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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상 Nov 02. 2018

라스베가스행 심야버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난 라스베가스행 심야버스를 탄다

J양은 먹던 점심을 내려놓고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본다. "버스를 타고 라스베가스를 간다구요?" "응 오늘 밤 11시 50분 차야" 나는 먹던 점심을 어서 먹으라고 눈치를 준다. J양은 여전히 버스를 타고 라스베가스를 가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그 이유가 궁금해 물어본다. "그런데 뭘 그렇게 놀라?" J양의 여러 이유들의 결론은 결국 '위험하다'였다. 과연 위험할까?


 



베가스행 심야버스는 사실 나에겐 무척 익숙하다. 베가스라는 곳이 사실 유흥의 절정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잠시 머릴 식히러 다녀오기에 참 좋은 동네인 것 같다. 전에는 일과 후 주말을 앞두고 주로 심야 고속도로를 타고 베가스로 향했다. 빠르게 가도 4시간 30분, 늦어도 5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라스베가스는 운전하기 적당한 거리다. 그런데 크고 작은 사고의 위험을 겪고 나서부터는 베가스 운전이 영 쉽지가 않다. 특히 심야에 홀로 떠나 무박 2일 정도로 베가스를 즐기는 나에게 운전은 점점 하나의 짐이 됐다. 무엇보다 운전을 하게 되면 본래의 목적인 '머리를 좀 식히고 생각을 한다'라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메가버스를 탈 수 있는 LA 유니온 스테이션


최근 로스앤젤레스를 기준으로 라스베가스를 가는 교통편이 무척 다양해졌다. 유명한 저가 버스인 메가버스는 이미 주요한 노선으로 자릴 잡았다. 여기에 FLIX 버스가 최근 활발하게 홍보 중이고,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베가스와 LA를 잇는 셔틀이 운행 중에 있다. 이밖에도 2~3 정도의 베가스 버스 교통편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주로 메가버스를 이용한다. 여기엔 몇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탑승 장소가 LA 유니온 스테이션이라 내가 타고 온 자동차를 세워두기에 좋다. LA 유니온 스테이션의 경우 하루 24시간을 꽉 채우면 $8의 이용료를 받는다. 만약 3일 이상 주차를 할 예정이면 주차 사무실에다 신청서를 적어내야 한다. 둘째 메가버스는 일정을 잘 활용하기에 좋은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 내가 타는 버스는 밤 11시 50분에 LA를 출발해, 다음날 새벽 4시 30분 정도에 라스베가스에 도착한다. 베가스 내에서는 주로 우버나 듀스 버스를 이용하면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특히 요즘엔 공짜 주차를 허용하는 호텔들이 줄어들다 보니 오히려 이런 방법이 점점 편한 듯하다. 셋째는 저렴한 가격이다. 메가 버스는 차량에 홍보용 '$1'이라는 가격을 붙이고 다닌다. 사실 저 가격에 탈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주중에 잘 고른다면, 적어도 $5 아래로 버스를 탈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4 정도 하는  프로모션 가격을 이용할 수 있었고, 돈을 더 내고 사는 자리를 고른다고 해도 왕복 $24 정도로 표를 끊었다. 보통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편도만 $40에 가까운 적도 있다. 


메가버스의 2층 앞 창가 자리. 심야버스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버스나 기차, 비행기도 그렇다. 항상 옆자리에 누가 앉을까라는 약간의 설렘이 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여성분이 앉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사실상 로또 맞기보다 더 힘들다. 버스 구조는 2층으로, 나는 주로 2층 앞 젤 앞자리를 고른다. 마치 거대한 사파리 버스를 탄 듯한 느낌이 든다. 누군가는 밤에 뭐하러 거길 앉느냐고 하지만, 한낮의 뜨거움보다 별이 보이는 야간 프리웨이를 조금 더 넉넉하게 바라보는 뷰가 훨씬 좋은 것 같다.  


자리에 앉아 떠날 준비를 한다. 주중에 과연 누가 이 늦은 밤에 베가스를 갈까 싶지만, 좌석은 어느새 꽉 차버린다. 2층 앞 유리창 좌석이 좋은 이유는 가끔 통로 쪽 좌석을 구매하면 창가 쪽 좌석이 비기도 한다. 아마 혼자 떠나는 여행객보다는 그래도 단체나 친구끼리 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연결된 두 좌석 중 하나가 예약이 되면 대부분 나머지 좌석을 포기하곤 한다. 이번에도 역시,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내 옆자리는 비었다. 무척 다행이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잠시 휴식을 위해 정차 중인 메가버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난 버스는 가로등마저도 희미해진 외곽을 향해 달린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15번 프리웨이는 버스가 비추는 도로 위 차선 표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심야 버스를 타는 이유는 바로 이 순간이 좋기 때문이다. 가능한 몸을 가볍게 하고 스마트폰도 꺼둔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새벽 2시가 넘어가는 이 시간에 빛나는 직사각형 장치에 내 시선을 뺏기고 싶지 않다. 불이 꺼진 버스에서 바라보는 하늘에는 별들이 참 아름답게 빛난다. 달빛 때문에 희미하게 보이는 능선 정도가 모하비 사막 어디쯤을 지나는 것인지 짐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생각에 빠진다. 


라스베가스의 관문, 프림 아울렛을 지나는 버스


버스의 덜컹거림에 눈을 떠보니 저 멀리 화려한 불빛을 내는 거대한 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잠이 들지 않는 도시 라스베가스다. 그렇게 난 안전하고 편하게 라스베가스의 새벽을 만난다. 졸음 운전과 심야 트럭의 무서운 대시, 특히 밤 시간에 모하비 사막에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바람은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들이 아니다. 그래서 심야의 고속도로를 뚫고 온 내 몸은 정말 편하다.


버스 기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가방을 든다. 운전을 하고 왔다면 난 아침부터 근처 찜질방이나 한인타운의 해장국집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벼운 발걸음은 베가스로 곧장 향해도 된다. 심야 버스 덕분에 난 오늘 아주 긴 베가스의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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