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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유명인사 ‘피터 래빗’과 힐 탑

[런던 빼고 영국여행] 잉글랜드 레이크 디스트릭트 힐탑(Hill Top)

by 노현지


‘아름다운 숲 속’의 전형인 레이크 디스트릭트에는 영국의 대표시인 ‘워즈워스’ 외에도 또 한 명의 유명인, 아니 유명동물이 있다. 파란 재킷을 입고 이틈 저틈을 파고들며 사고를 치고 다니는 귀여운 사고뭉치 ‘피터 래빗(Peter Rabbit)’.


< 귀여운 사고뭉치 동화 캐릭터 '피터 래빗(Peter Rabbit)' (출처 : <피터 래빗 이야기>) >


‘피터 래빗’은 말썽쟁이 꼬마 토끼의 이름이자, 이 토끼가 주인공인 동화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비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가 쓴 <피터 래빗 이야기(The Tale of Peter Rabbit)>는 1900년대 초반에 출간된 동화책이지만,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삽화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아 그릇, 수저, 물통, 수건, 장식품 등 우리의 여러 일상 제품에서 ‘피터 래빗’을 만날 수 있다.


< 동화책 <피터 래빗 이야기> 표지 (출처 : 교보문고) >


앞서 영국의 대표 도자기 ‘웨지우드(Wedgwood)’와 관련된 도시 스토크온트렌트(Stoke-on-Trent) 여행기에서도 ‘피터 래빗’이 잠시 등장한 바 있다. 웨지우드 그릇들이 전시된 진열대 위에 고유한 파랑 재킷을 입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릇들 사이에 숨어있던 피터 래빗을 기억하는가? 그 피터 래빗 인형 주변에는 ‘피터 래빗’ 동화책 삽화가 들어간 컵과 접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세계적인 도자기 브랜드 웨지우드에서 특별히 ‘피터 래빗’ 도자기 라인을 생산할 정도로 인지도 높은 토끼 캐릭터, 피터 래빗. 바로 이 피터 래빗이 레이크 디스트릭트 출신이다. 두둥.


< 웨지우드의 '피터 래빗' 제품 라인 >


오늘 둘러볼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영국의 대표 동물 친구, 피터 래빗이 어떻게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진짜’ 동물친구들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길에는 불쑥불쑥 진짜 동물이 등장한다.

가장 흔하게 보이는 동물 친구들은 양. 동화책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털이 새하얗지는 않은 양들이 도로 가장자리 곳곳에 엎드려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이나 차가 지나가도 전혀 놀라지 않고 비켜서지도 않는 모습에 오히려 우리가 움츠러들었다. 어쩜, 차를 보고 피하지도 않나 의아해하다가, 어쩌면 내가 양과 염소가 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에겐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방문하는 사람과 차가 흔하게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하여 그들은 이 ‘아름다운 숲 속’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진짜 주인. 주인의 당연한 여유를 낯설게 여기는 내가 오히려 주객을 전도하여 생각하는 방자한 손님이 아닐지. 하하.


< 차가 다니는 도로 가장자리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양들 >


가끔은 길에서 유유히 우리 차를 앞서가는 꿩도 만날 수 있다. 걷는 속도는 꿩의 마음. 혹시 바쁜 일이 있다면 포기하고, 꿩의 뒤태를 감상하면서 천천히 조용히 뒤따르는 것이 숲을 방문한 인간의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 우리 차 앞에 등장한 꿩 >


주차장 주변의 둔덕이나 잔디밭을 총총 뛰어다니는 토끼는 양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보이는 단골손님이다. 아니, 단골주인이다. 특히 토끼는 주차해 둔 차 바퀴 옆에서도 불쑥 나타나곤 해서, 차가 움직일 때 행여 다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 주차장 둔덕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토끼 >
< 주차된 자동차 바퀴 옆에서 쉬는 건 위험해요, 토끼씨 >


차에 타기 위해 주차된 차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토끼의 뒷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빠르고 다급해보여서, ‘놀란 토끼처럼 도망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원래도 알았지만 더욱 정확하게 이해했다.


