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빼고 영국여행]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로크 네스(Loch Ness)
약 2만 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에 빙하로 뒤덮였던 스코틀랜드 북부 하이랜드에는 빙하의 침식 작용으로 생겨난 호수가 많다. 지난 편에서 둘러본 하이랜드의 주도 ‘인버네스(Inverness)’의 중심을 흐르는 강물도 인버네스 동쪽의 큰 호수 ‘로크 네스(Loch Ness)’에서 흘러들어오는 물. 여기서 ‘로크(Loch)’는 스코틀랜드 전통 언어인 게일어로 호수(Lake), 그러니까 ‘로크 네스’는 ‘Lake Ness, 네스호’라는 뜻이다. 글렌피넌 고가교에서 본 ‘로크 실(Loch Shiel)’은 ‘실(Shiel)’ 호수이고, 며칠 뒤 하이랜드를’ 떠나며 만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넓은 호수 ‘로크 로몬드(Loch Lomond)’는 로몬드 호수가 되겠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호수는 이렇게 영어 ‘Lake’ 대신 스코틀랜드 지역어인 ‘로크’를 사용하는데, 영어에 ‘Lake’라는 단어가 생겨나기 전, 이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불리던 전통적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금 언급한 ‘로크 로몬드’는 ‘로크 네스’의 경쟁자라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호수 중 호수 표면적 기준으로 가장 넓은 호수는 로크 로몬드이다. 그런데 호수의 깊이까지 고려하면 로크 네스가 훨씬 많은 양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로크 네스는 사실 호수가 담고 있는 물의 양, 즉 호수의 부피를 기준으로 하면 영국 전체에서 가장 많은 양의 담수를 담고 있는 가장 큰 호수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호수의 물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이렇게 호수의 크기에 대해 ‘누가누가 잘하나’ 대결처럼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표면은 평온하게 잔잔한 ‘로크 네스’의 내면이 그만큼 깊고 방대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지금이야 먼 바다 심해의 깊이도 측정가능한 기술들이 개발되었지만, 과거 오랜 시간 인간의 능력으로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을 짙고 아득한 호수 앞에서 하이랜드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신비함도 느꼈을 것이다. 그 두려움과 신비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상상인지, 혹은 진짜로 존재하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대상인지, 이 깊은 호수에서 하이랜드 사람들은 호수 이상의 두려움과 신비로움을 간직한 생명체를 발견했다. 로크 네스의 호수 괴물, 일명 ‘네시’.
로크 네스에 정말로 호수 괴물이 사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인버네스를 떠나 로크 네스의 중심을 향해 차를 타고 달렸다.
로크 네스 호숫가에 오래전 지어진 고성, ‘어커트 캐슬(Urquhart Castle)’에 도착했다. 축약된 지도로 보아도 아주 긴 것이 느껴지는 로크 네스의 허리쯤에 위치한 어커트 캐슬은 성에서 호수를 잘 내려다볼 수 있고, 호숫가 가까이로 내려갈 수도 있어 로크 네스를 조망하는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어커트 캐슬은 13~14세기에 지어진 중세의 성으로 지금은 폐허가 된 모습이지만 성벽과 잔해 등이 남아 있어 성의 규모와 구조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역사적 유적지다. 노르웨이의 침략을 막는 요새로 시작해 이후 스코틀랜드의 여러 분쟁 등 굵직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어커트 캐슬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성이라고 한다. 어커트 캐슬 옆에는 어커트 캐슬의 역사와 복원된 모습을 설명해주는 박물관 겸 방문자센터가 있어, 로크 네스나 호수 괴물 말고도 어커트 캐슬과 스코틀랜드의 역사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둘러보기에 좋을 곳이었다. 우리도 방문자센터 내부를 간단히 둘러보긴 했으나, 내겐 스코틀랜드의 고성의 역사와 의미보다 로크 네스의 풍경과 호수 괴물이 조금 더 흥미로웠다. (어커트 캐슬, 쏴리!)
어커트 캐슬의 남겨진 성벽 위에 올라 손을 둥그렇게 감아 만든 망원경으로 네스 호수를 아주 열심히, 꽤 오래, 찬찬히 정찰했다. 아이들도 진지하게 호수 괴물을 찾았다. 바다색과 같은 짙은 푸른 물이 좌우로 길게 흐르는 호수의 어디에도 호수 괴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호수 괴물에 집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보는 이의 혼을 빼놓으며 호수 괴물을 숨겨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수 괴물이 두렵지 않은 '용자'들은 배를 타고 로크 네스 위를 유유히 흘렀다. 배를 바라보며 평화로운 호수면에서 갑자기 호수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저들은 혼비백산할 테지만, 엄청나게 역사적인 순간일 것이다. 호숫가에 서 있는 우리 모두 목격자가 되겠지, 후훗. 그런데 호수 괴물은 어떻게 생겼을까? 정말 인버네스 기념품 샵에서 본 인형처럼 생겼을까?
