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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번 강가의 아름다운 ‘셰익스피어 마을’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잉글랜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by 노현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가들 중에 영국 작가들이 많이 있다. 내가 살았던 도시, 바스(Bath)와 관련이 깊은 제인 오스틴(Jane Austen)부터 브론테(Brontë) 자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조지 오웰(George Orwell) 등등 여러 영국 작가들이 깊은 통찰과 뛰어난 필력으로 전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켜왔다.

그리고 이 영문학의 거장들이 남긴 말이나 작품을 들여다보면 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전설적인 영문학의 대가가 있다.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이다.


< 셰익스피어 초상화 (출처 : 위키피디아) >


셰익스피어는 영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작가로서, 그 옛날 셰익스피어 때문에 온 유럽으로 영어가 퍼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한 작가다. 실제로 한 개인의 문학 작품 때문에 영어가 유럽으로 퍼졌겠냐마는, 셰익스피어 덕분에 영문학의 수준과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고 간주되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셰익스피어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복잡하고 심도 있게 다루어 입체적인 인물을 탄생시켰으며, 권력과 탐욕, 사랑, 자유, 인간 존재에 대한 고찰, 인간성 등등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공감할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며 영문학의 깊이를 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이 후대의 작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어 이후 영문학이 풍성해지는 데 발판이자 근간이 된 것이 셰익스피어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기존에 없던 (혹은 있었더라도 의미를 확장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한) 영어 표현을 작품에 적용해 영어라는 언어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도 크게 기여했는데, 일부 표현들(Break the ice, In a pickle, Lonely, Gloomy 등등)은 현재에도 일상언어와 문학작품에서 관용구로 여전히 쓰이고 있다.


이상은 중학교 때 청소년 권장도서로 (아마도) 축약본을 읽은 후로 더는 셰익스피어를 펼쳐본 적 없고, 영문학에서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찬양하는 것을 수없이 들었지만 정확히 무엇이 셰익스피어를 전설로 만들었는지는 몰랐던 문외한의 ‘셰익스피어 벼락치기’ 요약본이다. 벼락치기의 효과인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쭉 한번 정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셰익스피어가 의미를 확장해 작품에서 사용했다는 표현들 중 ‘Break the ice’를 발견했을 때는 실생활에서 모르는 사람들 간의 첫 회의나 모임 등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Ice Breaking’이라 칭하며 많이 접했던 터라 갑자기 셰익스피어가 반갑고 가깝게 느껴졌다. (역시 공부는 벼락치기인 것인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영국 잉글랜드 중남부 지방에 셰익스피어와 아름다운 ‘Ice Breaking’을 할 기회를 주는 에이번 강 가의 아름다운 도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이 있다.


< 잉글랜드 중남부에 위치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출처 : 구글 지도) >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은 중세시대에 국가에서 허가한 시장(Market)이 섰던 지방 거점 도시로, 아주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인근 농촌 마을 지역에서 상업적 거래를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경제적/행정적/문화적 중심지였다고 한다. 도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에이번 강을 통해 물자의 운송이 용이했다는 점도 지역 무역 중심지로서의 스트랫퍼드어폰어에번의 입지를 강화했다.

중세시대가 가고, 근대도 지나, 나날이 고도화된 산업화가 진행되는 현대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은 잉글랜드 중남부의 작은 지방 도시일 뿐일지만, 중세시대 번화한 지방 소도시의 건물, 상점가 등등 과거의 흔적이 거리 곳곳에 남아 있어 현대화된 대도시에 익숙한 여행객들에게 이색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도시로 꼽힌다.


< 중세시대 분위기가 남아 있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거리 전경 >


그리고 또 한 가지, 아니 수많은 여행객들이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으로 향하는 무엇보다 중대한 이유는 이 도시에서 세계적인 작가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16세기 중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난 이후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할 때까지 이 도시에서 살았다. 16세기 말경 런던으로 가서 약 20여년간 극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한 후, 말년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여생을 보냈다.

위대한 작가의 시작과 끝이 된 도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이 도시에 남은 셰익스피어의 집과 기록들을 찾아 기꺼이 발걸음하는 사람들 덕분에 셰익스피어는 아직도, 여전히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 살아 있는 것 같다.




대문호들도 방문한 셰익스피어 생가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에 도착해 뒤도 안 돌아보고 직진했던 곳은 당연히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셰익스피어 센터(The Shakespeare Centre)였다. 얼마 전 방문한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숲 속, 한산했던 비아트릭스 포터의 집과 달리 셰익스피어의 집은 입장 줄이 꽤 길기 때문이다.