< 사람을 피해 부리나케 도망가는 토끼의 뒷모습 >


뛰어 가는 토끼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동화책 속 ‘피터 래빗’이 떠올랐다. 엄마 말을 안 듣고 가지 말라는 곳(맥그리거 아저씨 밭 등)에 가고, 하지 말라는 것(채소 훔쳐먹기 등)을 하는 사고뭉치 ‘피터 래빗’도 맥그리거 아저씨를 발견했을 때 이렇게 뛰어 도망쳤을까? <피터 래빗>을 쓴 비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도 이곳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생생한 토끼의 모습들을 보면서 ‘피터 래빗’과 친구들을 탄생시켰을까?




피터 래빗과 비아트릭스 포터의 집 ‘힐 탑’


‘피터 래빗’이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대표하는 유명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비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의 자연과 동물 사랑 덕분이다. 영국의 대표 동화작가 비아트릭스 포터는 ‘아름다운 숲 속’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살면서 아름다운 그림과 위트 있는 글로 <피터 래빗 이야기>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를 동화책으로 펴냈다.


<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동화작가 비아트릭스 포터 (출처 : visitlakedistrict.com) >
< 비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시리즈 북 세트 (출처 : 아마존닷컴) >


비아트릭스 포터는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자연을 사랑하여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집을 장만하였고, 이곳에 머물며 그림책 작가로서, 또 열렬한 환경운동가로서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보존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살면서 정성스럽게 정원을 가꾸고, 자신의 그림책에 삽화로도 그려 넣었던 집의 이름이 ‘힐 탑(Hill Top)’이다. 힐 탑은 현재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 역사적 건축물과 자연 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비영리 단체)에서 관리하며 ‘비아트릭스 포터’의 기념관, 혹은 박물관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자연과 환경을 사랑한 비아트릭트 포터가 ‘피터 래빗’과 그외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선사할 수 있도록 근간이 되어준 ‘힐 탑’은 어떤 모습일까?


< 비아트릭스 포터의 집 '힐 탑' >


비아트릭스 포터가 살았던 그때의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힐 탑은 외관부터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벽을 가득 덮은 식물 덕분에 힐 탑 자체도 마치 자연의 한 부분 같았다. 환경운동가였던 비아트릭스 포터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했는지, 집의 첫 인상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동화책 속으로 들어가듯 힐 탑 안으로 들어섰다. 삐걱삐걱 오래된 나무 바닥과 가구들이 세월을 품은 채로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사람이 살아도 된 것처럼 정갈하고 다정함이 묻어나는 집이었다.


< 힐 탑 내부 모습 >


2층으로 된 힐 탑에는 비아트릭스 포터가 쓰던 가구와 책상, 이불, 일상 생활에 쓴 물건 등이 비아트릭스 포터가 원래 두었을 것 같은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 비아트릭스 포터가 작업하던 책상 >
< 비아트릭스 포터가 쓰던 물건들 >


보기만해도 사랑스러운 격자 창문 아래 윈도싯(Window Seat) 곳곳에는 그녀가 쓴 책들이 방문객들을 반겼다. 전시책이 아니라 실제로 읽어도 되는 책들이다.


< 힐 탑 곳곳에서 읽을 수 있는 비아트릭스 포터의 동화책 >



집 내부만큼이나 과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외부 정원과 밭. 그 덕분에 비아트릭스 포터가 동화책 삽화로 그렸던 구도를, 책으로 봤던 장소들을 직접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 힐 탑 외부 정원과 밭 >


책으로 본 적이 없어도, 그래서 내용도 그림도 몰라도 괜찮다. 나 또한 <피터 래빗 이야기> 편만 보았을 뿐, 나머지 책들은 본 적이 없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잘 기억하지 못해도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에서 책의 삽화로 쓰인 그림과 같은 구도의 장소들이 안내되어 있으니 참고하면서 관람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들이다.


힐 탑의 2층, 비아트릭스 포터 작업실 창문으로 보는 바깥 풍경에서 위쪽으로 작게 보이는 길이 삽화에서 길로 표현되어 있다.


