 중이었다.

다른 군 관사 아이들은 대부분 군인 어린이집을 보낸다. 어린이집의 방학은 아주 짧기 때문에 엄마들의 부담이 덜하다. 육아가 지치고 힘들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을 맡기면 된다. 병설 유치원을 보내고 있던 나로서는 살짝 부러움의 한 부분이기도 했다. 물론 코로나가 위협하는 이 시국에 거의 1년을 보내지 않는 나로선 딱히 어디를 보내든 영향이 가진 않았다. 너도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이 상황에도 여군 엄마들은 정말 독하게도 군 어린이집에 꾸준히 보내면서 육아를 이어간다. 같은 엄마인데 얼마나 불안할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군인가족 대상으로 운영 중인 군 어린이집이 군인들의 편의와 상황을 잘 알아주지 않을까 싶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을 찾는 일도 사실 쉽지가 않은데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는 곳이면 내 아이를 맡기는 일이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궁금해진다. 다른 군 관사 식구들은 어떻게 지낼까. 

곧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연말인데 이렇게 집에만 있다 보니 연말인지 연초인지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군 관사 밖의 세상으로 나가려 해도 남편의 직업 특성상 코로나의 전염 위험으로 교회조차 못 가는 상황에 세상과 단절이 된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군인가족도 부대 안에 지내고 있는 장병들의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현실이기에 바깥 생활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겨울은 아이들과 할 수 있는 놀이가 많지 않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 이상 보면 별 세다 잠이 들 것만 같다. 


저 멀리 반짝임이 보인다. 

저건 뭐지 하며 자세히 보는데 생각지 못한 트리 장식을 베란다에 꾸며놓은 집이 있었다. '아. 저 생각을 못했구나!!'  돌아보니 여러 집이 나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베란다에 반짝이는 트리를 해놓다. 오며 가며 지나가는 사람마저 훈훈해지는 트리 장식의 아름다움이란 차가운 군 관사의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집안에서의 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연말의 특유의 신나는 분위기와 캐럴 소리를 좀 들어보면 시기를 알 수라도 있을 텐데 그런 것 없이 살다 보니 무뎌진 것 같다. 

아이들과 연말 분위기 좀 낼 겸 트리 장식을 하기로 했다. 이사오자마자 정리하기 바빠 베란다 한구석에 놓아버린 트리. 트리 장식을 꺼내어 예쁘게 꾸미고 전구를 켜고 나니  분위기가 한껏 살았다. 

크리스마스가 오는 걸 느낀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에게 갖고 싶은 선물이 있다며 은근슬쩍 말하기 시작한다.

"너희들 이제 산타할아버지 없는 거 알면서 무슨 선물이야~" 하며 곁눈질해보지만 산타할아버지는 있다며 가지고 싶은 선물을 주실 거란다. 산타할아버지 선물은 몇 살까지 줘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며 못 이기는 척 아이들의 선물 목록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신나게 갖고 싶은 선물에 대해 얘기하는 아이들. 그때부터 아빠는 해외 배송까지 시켜가며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우린 좀 더 분위기를 내보려 홈쇼핑에서 랍스터를 시켰다. 

둘째 아이가 홈쇼핑을 보다 랍스터를 보며 이거 먹고 싶다며 콕 집는데 연말 분위기도 낼 겸 한 번 시켜 먹어보자며 기꺼이 주문에 응했다. 

며칠 뒤 배송 온 랍스터를 열어보니 크기도 큼지막한 게 살도 아주 꽉 차 보였다. 찜솥에 넣고 찌기를 10여분. 

접시에 꺼낸 랍스터는 손질이 참 어려웠다. 랍스터 손질은 기술직이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랍스터를 모르는 남편이 하기엔 너무나 험난한 과정이었다. 그 살 한 번 먹기 위해 너무나 많은 손과 팔의 근육을 써야 했고 어쩌다 긴 살이 발라지면 모두 아이들 차지였다. 그나마 그 살도 질기다며 안 먹는 아이들을 볼 때... 남은 랍스터가 처치 곤란한 음식으로 보였다. 하.. 연말 위기 내려다 배고픔만 더하는구나.. 

한 달 뒤 남편은 우리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처치곤란 랍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짬뽕을 끓여 호화스럽게 랍스터를 올려 먹었다. 그 짬뽕은 남들이 보기에 호화스러운 랍스터 짬뽕이지만 우리에겐 그저 육수를 우리기 위한 멸치나 다름없었다. 처치곤란 랍스터의 추억은 다음을 절대 기약하지 않는 걸로 매듭을 지게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이 비장하게 얘기한다.

"우리 곧 있음 혹한기 훈련이야" 

어차피 아이들과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일주일 동안 살게 될 텐데 혹한기 훈련 혼자 가는 거 뭘 그리 비장하게 얘기하나 싶었다. 누가 보면 군가족들 모두 같이 가야 하는 줄 알겠다. 한 번씩 남편은 이렇게 비장한 말투로 얘기한다. 몇십 년씩 몸담아온 훈련을 괜히 한 게 아닌 것 같다. 나름의 비장한 각오와 결심들로 똘똘 뭉친 걸 보니 이 나라 전쟁이 나도 뒤로 숨는 군인들만 있지 않겠다 싶었다.  생각해보니 군부대 밖 일반 아파트에 살 땐 태극기를 걸어놓은 아파트를 거의 볼 수 없었다. 국경일이나 특별한 날이 오면 학교에서도 태극기를 걸어야 한다고 얘기는 하지만 사실 실천하는 집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가끔 태극기를 걸어놓는 집을 보면 어김없이 군인 가족들이 사는 곳이었다. 물론 군인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가 태극기를 걸어놓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투철하게 생각하는 건 역시 군인들이 우세했다. 이곳 군 관사에서도 국경일이 되면 꽤 많은 집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 그런 걸 보면 군인 아빠들의 보이지 않는 투철한 정신이 이 나라의 버팀목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남편에게 농담을 해보고 싶었다.

" 군 관사는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도록!!"

피식 웃는 우리들 사이로 아빠 훈련 간다며 핫팩을 챙겨주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집 밖은 건조하고 춥지만 이곳은 온기로 가득하다. 오늘도 추억 하나. 행복 둘. 

쌓아가는 재미로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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