< 셰익스피어 센터 입구 (출처 : 트립어드바이저) >


셰익스피어 센터 초입은 16세기 집과는 거리가 먼 현대적인 모습인데, 셰익스피어 생가로 들어서기 전 셰익스피어의 생애를 설명하고, 그의 유품과 관련 물품들을 전시한 공간이 작은 박물관처럼 마련되어 있었다. 나처럼 셰익스피어를 오래전에 읽어 ‘Ice Breaking’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본격적인 생가 투어 전 워밍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 같다.


< 셰익스피어 센터 초입의 전시 공간 >



전시 공간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셰익스피어 작품 속 명장면들을 그림으로 구현한 월(Wall)도 있다.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등등. 잘 모르지만 이미 알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 셰익스피어 센터 야외공간에 세워진 작품 월(Wall) >


여러 작품들 중 책은 안 읽어도 영화로는 여러 번 본 <로미오와 줄리엣>의 장면과 유명한 대사(?가 특히 반가웠다.



< 반갑고 친근하게 다가온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


“O Romeo, Romeo, wherefore art thou Romeo?”


그런데 영어로 쓰인 글씨가 요상하다. 로미오에게 왜 당신은 하필 자신의 집안과 원수 집안인 로미오 집안 사람이냐고 안타까워하는 줄리엣의 대사임이 분명한데, 내가 예상한 영어 단어들이 없다. 갸웃거리는 내게 딸이 (영국)학교에서 배웠다며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어로 쓰인 문장이라고 설명했다. 역시 초등학교에서도 배우는 영국의 국민작가 셰익스피어인가보다.


야외 작품 월(Wall) 뒤편으로 이어진 셰익스피어 생가와 드디어 조우!


< 셰익스피어 생가 >


볕이 잘 드는 평지, 시내의 중심가에 위치한 셰익스피어의 집은 첫눈에도 밝고 넉넉한 인상을 풍겼다. 집 앞의 화려한 정원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을 수 있겠다. 정원의 꽃이 대단했는데 마치 꽃 박람회에 온 것처럼 다양한 꽃들이 집 건물로 이어지는 길 양쪽에 가득 피어 있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본 비아트릭스 포터의 집이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면, 셰익스피어의 집은 소위 말해, 도회지 느낌! 하하. 꽃과 자연을 사랑하는 손길이 많이 닿은 정성스러운 정원이었다. (시대도 지역도 다른 비아트릭스 포터를 계속 얘기하는 건 바로 직전에 간 여행이기도 하고, 마침 ‘작가의 집’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절로 비교하며 감상하게 됐다.)


< 곳곳에 꽃이 만반한 셰익스피어 생가 앞 정원 >


현재 셰익스피어 생가 앞 정원의 모습은 셰익스피어가 살 당시의 모습은 아니고, 그 당시의 중산층 저택 정원 모습을 재현해 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집안은 귀족은 아니지만 꽤 부유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상업 관련한 여러가지 일을 했으며, 시의회 의원 등 지역 행정에도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는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이 중세 시대에 인근 지역을 아우르는 경제적/행정적 거점 도시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셰익스피어의 집안이 이 도시에서 상당한 지위를 누리는 집이었다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후 아버지의 사업이 잘 안되면서 점차 가세가 기울게 된다.) 그러니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둘러본다는 것은 대작가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 외에도 16세기 지방 소도시의 부유한 중산층의 집을 경험하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마치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혹은 영화 세트장처럼 아주 잘 관리되어 있었다. 역사적인 의미, 또 각 시대의 특징을 알 수 있는 건물과 집 등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 열정을 쏟는 영국다웠다.

안내된 관람객의 동선을 따라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방을 포함하여 그외 방과 거실, 식당, 부엌 등등을 지나며 구경했다. 굳이 여기서 세세한 공간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팬이라면 ‘성지순례’를 하는 마음으로 감동을 받겠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닌지라 잘 정돈된 영국의 고택을 구경하는 정도의 재미를 즐기고 왔다.


< 셰익스피어 생가 내부 모습 >


그러나 이곳에서 분명 격한 감동을 받은 이들이 많았으니, 그중 우리도 잘 아는 유명한 순례자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소설을 대표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의 작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 초등학생 때 연말 학급연극에서 얼굴에 하얀 분을 바르고 스크루지 영감을 과거로 데리고 가는 유령 역할을 맡은 적이 있어, 내겐 늘 남다른 친밀감으로 다가오는 찰스 디킨스였다. – 찰스 디킨스 외에도 후대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셰익스피어인 만큼 많은 작가들이 셰익스피어의 고향과 집을 방문하고,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방 창문을 가득 채우며 여전히 이곳을 지키고 있다.