< 비아트릭스 포터 작업실 풍경이 담긴 그림 >


또 정원에서도, 오리들이 줄을 맞춰 지나가는 그림과 일치하는 하얀 문을 볼 수 있다.


< 동화책 삽화에 나온 오리들의 하얀 문 >


그외에도 작은 푯말들이 정원 곳곳에서 비아트릭스 포터의 세계를 다정하게 안내해준다.




무엇보다 힐 탑의 정원은 다양한 꽃과 풀들이 단정하면서도 무성하여, 책 속 구도를 찾는 기쁨 외에도 정원 자체로도 아름다웠다. 여러모로 눈이 즐거운 비아트리스의 정원이었다.


< 그 자체로 풍성하고 아름다운 공간, 힐 탑 >


힐 탑을 나오는 길목에는 기념품 가게가 있다. 이렇게 멋진 곳을 기억하기 위해서 당연히 있어야 하고,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곳. 비아트릭스 포터가 쓴 동화책 세트도 있고, 다양한 인형들과 소품들이 매력을 발산하며 데려가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 힐 탑의 기념품 가게 >
< 너무 귀여워서 충동구매를 참기 어려운 소품들 >


특히나 눈길을 끌면서 큰 웃음을 주었던 소품은 피터 래빗과 피터 래빗의 엄마가 함께 있는 작은 석고 장식품. 엄마가 피터 래빗의 옷 단추를 채워주고 있는 다정한 모습이 이 장식품의 원래 의도일 것 같지만, 어딘가 말썽쟁이 피터 래빗의 멱살을 잡고 있는 듯한 엄마의 손과 눈빛에서 육아에 ‘빡친(?)’ 엄마의 마음이 읽혔다면 너무 주관적인 감상일까?! 하하하.


< 마치 멱살잡이를 의심케했던 피터 래빗과 엄마의 장식품 >
< 오해마시라~ 다정한 엄마였다. 하하 >


멱살잡이 장식품에 무척 끌렸지만 차마 그것을 사지는 못하고(지나친 리얼리티는 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므로), 하늘색 재킷을 입은 피터 래빗과 빨간색 재킷을 입은 피터 래빗의 사촌 ‘벤자민 버니(Benjamin Bunny)’ 봉제인형을 기념으로 데리고 왔다.


< 우리와 함께 온 '피터 래빗'과 '벤자민 버니' >



비아트릭스 포터의 집에서 나서면 돌담 너머로 초록색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주변의 산세와 잘 어울리는 고즈넉한 산 속 마을이 평화롭고 싱그럽다.


< 고요한 초록빛 마을 '니어 소리(Near Sawrey)'의 풍경 >


고요한 풍경 속 돌담 위에 피터 래빗을 앉혀 ‘힐 탑’ 방문 인증사진을 남겼다. 조용한 마을이 개구쟁이 피터 래빗과 함께 하니 한층 생동감 있게 보였다. 더하여 앞서 레이크 디스트릭트 어느 주차장에서 마주친, 부리나케 도망가던 토끼의 모습이 생각나 이곳에서 만난 동물들이 정말 가까운 친구처럼 다정하게 다가왔다.


< "안녕하세요. 제 고향에 오신 걸 환영해요~" >


비아트릭스 포터의 집 ‘힐 탑’과 그녀가 사랑한 마을을 둘러보니 비아트릭스 포터가 왜 영국의 자연을,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자연의 모습 그대로 지키고 싶어 했는지, 비아트릭스의 그림이 이렇게 다정하고 아름다운지, 또 그녀의 그림을 사람들이 두고두고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음이 정화되는 ‘아름다운 숲 속’ 비아트릭스 포터의 집, ‘힐 탑’도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메인호수 ‘윈드미어’ 근처에 있다. 이 다음에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찾는다면 윈드미어를 중심으로 워즈워스와 비아트릭스 포터 등 영문학 작가들의 시선을 따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문학여행을 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잉글랜드, 레이크 디스트릭트, 힐 탑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귀여운 유명인사 '피터 래빗'과 힐 탑(Hill Top) _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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