사실 어느 누구도 정확한 호수 괴물의 모습을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로크 네스에 산다고 추정되어 오래전부터 많은 추적이 펼쳐졌지만 아직 그 정체를 밝히지는 못한 호수 괴물, 네시(Nessie). 여전히 믿는 사람들이 있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탐사단체가 지속적으로 탐사를 진행 중이며, 로크 네스 끝자락에 자리한 인버네스의 거리와 상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호수 괴물 네시는, 거대한 하이랜드의 호수 로크 네스에 서식한다고 전해지는 스코틀랜드 민담 신화 속 생물이다. ‘네시’는 공식 명칭은 아니고, 애칭으로 붙여진 이름.
‘겨우 신화 속 괴물로 이렇게 길게 ‘호수 괴물’, ‘호수 괴물’을 노래를 한 것인가’ 하며 김이 샜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신화 속 생물은 신화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실제로 이 호수 괴물을 목격했다는 증거들이 공개되곤 했다.
가장 오래된 것은 7세기 자료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때의 내용은 어느 성인의 신성력을 포장하기 위한 신화적인 내용에 가까워 전설의 일부로 치부해도 될 것 같다. 그렇지만 1930년대 들어서며 이 로크 네스의 호수 괴물을 실제로 보았다는 목격담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호수 주변 도로 공사로 호수로의 접근성이 좋아지자 로크 네스에서 호수 괴물을 찍었다는 사진도 등장했다.
목격자들이 묘사하는 괴물은 뒤집힌 배나 고래, 혹은 코끼리처럼 거대했고 목이 길었다 등 수장룡 같은 모습으로 표현됐다고 한다. 흥미진진한 증언들이었지만, 이어진 여러 조사와 검토 끝에 네시를 찍은 사진은 사기 혹은 다른 동물을 오인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려졌다.
그 뒤로도 목격담이 계속 이어지며 사람들은 여전히 호수 괴물에 대한 의심 혹은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이 호수 괴물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960년대에는 대중의 후원을 받은 민간 조사국(Loch Ness Investigation Bureau)이 만들어 지기도 했었고, 2003년에는 BBC에서 고성능의 장비를 이용해 호수를 수색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 BBC의 고성능 장비로도 성과는 없었다. 이에 많은 과학자들은 로크 네스의 호수 괴물을 신화에 의한 허상, 상상이라고 간주하고 있다고.
그렇지만 네스 호수 괴물을 향한 추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불과 몇 년 전인 2023년에는 네스 호수 괴물을 공식적으로 처음 수색한지 90주년을 맞아 또 한번 호수 바닥까지 샅샅이 살피는 수색이 이루어졌다. 결과는 역시나 Nothing. 그럼에도 24년에는 또 한 번 어커트 캐슬 주변에서 네시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나왔고, 네시 탐사팀은 NASA와 DNA 분석 등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호수 괴물의 실체를 좇고 있다고 한다. (Respect!!)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구체적이고 진지한 탐사 및 수색을 이끌어내는 호수 괴물, 네시는 정말 단지 전설과 신화 속에만 머무는 존재일까? 어쩌면 정말 까마득하게 깊고 어두운 네스 호수 바닥 어딘가를 유유히 헤엄치는 실존의 생명체가 아닐까?
네시가 있느냐 없느냐를 단정할 순 없다. 보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인간이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 인류의 지나친 자기 과신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네스 호수의 어딘가에 우리 인간에게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통의 지형과는 다른 광활함과 광막함을 보여주는 곳, 잉글랜드와 웨일즈에 있는 호수의 물을 다 가져다 부어도 다 채우지 못할 큰 호수, 로크 네스를 품은 하이랜드라면 신화적 생물이 살아 숨쉴 것 같기도 하다. 로크 네스 호수 괴물을 향한 영국인들의 믿음은 아마도 북방의 미지의 땅,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향한 영국인들의 경이롭고 신비로운 동경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커트 캐슬을 떠나기 전, 신비와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네스 호수 가까이로 내려갔다. 호수 괴물이 가까이 있다면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맑은 로크 네스 호수물에 손을 담갔다. 북극에 가까운 호수의 차갑고 시원한 느낌이 인버네스 공기에서 느낀 청량함을 닮았다.
그때, 호수에 무엇인가 등장했다. 오, 네시!!!!!
‘아이가 물가에서 놀고 있는데 어떡하지? 얘야, 도망쳐야 해~~~~~’
‘콱!’
‘악-----’
(응? 엄마?? 왜 때문에 이러시죠???)
가방에 들어 있던, 인버네스 기념품 가게에서 산 귀여운 네시 인형이 로크 네스 호숫가로 나왔다.
즐겁고 무시무시한 장난과 함께 네시와의 기념 사진을 끝으로 방대한 물의 양만큼 거대한 신화와 신비를 품은 로크 네스를 뒤로하고 다음 여정을 향해 떠났다. 안녕, 로크 네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진짜 네시!
[런던 빼고 영국여행]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로크 네스(Loch Ness)
하이랜드의 깊은 호수, 그리고 전설의 ‘네시’ _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