< 셰익스피어 생가 대표 순례자, 찰스 디킨스 >
< 셰익스피어를 찾아 온 유명 순례자들의 흔적 >




축제 같은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의 거리 풍경


셰익스피어 생가를 둘러본 뒤 마을로 나왔다. 길에는 셰익스피어 동상이 있었다. 그 외에도 셰익스피어가 다닌 학교, 셰익스피어가 다닌 교회, 셰익스피어가 여생을 보낸 집터 등등 온 마을이 셰익스피어를 위한 곳인 것 같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여행하기 딱 좋은 6월의 날씨 좋은 주말에는 셰익스피어를 찾아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런던 같은 대도시의 정신없는 복잡함은 아니었다. 사람이 많아도 전체적으로 참 깨끗하고 단정하다는 인상을 주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은 거리를 걷기만 하는데도 뭔가 축제가 열리고 있는 듯 경쾌하고 즐거운 기분을 선사했다.


< 축제처럼 밝은 기분을 선사하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거리 >


중세시대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는 사람들이 걷는 길 양쪽으로 중세 시대의 양식을 간직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 주변 지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 고풍스러운 거리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아직도 잘 열리는 것이 신기할 따름인 튜더 양식의 건물과 활짝 열린 창문, 고소한 스콘에 맑은 홍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싶게 만드는 크림 티(Cream Tea) 가게,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기 좋을 펍, 내가 좋아하는 채러티 샵, 도시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골동품 가게, 비밀스러운 약속이 기다리고 있을 듯한 으슥한 골목 등등. 내가 생각하는 스트랫퍼드 어폰 어에번의 진짜 매력은 바로 이 거리에 있었다.


< 감성이 충만해지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거리 이곳저곳 >


그렇다고 이 도시에 오래되고 낡은 방식의 무엇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국의 지방도시들이 대체로 그런 모습이지만, 고풍스러운 도시 속에 알알이 박힌 현대적 상점들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스트랫퍼드어폰 에이번의 두 가지 매력을 다 경험하기 위해 전통적인 느낌의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커피는 요즘 스타일의 메뉴를 파는 카페에서 마셔보았다. 축제 같은 도시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더욱 달달했다.


< 벽과 나무기둥에서 세월이 보이는 전통스타일 레스토랑 내부 (외부사진을 찍어둔 게 없어 조금 아쉽다) >


< 과거와 현재와 공존하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달콤한 맛>



'도시의 이름처럼' 아름다운 에이번 강


다음으로 발길을 옮긴 곳은 이 도시가 ‘스트랫퍼어폰에이번(Stratford- Upon-Avon)’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가 된 곳, 에이번 강가였다.

셰익스피어 고향 도시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이름 한 번 장황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화려하고 긴 대화처럼, 하하.

스트랫퍼드(Stratford)는 ‘강을 건너다’라는 뜻의 지명으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외에도 ‘스트랫퍼드’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이 영국 내에 여럿 있다. 아마도 개울이나 강을 건너 형성된 마을들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은 ‘에이번 강 위에 있는(Upon Avon)’ 스트랫퍼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 에이번 강이 흐르는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지도 (출처 : 구글 지도) >


구석구석 아름답게 강까지 뻗은 길을 걸어 에이번 강변 공원에 이르렀다. 공원 벤치에는 ‘죽느냐 사느냐’를 아직도 고민하는 햄릿과도 같은 느낌의 ‘젊은 셰익스피어 동상(Young Will statue)’이 있었다. 몇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살아있는’ 그와 악수를 나누고, 강물로 더욱 가까이 갔다.


< '젊은 셰익스피어(Young Will)'와의 악수 >


백조와 오리 들이 둥둥 떠 있는 에이번 강. 이 에이번 강 위를 유람하는 유람선이 있다. 직접 노를 젓는 작은 배도 탈 수 있었지만, 이날 바람이 많이 불었고 이전에 이런 배를 저어본 경험이 없어 포기했다(우리 가족의 목숨은 추억보다 소중하니까!).


< 에이번 강의 백조와 오리들 >
< 에이번 강 위의 유람선 >


유람선을 타고 강바람을 맞으며 강 주변 풍경을 따라 흐르다 보니 에이번 강이 도시 이름에 거창하게 붙어, 이 도시 정체성의 일부가 된 것이 전혀 거창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람선에 사람들이 가득함에도 강물과 주변의 초록 나무와 잔디, 그리고 멀리 보이는 건물들이 고즈넉하고 한적하여 운치 있었다.


<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풍경 >


강변의 나무 수풀 너머로 교회 첨탑이 보였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나 세례를 받고, 또 묻힌 교회(Holy Trinity Church)라고 했다. 셰익스피어도 에이번 강에서 이렇게 배를 타고,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수많은 문장을 강물에 띄웠을까?

