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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07. 2022

1화. 우리 가족의 군 관사 정착기

봄. 우리 인연의 시작.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시기였다.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게 우리도 초등학교 학부모라는 뿌듯함과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할까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이 타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면서  가족은 떨어져 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사를 결정했다.

살던 집은 오래도록 기다려도 매매가 되지 않았다.

40평대의 워낙 인테리어도 잘되어 있고 깨끗한 집이라 금방 나갈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질 않았다. 집 문제를 해결해야 이사 갈 곳에 집을 구하는데

마음이 초조하기만 했다.

결국 우린 첫째 아이를 위해 군 관사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크고 깨끗한 집에 살다 낡고 오래된 군 관사로 이사를 가게 되는 게 마음에 많이 걸렸던 모양이다.

군 관사에 들어가기 전 이사 갈 곳에 가보자고 하면서 많이 낡은 집이라고 운을 떼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군 관사를 지나치다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외관상만 봐도 많이 낡고 몇십 년은 돼 보이는 아파트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과 새로운 지역으로 드라이브도 갈 겸 차를 타고 앞으로 정착하게 될 군 관사를 가보았다.

아이들은 이사를 간다는 생각과 새 집에 간다는 생각에 벌써 들떠 있었다.

부대 안에 있는 군 관사인데 출입증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충성~!"

남편이 출입증을 내밀고 단말기에 딱 찍더니

"확인되었습니다! 충성~!"

오늘에서야 느꼈다.  우리 남편 군인이었지...


군 관사 네 개의 동이 보인다.

내 예상대로 많이 낡은 아파트였고 사실 아파트라고 하기보다 빌라에 가까운 작은 건물들이었다.

오래도록 꿋꿋하게 잘 버티고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낡은 창문. 뭔가 을씨년스럽다..

어떻게 계단이 이렇게 오래된 티가 날 수 있지 싶을 정도의 올드함..

이곳저곳 정돈되지 않은 주변 시설과 주인 없는 자전거들.

나는 1층 우리가 살게 될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근무 일정 때문에 남편이 먼저 살고 있었다. 틈틈이 청소를 해놔서 깔끔했다.

오래된 집이고 여러 사람이 거쳐간 곳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못 자국도 많았다.

베란다는 집평수에 비해 너무 넓게 빠진 것 같다. 세탁기도 넣고 건조기도 넣다 보면 효율적이게

쓸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싱크대를 보니 살짝 한숨이 나왔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몇십 년 된 아파트가 이 정도로 잘 버텼으니

칭찬해줘야 지란 마음으로.

제일 걱정된 건 화장실 문제였다. 

기존 집에는 화장실이 두 개가 있어서 네 식구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이제 하나의 화장실로 써야 하니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직 잘 참지 못하는 아이들이 실수라도 하면 일이 커지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바로 화장실로 가서 소변 보고 다음 사람을 위해  화장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안 돼~알았지?"

특히. 남편! 화장실에서 게임도 하고 기사도 보고 할 거 다 하고 나오는 버릇.

이번 집에서는 볼일만 보고 나오길.

화장실 잔소리꾼으로 변신하고 감시해야겠다.

아이들은 새로운 곳에 이사 생각에 기분이 좋은가보다.

어떤 곳이든 아빠 엄마와 함께 하면 그냥 좋은듯하다.

"엄마 우리 여기로 이사올 거야?"

"응~ 우리 집 좋지? 좁지만 예쁘게 살아보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후배 와이프가 군 관사에 살자고 하니 울었대~"

'울었다고? 신혼이면 당연히 싫지. 그땐 현실보단 낭만이거든.'

난 그냥 괜찮았다. 군 아파트의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가족이 떨어져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첫째 아이를 무사히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터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주변의 환경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응하면 된다. 이곳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일 테니까.


이사가 결정되고 본격적으로 짐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버리지 못하고 쓸모없다 생각하는 짐들 반을 다 버리기로 결심했다.

40평대에서 20평대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고민하며 1,2,3차 나눠서 계속 버리기로 했다.

1차. 진짜 쓸데없이 자리 차지하고 있는 묵었던 물건들을 버리자.

2차. 버릴까 말까 고민하며 내려놓았던 물건들을 버리자.

3차. 눈 딱 감고 다 버리자.

내생에 그렇게 과감했던 적이 없다. 그동안 항상 함께 했던 아이들 동화책과 나의 책들.

정말이지 눈물을 머금고 버리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책만 남겨두고 새로 시작할 마음으로 비워냈다.

버리지 않으면 군 관사에 들어갈 수 없다...

수납장에  언제 필요할지 몰라 늘 두었던 물건들. 1년 이상 쓰지 않은 물건들은 다 분리수거를 해버렸다.

옷장의 옷들도 딱 반을 줄였다. 정말 있어야 할 것들만 빼고 다 분리수거함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지 않는 작은 장난감들. 시기가 지나  버려도 될만한 장난감들. 부피가 커서 못 가지고 갈

장난감들. 나중에 엄마가 다 버려 버렸다고 원망 석인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들 보며 사실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집은 홀쭉해졌고 친한 엄마가 놀러 와서는 정말 많이 놀라워했다.

" 언니 그 많은 짐들 어디 갔어요? 정말 다 버렸나 봐요."

"응.. 다 버렸어...."



아침 일찍부터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벨을 누른다.

이삿날. 아이들과 나는 친정에 잠시 머물렀고 남편은 이삿짐 옮기는 것을 지켜보고

새로 이사 갈 곳에  짐을 넣을 곳을 소통하며 정리를 했다.

이사 정리를 모두 마칠 무렵 새로운 집에 가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남편의 전화가 왔다.

남편의 힘없는 목소리. 생각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집이 너무 좁아지니 답답한 마음부터 들었을 테니까.

군부대 입구에 도착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남편. 출입증이 있어야 들어가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다.

카드를 찍고 우리 집을 향해본다.

짐을 다 들여놓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공간이 좁았다.

정말 다 버리고 오지 않았으면 짐을 옮기는 와중에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가져온 식탁이 너무 커서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한 사람이 왔다 갔다 할 좁은 공간만 생겼다.

차례차례 지나가자. 질서 있게!!

혼자서 집안의 규칙을 정해보자.

1. 화장실은 후다닥.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갔다 오기.

2. 씻을 때는 밀리지 않게 빠릿빠릿하게 씻고 나오기.

3. 좁아서 답답하니 서로 귀찮게 하지 않기.

마음속으로 규칙을 정해 본다.  귀찮아서 잘 지켜지지 않으면  엄마의 잔소리가 작동될 거야.

잘 살아보자. 군 관사야. 나는 너를 좋아한다. 너와 함께할 것이다.

그렇게 군 관사의 첫날. 남편의 잊지 못할 표정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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