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복수극!!
이런 복수극이 또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라서 가능한 감성복수극, 유성의 인연. 왜 진작에 안 읽었는지, 후회가 된다. 14년이 지난 후에야 밝혀진 잔인하게 부모님을 죽인 살인범. 막판에 엄청난 반전이 숨겨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당연히 이 사람은 아니겠지, 그런데 그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가을, 드디어 제대로 된 독서를 했다. 눈물을 멈출 수 없는 결말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눈물보다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작된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절대 책을 놓을 수 없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성의 인연이다.
우리 저 별똥별 같다. 기약도 없이 날아갈 수밖에 없고, 어디서 다 타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은 이어져 있어. 언제라도 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다고. 그러니까 무서울 거 하나도 없어. (본문중에서)
고이치, 다이스케, 시즈나는 부모님 몰래 별똥별을 보기 위해 밤마실을 나왔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주무시고 계실거라고 생각한 부모님은 누군가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됐다. 첫째인 고이치만이 살해 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두 동생은 고이치로부터 부모님의 죽음을 듣게 된다. 이 세상에서 우리밖에 아무도 없다 그러니 우리끼리 살아야 한다고 고이치는 두 동생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14년이 지났다. 시즈나가 사기를 당하고, 고이치가 회사에서 사기를 당하자, 그들을 속고 살기 보다는 속이는 삶을 선택한다. 모든 기획은 첫째인 고이치가, 행동대장은 둘째인 다이스케가 그리고 미인계는 막내인 시즈나가 담당이다. 셋을 그렇게 어리숙한 남자들을 속여, 돈을 뜯어내는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유명 양식당의 아들인 유키나리에게 돈을 우려낸 뒤에 사기 치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고이치는 동생들에게 말한다. 마지막 사기를 위해 시즈나는 그에게 천천히 접근을 하고, 드디어 그들이 생각했던 일들이 차례로 이뤄지고 있는 이때에, 엄청난 사건이 터진다.
어쩌면 그건 이 양식당 때문이진도 모른다. 이 식당에 들어선 순간부터 묘하게 마음이 들썩거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 한 귀퉁이에 있는 오래된 문을 누군가 노크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심코 마음의 빗장을 열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것이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마 여기가 양식당이기 때문일 거야, 하고 시즈나는 생각했다. (본문중에서)
유키나리가 새로 오픈하려는 양식당에서 맛본 햐야시라이스가 시즈나의 발목을 잡았다. 어릴적 아버지가 만들어 줬던 그 맛과 너무나 흡사 아니 똑같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고가 있던날, 다이스케가 본 범인의 얼굴이 바로 유키나리의 아버지와 동일했다. 이 두가지로 인해 그들은 사기 프로젝트에서, 복수 프로젝트로 방향을 전환한다.
시효가 얼마남지 않았고, 그들은 경찰이 아니라 사기꾼이다. 그들이 잘해왔던 방법으로 경찰을 움직이기 위해 덫을 놓게 된다. 그들은 그가 부모님을 죽인 살해범이라고 확신하지만, 단지 음식의 맛과 기억력뿐 확실한 물증이 없다. 그리하여 경찰이 움직이도록 두 형제는 허위 사건을 만들어 경찰이 유키나리의 아버지가 범인임을 짐작할 수 있도록 증거를 꾸민다. 더불어 막내인 시즈나는 적진에 침투해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물증을 몰래 숨겨놓기로 한다.
그동안 복수극이라고 하면, 죽고 죽이거나, 악의 끝을 보여주는 무섭고 간담이 서늘한 복수극만을 생각해왔다. 이렇게 감정적인 복수극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사기꾼답게 범인을 잡기 위한 그들은 미끼를 놓고, 그걸 경찰은 제대로 문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그를 찾아서 담판을 지으면 그만인데 왜 이럴까 함면서 역시 히가시노답게 독창적인 방법은 고안해냈구나 했다.
그렇게 범인의 존재와 그에게 다가가는 경찰들을 보면서, 잡는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몰랐다. 그 속에 담긴 엄청난 반전이 있다는 걸. 반전이 나오기 전에 사기 치기 위해 접근한 시즈나와 유키나리의 묘한 관계를 보면서 사건이 꼬일거라고 짐작을 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수 집안이니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묘한 관계가 나중에는 전화위복이 됐고, 범인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그 페이지를 3~4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전혀 기대하지 아니, 첨부터 범인이 정해있기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진짜 범인의 존재를 안 순간, 놀라움에 동시에 히가시노의 상상력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 세상은 속느냐 속이느냐 둘중에 하나야라고 한다면, 나는 속느냐를 선택할 거 같다. 누군가를 속이기보다는 차라리 속는게 맘이 더 편할 거 같기 때문이다. 고이치, 다이스케, 시즈나도 속기만 하다가 결국 속이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해, 부모님을 죽인 살인범을 찾게 되지만, 결국 남을 속이는 짓은 끝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유성의 인연, 일드로도 나왔다고 하던데, 찾아서 보고 싶다. 원작에 비해 조미료가 듬뿍 들어가 있을거 같지만, 2008년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하니 궁금하다. 더불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대단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작품 중 비슷한 소재는 하나도 없다. 감성적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그가 그리는 소설은 비참한 죽음에 미스터리가 대부분이지만, 그 속에서 사람내음이 느껴진다.
요즘 읽고 있었던 책을 덮고 뉴스만 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유성의 인연으로 인해 아주 잠시나마 답답했던 머리가 조금은 개운해진 거 같다. 하지만 책을 덮자마자 다시 답답해져 온다. 까도까도 나오는 엄청난 기사들, 요즘 내 아이디가 너무 싫다. 양파대신 다른걸 사용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