‘오늘의 ‘Ice Breaking’을 인연으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에이번 강의 풍경을 떠올리며 당신의 작품을 찬찬히 음미해 볼게요.’


< 셰익스피어가 세례를 받고, 묻힌 교회 '홀리 트리니티 처치' >


셰익스피어의 교회를 지난 후 배는 방향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붉은 벽돌색의 다리(브리지 풋, Bridge Foot)가 파란 하늘과 초록의 나무, 짙은 녹색의 강물 사이에서 조화롭게 어울렸다.


< 셰익스피어 시대부터 있었던 '브리지 풋' >


이 다리는 셰익스피어가 살아 있을 때도 있었던 다리로, 세월에 닳아가는 곳들을 여기저기 손보긴 했지만 기본 골조는 셰익스피어 당시 그대로라고 한다. 이 다리 주변으로 중세시대 국가에서 허가한 시장(Market)이 형성되었고, 또 마을로 들어서는 진입로이기도 했기에 셰익스피어도 이 다리를 늘 지났다고 한다. 사실 나는 ‘셰익스피어’는 생가를 본 것으로 족했고, 나머지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곳들을 미리 찾아보지도 않고 그저 거리 구경, 에이번 강 풍경 구경을 하러 온 것인데 주변의 스치는 것들이 모두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진정 셰익스피어의 고향이었다.


< 유람선을 타고 다리 아래를 지났다 >


역사적이고 문학적인(?) 다리 아래를 지나자 노를 젓는 작은 배들이 더 많이 등장했다. 각자의 속도로 에이번 강의 오후를 즐기는 풍경이 한가롭고 즐거웠다.


< 에이번 강 위에서 낭만을 젓는 사람들 >


배는 다시 또 방향을 돌려 처음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우리도 셰익스피어처럼 붉은 다리를 건너 강의 반대편으로 갔다. 강물넓은 잔디밭은 공원, 그보다는 조금 더 특별한 유원지 느낌이었다. 강물을 따라 쭉 마련된 벤치에는 앉아서 에이번 강 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벤치 위로 길게 늘어뜨린 수양버들이 보는 것만으로 싱그럽게 느껴졌다. 유원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대관람차.


< 에이번 강 건너편의 공원 >


쉽게 어지러움을 느끼는 나와 둘째 아이는 남고, 남편과 딸이 대관람차를 타러 갔다. 남편이 폰에 담아온 사진으로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스트랫퍼드 어펀 에이번의 모습을 나도 눈에 담았다. 에이번 강과 마음껏 뛰어도 괜찮을 잔디밭, 꿈처럼 높이 오르는 대관람차, 이 모든 것들이 함께하는 풍경은 또한 기분 좋은 소풍의 설렘을 느끼게 했다.


< 대관람차 위에서 내려다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의 마지막 일정은 역시나 맥주!

오래된 나무의 결을 느낄 수 있는 우아한 펍에 앉아 영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맥주인 런던 프라이드를 마시며 오늘 여행한 스트랫퍼드 어펀 에이번을 찬양했다.


“셰익스피어가 너무 심하게 유명해서 그냥 그런 관광지일까봐 솔직히 안 오고 싶었는데(나는 남들이 다 하면 안하고 싶어하는 약간의 반골기질이 있다. 하하.), 여기 정말 너무 예쁜 도시다. 셰익스피어가 여기서 태어나줘서 고맙고, 여봉봉이 뜻을 굽히지 않고 꼭 와줘서 고맙네. (남편은 남들이 다 하면 해보고 싶어하는 체제 순응적 사람이다. 하하하.)”


<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매력에 Cheers! >


어른들이 맥주를 마시는 동안 아이들은 셰익스피어 생가에서 기념품으로 산 책을 읽고, 깃털 모양 볼펜으로 ‘셰익스피어처럼’ 편지를 썼다.


< 셰익스피어의 여운과 함께하는 아이들 >


아직은 서투른 필기체와 철자법으로 쓴 편지마저 고즈넉하고 감성적이게 다가오는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 때문에 이 도시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셰익스피어가 아니었다면 주변 영국인들이나 가끔 방문하는 지방 소도시로 남았을지도 모를 이곳. 나 역시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곳이 아니었다면 있는지도 몰랐을 이곳.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아니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도시 '스트랫퍼드어펀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 화려하진 않지만 고즈넉함과 생기를 고르 갖춘, 기분 좋은 영국의 하루를 경험한 즐겁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런던 빼고 영국 여행] 잉글랜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

에이번 강 가의 아름다운 ‘셰익스피어 마을’ _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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